'디지털 노가다' 데이터 라벨링의 뒷면

이정희 2021. 3. 4.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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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기술 발전이 노동시장에 미친 영향은 실로 광범위하다.

일자리 수 증감만이 아니라 그 본질을 변화시키고 있다.

지난해 7월 정부의 '디지털 뉴딜' 발표 이후 더욱 관심받고 있는 이 일자리는 AI를 학습시키기 위해 데이터를 수집·가공하는 일을 말한다.

이 데이터 수집·가공 업무는 정부의 디지털 뉴딜 사업으로 더욱 확산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사업 초기 단계에서부터 저임금·초단기·저급의 일자리 양산에 대한 우려가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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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현지 그림

디지털 기술 발전이 노동시장에 미친 영향은 실로 광범위하다. 일자리 수 증감만이 아니라 그 본질을 변화시키고 있다. ‘임금노동자’와 ‘자영업자’ 사이의 회색지대를 넓히면서 이분법에 기초해 설계된 노동법과 사회보험제도의 유효성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이런 가운데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일자리도 만들어지고 있다. 바로 ‘데이터 라벨링’ 같은 인공지능(AI) 학습을 위한 인간의 노동이다.

지난해 7월 정부의 ‘디지털 뉴딜’ 발표 이후 더욱 관심받고 있는 이 일자리는 AI를 학습시키기 위해 데이터를 수집·가공하는 일을 말한다. 예를 들어 어떤 이미지 안에 있는 대상이 ‘개’인지 ‘고양이’인지, ‘글자’인지 ‘숫자’인지를 AI가 인식할 수 있도록 데이터에 라벨(표식)을 달아 분류하는 작업이다. 작업자가 특정되지 않는 다수 군중(crowd)이고, 최종 작업의 아주 작은 일부(microtask)만 수행한다는 점에서 크라우드형 또는 미세작업형 플랫폼 노동으로 불린다. 나는 최근 A사 사례를 중심으로 크라우드형 플랫폼 노동의 특성을 살펴보았는데, 새로운 회색지대 노동의 특징을 확인할 수 있었다.

크라우드형 플랫폼 노동은 우선 자율성과 유연성이 있다는 점이다. 언제 어디에서 어떤 작업을 수행할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었다. “노트북을 펼친 그곳이 바로 직장, 노트북을 펼친 그 시간이 바로 출근시간”이라는 A사의 홍보 문구가 실감되었다. 타인과 대면할 필요도 없고, 작업 관련 소통이 필요하더라도 SNS를 활용하면 큰 문제가 없었다. 이러한 특성은 유연한 노동에 대한 수요, 감정노동을 배제할 수 있는 비대면 일자리에 대한 수요를 충족시키는 듯했다. 하지만 이러한 자율성·유연성과 반대로 노동 과정에 대해서는 알고리즘을 통한 엄격한 통제가 이뤄지고 있었다. 작업 수행을 위해서는 반드시 튜토리얼(교육)을 받아야 하고, 매우 구체적인 지침에 따라 작업을 수행한 뒤 검수를 통과해야만 포인트가 적립되는 ‘일의 완성’으로 인정되었다. 또한 게시된 작업 중에는 시간과 장소는 물론 작업 도구(예를 들어 핸드폰 특정 기종 이상급)가 특정된 것도 있었다.

반면 작업자 보호장치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단순·반복 작업에 따른 근골격계질환 발병이나 작업 도중 예기치 않은 사고 발생 가능성이 있음에도 산재보험 등 사회보험 혜택은 보장되지 않았다. 소득은 작업 단가에 완성한 작업의 개수를 곱한 만큼이 되는데, 입문 단계의 단가는 20원부터 시작한다(물론 고숙련을 요구하는 난도가 높은 작업일수록 단가가 높아진다). 2021년 최저임금(시급 8720원)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1시간에 436개, 10초에 1.2개꼴로 작업을 수행해야 한다. 이러한 단순·반복, 노동집약적 성격은 이른바 ‘디지털 인형 눈알 붙이기’ ‘디지털 노가다’라는 별칭이 생긴 이유이기도 하다.

‘디지털 댐’에서 ‘노동권 댐’으로

이 데이터 수집·가공 업무는 정부의 디지털 뉴딜 사업으로 더욱 확산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사업 초기 단계에서부터 저임금·초단기·저급의 일자리 양산에 대한 우려가 제기된다. 이 우려가 현실이 되지 않게 하려면 뉴딜 일자리 창출 방안과 함께 노동자의 권리보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일자리에 대한 진입 문턱이 낮은 만큼 노동권 행사의 문턱도 낮아 누구나 접근 가능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정부가 지난해 말 플랫폼 종사자 보호 대책을 제시한 것은 반가운 소식이다. 다만 노동법상 ‘근로자’인 플랫폼 종사자와 그렇지 않은 종사자를 나눠 각각 현재의 노동법과 새로 제정할 특별법을 통해 보호하겠다는 이분법적 접근에는 아쉬움이 있다. 데이터를 모아서 더 큰 힘으로 전환하겠다는 의미로 정부가 ‘디지털 댐’이라는 신조어를 만든 것처럼, 새로운 종사자 유형이 나올 때마다 별도의 법을 만들기보다 기존 노동관계법이 모든 일하는 사람을 보호하는 ‘노동권 댐’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적용 범위를 확장하는 것이 어떨까?

이정희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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