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어 순위 사라진 포털, 이제 모두 웃고 있나요?

아이즈 ize 글 윤준호(칼럼니스트) 2021. 3. 4.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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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즈 ize 글 윤준호(칼럼니스트)


영화 ‘트루먼쇼’. 30년 간 평범한 삶을 사는 줄 알았던 보험회사원이 거대한 TV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주인공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신의 진짜 삶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기억하는가? 트루먼(짐 캐리)은 이 프로그램의 기획자와 시청자들을 향해 인사를 한 후 유유히 세트장 밖으로 나간다. 30년 간 그의 삶을 지켜보던 시청자들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바로 여기서 아주 의미심장한 장면이 삽입된다. 이를 지켜보던 두 경비원은 대화를 나눈다. "다른 데는 뭐 하지?" "TV가이드 어딨지?" 한바탕 쇼를 지켜본 그들은 대수롭지 않은 듯 또 다른 재미를 찾아 나선다.
 
최근 대한민국 대중은 이와 비슷한 상황을 경험했다. 지난 2월25일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실시간 검색어 서비스가 중단됐다. 지난해 2월 다음카카오가 먼저 이를 폐지한 데 이어 네이버까지 동참하며 포털사이트 첫 화면을 장식하며 매일 대중과 만나던 검색어 순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무려 16년 간 이어지던 서비스의 증발이다. 이에 따른 대중의 삶은 어떻게 달라질까?

#왜 없어졌을까?

실시간 검색어는 대중 밀착형 콘텐츠다. 이를 통해 트렌드를 읽는 이들이 적잖다. 실제 영향력과 관계없이 ‘검색어 1위’는 사회적 영향이 큰 사안으로 여겨진다. 그러니 실시간 검색어를 기반으로 사업을 하는 기업들이 적잖다.

게다가 실시간 검색어 서비스는 네이버를 비롯해 토종 포털사이트가 시장에 정착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미국 구글이 검색엔진으로서 대다수 나라에서 점유율 1위를 달리는 반면, 한국에서만큼은 네이버나 다음에 비해 통 힘을 못 쓰고 있다. 이는 단순한 검색 서비스 외에 다양한 편리함을 주는 국산 포털사이트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검색어 서비스 역시 그런 힘을 키우는 데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털사이트는 왜 이 서비스를 포기했을까? 이에 대해 네이버는 지난 2월 4일 블로그를 통해 "인터넷 이전에는 잘 드러나기 어려웠던 롱테일 정보가 큰 이슈와 공존할 수 있는 세상을 보여주고자 했던 급상승검색어는 풍부한 정보 속에서 능동적으로 나에게 필요한 정보를 소비하고 싶은 커다란 트렌드 변화에 맞춰 2월 25일 서비스를 종료한다"고 밝혔다. 


소비 트렌드가 바뀌었다는 설명이다. 과거에는 ‘롱테일 정보’와 ‘큰 이슈’를 보여주기 위해 실시간 검색어 서비스를 통해 이를 제시했는데, 이제는 각자가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를 ‘찾아서’ 소비하는 트렌드가 자리잡으면서 굳이 이 서비스가 필요치 않다는 의미다. 상당히 설득력 있다. 하지만 이를 표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이들은 많지 않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 서비스를 악용하거나 이로 인해 그 기능이 변질되는 것에 따른 조치라고 입을 모은다. 일단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는 키워드의 사회적 영향력과 화제성이 비례하지 않는다. 몇몇 연예인의 일탈이나 1인 크리에이터들의 비행이 주요 검색어로 올라오는 것은 다반사다. 여러 기업들이 특정 제품이나 행사를 검색하게 만들어 검색어 상단에 오르면 이를 바탕으로 이벤트를 진행하고 홍보하는 등 사적 도구로 이용하기도 한다. 게다가 이를 기반으로 클릭률을 높이기 위해 각 인터넷 언론사들이 기사를 쏟아내기 때문에 사안의 경중을 떠나 불필요한 기사가 양산된다. 

더 나아가 정치적 사안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최근 정치적 이념 대립이 극대화되며 서로 다른 성향을 가진 네티즌들이 특정 단어를 검색어 상단에 올리려 집단 행동을 하는 경우가 잦아지고 있다. ‘조국 수호’와 ‘조국 구속’이라는 두 가지 실시간 검색어가 동시에 올라온 것이 단적인 예다. 이는 여론을 호도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계속적으로 문제가 돼 온 ‘댓글 조작’의 한 갈래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게다가 4월 서울·부산 시장 보궐 선거를 앞두고 있는 터라 이런 양상이 더욱 심화될 것이란 우려 또한 커졌다. 앞서 네이버는 선거 기간 실시간 검색어 서비스를 중단하기도 했다. 검색어 순위가 투표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배제하기 위한 조치였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렇듯 선거 때마다 실시간 검색어가 정쟁의 도구로 쓰이는 것이 포털사이트 입장에서는 매우 부담스러웠을 것"이라며 "보궐 선거 직전 이 서비스를 중단한 것은 이러한 정치적 의미 또한 포함한 것이라고 해석하는 이들이 많다"고 말했다.



서비스 중단, 또 다른 풍선 효과 불러오나?

실시간 검색어 서비스가 유지되길 원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요즘처럼 정보가 넘치는 세상 속에서 바쁜 현대인들이 모든 사안을 체크할 수는 없다. 결국 검색어를 통해 현재 대중의 관심사를 읽고 트렌드에 발맞추는 이들도 많았다. 그들 입장에서는 갑작스러운 서비스 중지가 안타까울 수밖에 없다.

게다가 서비스만 중단됐을 뿐, 이슈를 좇고 알길 원하는 대중의 심리는 변하지 않았다. 결국 그동안 포털사이트 실시간 서비스를 통해 충족되던 욕구를 채우기 위한 또 다른 무언가를 찾게 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급부상한 온라인 공간은 ‘네이트 판’이다. 지난 2월10일 배구선수 이다영·재영 쌍둥이 자매가 학교폭력(학폭) 가해자라는 주장이 네이트 판을 통해 불거진 후, 이 커뮤니티에서는 배우 조병규와 박혜수, 가수 수진과 나은 등의 학폭 의혹이 잇따라 제기됐다. 대다수는 이를 부인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3월4일에는 배우 지수가 자신을 향한 학폭 폭로를 인정하며 네이트 판의 영향력에 더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가 됐다.

이에 발맞춰 그동안 검색어를 보며 트렌드를 읽고, 관련 기사를 대거 작성하던 인터넷 언론사(특히 연예매체)들의 눈은 네이트 판으로 향했다. 여기에 올라오는 글들을 지켜보고 있다가 연예인의 실명이 등장하면 소속사로 연락을 취해 입장을 듣고 기사를 쓰는 수순이다.

이처럼 네이트 판이 학폭 폭로의 장이 된 것을 비롯해 네티즌이 의견을 교류하는 공간으로 적극 활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익명성이 보장된다. 실명을 쓰지 않고도 글을 쓸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을 감춘 채 무언가를 폭로할 때 적합한 플랫폼이라는 의미다. 

게다가 댓글을 달 수 있다. 포털사이트는 실시간 검색어 서비스 중단 이전에 이미 연예·스포츠 기사에 댓글을 다는 기능을 없앴다. 악플로 피해를 입던 연예인들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 등 부작용이 발생하는 데 따른 조치였지만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란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 그런 상황 속에서 네이트 판의 댓글 기능은 네티즌의 이런 답답함을 풀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실제로 지수의 학폭 폭로가 나온 후 또 다른 피해자들이 해당 글에 동조하는 댓글을 달며 새로운 가해 주장을 내놓기도 했다.

결국 댓글 기능 삭제에 이은 실시간 서비스 중단은 여기로 쏠리던 대중의 관심과 화력을 다른 공간으로 집중시키는 풍선 효과를 낳고 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스마트폰과 SNS 사용이 일상화된 현대 사회에서 이를 사용하는 대중의 의견 개진을 원천적으로 막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최근 네이트 판의 기능이 강화된 것처럼 실시간 검색어 서비스 중단과 같은 조치가 또 다른 부작용을 낳는 것 또한 대비해야 한다"고 우려했다.

윤준호(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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