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립습니다>이제는 맛볼 수 없는 엄마의 쑥떡.. 봄비처럼 눈물만 흐르네

기자 2021. 3. 4. 10:40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토닥토닥 비가 내린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찬바람 불고 언 땅이더니 그 위를 촉촉하게 내리는 비는 봄비 같다.

어머니가 이 세상을 떠나시고부터 비는 '그리움'이다.

비가 내리면 그때 어머니 무덤가에 내리던 빗소리가 생각난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임차금(1939∼2020)

토닥토닥 비가 내린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찬바람 불고 언 땅이더니 그 위를 촉촉하게 내리는 비는 봄비 같다. 벌써 어머니가 그리워진다. 일 년 전 어머니를 선산에 묻고 내려오는 날에도 이렇게 봄비가 내렸다. 비는 산길을 오를 때도 내리더니 어머니를 묻고 내려올 때까지도 계속 내렸다.

‘어머니는 이제 더 편한 세상으로 가신 거야. 웃으며 보내드려야지.’ 다짐했는데도 눈물이 흘렀다. 어머니가 이 세상을 떠나시고부터 비는 ‘그리움’이다. 비가 내리면 그때 어머니 무덤가에 내리던 빗소리가 생각난다. 청개구리도 아니건만 비가 오면 어머니가 생각나서 혼자 ‘개굴개굴’ 울어본다.

어머니는 음식 솜씨가 뛰어나셨다. 일곱 남매를 키우면서 혹여 배 곯릴세라 여러 가지 밑반찬을 많이 장만하셨다. 새벽 일찍 장에 가서 계절별로 나는 재료들을 싸게 사 오신 어머니는 몇 달치 먹을 음식을 만들어 쟁여 두셨다. 그렇게 장만한 어머니의 장독에는 간장게장이나 어리굴젓, 호래기(꼴뚜기 사투리)무침, 물김치, 파김치 등 맛있는 음식들로 가득 찼다.

특히 내 키만큼 큰 장독에는 동치미가 있었다. 긴 겨울밤 배가 고플 때 꺼내 먹었던 동치미 무는 겨울만 되면 생각이 났다. 비가 오면 어머니가 부쳐 주셨던 부침개도 정말 맛있었다. 따끈따끈한 아랫목에 배를 대고 누워 방문을 열고 장독에, 마당에 내리는 빗소리를 듣다가 어머니가 부쳐 주시는 부침개를 먹으면 나와 어린 동생들은 참 행복했다.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이라 봄이 되면 우리는 쑥을 캐러 다녔다. 근처에 있는 경남 진주 비봉산에 가서 캐 온 쑥이 어느 정도 쌓이면 어머니는 쑥떡을 만드셨다. 그때 집어 먹던 쑥떡이 얼마나 맛있었는지 이루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내가 친정에 들를 때마다 집에는 맛있는 것이 넘쳐났는데 나중에야 그것이 나 때문임을 알았다. “언니야, 제발 엄마 하는 것마다 맛있다는 말 좀 그만해라. 엄마가 언니 좋아한다고 밤새 식혜 만들고 도토리묵 만들고 얼마나 고생하는 줄 아나?” 동생의 핀잔을 듣고서야 나는 맛있다고 하는 말을 참을 줄 알게 됐다.

어머니는 내가 도토리묵을 좋아한다고 산에서 도토리를 주워 도토리묵을 만들어 주신 적이 있었다. 철없이 해주는 음식마다 맛있다고 해서 늙으신 어머니가 고생하신 것이다. 착착 혀에 감기던 그 맛있는 도토리묵을 나는 이제 어디서 먹어볼까? 쑥떡을 먹을 때마다, 간장게장을 먹을 때마다 나는 어머니가 만들어 주신 그 향긋한 맛이 이제는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한 솥 가득 털게를 삶아놓고 동생들과 입을 찔려가면서도 맛있게 먹던 기억, 생일날이 되면 어김없이 잡채 한 접시씩을 배당받아 웃고 떠들며 먹었던 기억, 골목에 들어설 때부터 느껴졌던 어머니의 미더덕찜 향기에 몇 발 안 되는 집까지 뛰었던 기억, 밤에 자다가 일어나 부엌에서 몰래 먹었던 토란국의 기억이 어제인 듯 선하다.

가난한 집에 시집와서 고생만 하신 어머니, 음식 솜씨도 뛰어나고 노래 솜씨도 뛰어나고 인물도 뛰어났던 나의 어머니가 비 오는 날에는 더욱 그립다. 왜 더 사랑한다는 표현을 못 했을까? 왜 더 잘 모시지 못했을까? 회한으로 가득한 이 세상에 어머니 돌아가신 봄이 다시 오고 있다.

큰딸 진혜정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그립습니다·자랑합니다·미안합니다’ 사연 이렇게 보내주세요

△ 이메일 : phs2000@munhwa.com

△ 카카오톡 : 채팅창에서 ‘돋보기’ 클릭 후 ‘문화일보’를 검색. 이후 ‘채팅하기’를 눌러 사연 전송

△ QR코드 : 독자면 QR코드를 찍으면 문화일보 카카오톡 창으로 자동 연결

△ 전화 : 02-3701-5261

▨ 사연 채택 시 사은품 드립니다.

채택된 사연에 대해서는 소정(원고지 1장당 5000원 상당)의 사은품(스타벅스 기프티콘)을 휴대전화로 전송해 드립니다.

[ 문화닷컴 | 네이버 뉴스 채널 구독 | 모바일 웹 | 슬기로운 문화생활 ]

[Copyrightⓒmunhwa.com '대한민국 오후를 여는 유일석간 문화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구독신청:02)3701-5555 / 모바일 웹:m.munhwa.com)]

Copyright © 문화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