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복싱 중량급의 선두주자 백인철과 이해정[조영섭의 스포츠 산책]

조영섭 2021. 3. 4.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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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철(좌측)과 유제형의 라이벌전

[조영섭의 스포츠 산책] 코로나 광풍 여파로 침체 되어 있는 복싱계의 체감온도를 파악하기 위해 링 설치 제작 전문업체인 '복싱링 만드는 사람들' 대표이사인 박춘배 사장을 며칠 전 그의 동대문구 휘경동에 위치한 그의 사무실을 직접 찾아가 그와 오찬을 함께하며 대담을 나눴다. 

1974년 시골에서 상경 왕십리에 있는 프레스 공장에서 직공으로 일을 하면서 일과가 끝나면 성동중앙체육관에서 전 한국 페더급 챔피언 현수만 사범 휘하에서 복싱을 수학하며 아마추어 대회에 출전 16전 12승 4패를 기록하며 유망주 반열에 올라설 때 함께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우며 챔피언의 꿈을 꾸던 직장 동료가 있었는데 그가 바로 후에 WBC 슈퍼플라이급 챔피언에 등극하는 김철호였다. 

얼마 후 김철호는 경기가 잡히자 직장을 접었고 박춘배 역시 별다른 매력을 느끼지 못한 체 복싱을 접고 이후 복싱에 연관된 일을 찾다가 결국 1987년부터 왕십리에서 복싱링을 포함한 복싱용품 판매업을 시작 올해 34년째를 맞이하고 있는 '㈜복싱링을 만드는 사람들'이라는 사업체를 34년째 운영하고 있다.

수년 전만 해도 월평균 15개 전후의 링 설치를 하며 순풍이 돛단 듯 월평균 7.8백만을 찍었고 최고점을 형성한 20년 전에는 다이어트 열풍에 편승해 월평균 천만 원을 넘는 고수익을 창출했지만 지금은 백약이 무효인 상태로 링 설치는 고사하고 역으로 링 철거만 한 달에 6.7개 주문이 들어오는 답답한 현실 속에 중고물품과 월세만 쌓여가는 최악의 상황이라고 화답한다.

설상가상으로 그를 더욱더 안타깝게 만드는 것은 경기침체와 맞물려 40여 곳 체육관에서 링 설치 및 복싱용품 대금을 받지 못해 우울한 현실이라 말하면서 하루빨리 경기회복이 이뤄지길 바란다고 소회를 밝혔다. 

'복싱 링 만드는 사람들' 대표 박춘배 사장

언제봐도 백년손님 같은 현재 상계동 백병원 업무과에 근무하는 한국 아마복싱 사상 김성은, 김덕팔, 문성길, 김동길, 백현만에 이어 한국 아마복싱 사상 단 6명에 불과한 복싱 아시안게임 복싱 2연패에 빛나는 이해정이 그의 한국체대 2년 선배인 레슬링의 임동술과 62회 전국체전 때 배구 충북 대표로 출전한 친구인 사업가 황경연을 만나기 위해 모처럼 필자의 영역인 강동구를 방문 황경연 대표가 운영하는 요식업체 '㈜화로구이'에서 오찬을 함께하며 담화를 나눴다.

황경연은 63년 4월 충북 음성 출신으로 73년 제54회 전국체전에 충북 대표로 출전 페더급 결승에서 전북 대표 유종만(원광대) 에게 판정패 은메달에 머문 전직 복서로 후에 가수로 전향 논개란 곡을 불러 83년 공전의 히트를 날린 이동기(청주대)의 고향 후배다. 

79년 60회 전국체전에 전북 대표로 출전한 레슬러 임동술은 고등부 그레코로만형 무제한급에서 부산 대표 하형주에 패하면서 동메달에 그쳐 4관왕 달성에 실패했지만 이듬해 한국 체대에 진학했고 금메달을 획득한 부산체고 하형주는 동아대로 진학 81년 유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동메달을 획득한 그는 이때 까지만 해도 긁지 않은 복권이었다. 

포텐이 터진 대학 졸업반인 1984년 LA 올림픽 유도 95kg급에 출전 금메달을 획득 방점을 찍은 하형주는 본래 진주 대아중 시절인 76년 씨름선수로 활약하다 외삼촌뻘인 유도 헤비급 국가대표인 정삼현에 의해 유도로 전환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했는데 씨름, 레슬링, 유도에서 천부적인 자질을 지닌 전형적인 유틸리티 선수였다.

임동술KI건설 전무, 이해정 챔프, 황경연 화로구이 대표(우측)

프로복싱 WBA 슈퍼 미들급 챔피언 백인철도 고흥농고 재학시절 축구선수로 활약 75년 최우수선수상을 받은 뛰어난 감각을 지닌 선수였는데 바둑에서도 김환진, 유제두, 신운철, 강흥원과 함께 복싱계 최고수로 손꼽힌다. 그는 당구는 물론 레슬링에도 발군 의 실력을 보여 한때 레슬링 명문 함평농고에 진학하려 했던 사연을 간직한 멀티 복서였다.

이곳에서 WBA 슈퍼미들급 챔피언 백인철과 아시안게임 2연패를 달성한 이해정이 함께 자리했다. 1963년 1월 탁구 여제 이에리사와 레슬링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박장순과 함께 대천의 3대 스포츠 스타로 손꼽히는 이해정과 60년 1월 21일 전남 고흥 출신의 백인철은 아마복싱과 프로복싱의 중량급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복서다.

82, 86년 아시안게임 2연패와 함께 83년 아시아 선수권을 제패한 이해정은 묵직한 펀치력은 없지만 면도날처럼 날카로운 잽에 이어진 정교한 연타를 주무기로 각종 대회에서 올림픽 금메달 신준섭(원광대)과 박시헌(경남대), 아시안게임 금메달 홍기호(서원대), 아시아선수권 금메달 김의진(군산대), 올림픽 대표 안달호(일우공영), 월드컵 대표 이성목(상지대)과 맞대결 승리를 거둔 한 시대를 풍미한 정통파 복서였다. 

그런 그가 83년 로마 월드컵과 84년 LA 올림픽 85년 월드컵 선발전에서 홍기호와 안달호에 연패 부침을 겪었지만 슬기롭게 극복하고 대학 졸업반인 86년 아시안게임에서 대회에 국가대표로 복귀 2연패를 달성하면서 대미를 장식하고 국민 체육훈장 백마장과 거상장을 받았다. 

그 당시 전두환 대통령, 정주영 대한체육회 회장, 김승연 복싱협회장, 충남 도지사 등 각계각층에서 수금한 돈이 차곡차곡 쌓이자 어느덧 물경 2천만 원에 달했는데 그 당시 강동구 웬만한 아파트 2, 3채는 살 수 있는 큰 액수였다. 

이해정 챔프와 백인철 챔프(우측)

대학 졸업과 동시에 복싱을 접은 이해정은 당곡중 코치로 변신 88년 소년체전 본선에서 지인진, 정연수 등 금메달 3개를 획득하여 지도력을 인정받았으나 복싱판에 인생을 걸기에는 뭔가 2%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자 방향을 전환 상계동 백병원에 89년부터 근무하면서 복싱판과는 불원불근의 일정한 거리를 둔 채 32년 동안 백병원에 근무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프로복싱 중량급의 블루칩인 WBA 슈퍼 미들급 챔피언 백인철인 무골호인이라 불릴 정도로 평판이 좋은 정도를 걷는 복싱인으로 통산 50전 47승(43KO) 3패를 기록한 명복서다. 

특히 황준석, 유제형, 박종팔, 이상호, 김종호, 정영실, 정상도 등 국내 정상급 복서와 벌인 18차레 맞대결에서 단 한 차례도 패하지 않았고 그중 16차례는 KO로 장식한 실력파였던 백인철은 한방에 경기를 종결시키는 스타일이 아닌 서서히 상대를 침몰시키는 컨택형 슬러거인 그를 그래서 그를 전문가들은 그를 침묵의 도살자라 불렀다.

이 전법으로 1980년 5월 9일 프로에 전향 이후 26연속 KO 행진을 펼쳐 한국 복서 중 유일하게 기네스북에 등재된 그는 프로 데뷔후 10년 후 인 89년 5월 28일 세계 정상에 올라 90년 3월 30일 프랑스에서 벌어진 타이틀전에서 백인철은 한국 프로복싱 사상 최고의 파이트 머니인 32만 불을 받으며 비록 6회 KO패로 벨트를 풀었지만 또 하나의 기록을 추가했다. 

대전대 한정훈감독 이해정 챔프 대전 체육회  김왕순차장(우측)

백인철은 자기관리가 부실했지만 천부적으로 타고난 체력과 펀치력 테크닉으로 커버하여 정상급 복서로 발돋움 했다. 

이에 반해 이해정은 백인철에 비해 복싱 피지컬은 다소 부족했지만 꾸준한 훈련으로 부족한 파워를 속사포 같은 연타로 커버하고 날렵한 스텝으로 극복하며 정상에 올라 설 수 있었던 초석이 되었다. 

조지훈의 낙화 첫 구절에 나오는 "꽃이 지기로 서니 바람을 탓하랴"란 글처럼 복서는 자신의 단점을 바라보며 불평을 하면 절대 금물이다,

동물의 세계에서도 뿔이 있는 소는 날카로운 이빨이 없고 이빨이 날카로운 호랑이는 뿔이 없다. 또한 날개 달린 새는 다리가 두 개뿐이지만 날 수 없는 고양이는 다리가 4개다. 

장점이 있으면 단점이 있고 단점이 장점이 되고 장점이 단점도 될 수 있다고 보는데 이것을 유추해보면 할 수 없다는 핑계를 대는 것보다는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성공은 성공 지향적인 사람에게만 다가오고 실패는 스스로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체념해 버리는 사람에게 온다.

올림픽 금메달 신준섭과 맞수 이해정(우측)

각설하고 필자는 32년 동안 아마와 프로를 관통하는 현장에 있으면서 보편적으로 느끼는 점은 아마추어 출신 복서들이 프로 복서들보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노후 준비가 상대적으로 두텁고 탄탄하게 준비되어 있다는 점이다. 

얼마 전 대전 복싱 연맹 한정훈 회장 취재 때 절실히 느낀 점은 자리에 동석한 한정훈 대전대 복싱 감독 겸 회장과 김왕순 대전체육회 차장, 이해정 백병원 업무과장 등 3명의 연봉이 7.8천만 원 선을 유지하면서 퇴직 후엔 3백만 원 선을 오가는 연금을 수령 하는 전직 아마추어 복서들을 지켜보면서 짧은 선수 생활 이후에 다가오는 빙하기에 대처하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현역 은퇴 후 안정된 직장이 급선무라는 생각이 든다. 

일정하게 들어오는 적은 돈은 불규칙적으로 들어오는 큰돈보다 힘이 훨씬 세다. 우리네 삶은 뒤로 갈수록 편안하고 빛나야 한다. 노후에 과거를 자랑할 이야기밖에 없으면 스스로 처량해진다. 

화려한 현역시절엔 훨훨 나는 호랑나비처럼 경이롭고 생동감 있게 보이지만 은퇴 후 경제적으로 궁핍한 생활의 연장선에 놓이면 애벌레의 처절한 삶처럼 회귀한다는 평범한 생각을 이순을 목전에 둔 필자가 비로소 깨달은 철학이다. 아무쪼록 한국 복싱사에 한 획을 그은 두 복서의 건승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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