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훤의 왈家왈不] 우리집 가족사진에 대통령이 들어갈 수 있는 이유

전태훤 선임기자 2021. 3. 4.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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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값이 오르면 누가 가장 좋아할까?

대부분 집을 가진 사람이라 생각할 거다. 남들이 불로소득이라 하든, 그보다 더한 소리를 하든, 오른 집값만큼 자산이 불었을 테니 말이다.

정부 부동산 시세 조사 기관인 한국부동산원 통계에 따르면 서울의 평균 아파트값이 9억원을 처음으로 넘어섰다. 민간 시세 조사 업체인 KB국민은행과 부동산114 통계로는 이미 지난해 3월과 2019년 7월에 각각 9억원을 돌파했다. 시세 반영이 뒤처진다는 정부 통계로도 서울 아파트의 절반이 고가주택의 기준인 9억원을 넘겼다는 얘기니, 이 정도면 고가인 듯 고가 아닌, 고가 같은 주택이 넘쳐났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내 집이 고가주택이 됐다고 웃는 이들도 있겠다. 그런데 이들보다 더 좋아라 하는 쪽이 있다. 아이러니하지만, 25번의 부동산 대책을 쏟아내며 아직까지 집값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바로 이 정부다.

왜 그런지는 자세히 설명을 달지 않아도 이미 알아챘을 거다. 집값이 오른 만큼 거기에 따라붙는 세금이 쉽게 늘었기 때문이다. 2주택 이상인 경우 집을 사거나 팔 때 세금이 중과되는 건 물론, 집이 하나뿐인 경우라도 실거래가 9억원 이상인 고가주택에 포함되면 종합부동산세를 내기 시작하면서 보유세가 무거워진다.

집값이 오르면 일단 불로소득이란 굴레가 씌워진다. 그런데 오른 집값을 기반으로 올린 세금엔 아무 말이 없다. 집값 상승이 불로소득이라면, 가만히 앉아 늘어난 세수로 ‘표정관리’가 필요할지 모를 정부엔 ‘세금 정치’라는 말이라도 붙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오죽하면 잇단 부동산 대책 실패를 두고 세수 확보를 위한 ‘계산된’ 전략이란 음모론까지 나왔을까.

돈(예산) 쓸 곳은 많은데 세금 싫다 할 정부가 어디 있겠나. 지금 정부가 주택시장 안정이란 명분으로 얽어놓은 부동산 세제를 고집하는 것을 두고 부동산 세수를 지키려는 계산이 깔려 있다고 한들 그리 어색하지 않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최근 야당 의원들이 종합부동산세 과세 기준을 3억원씩 올리자는 내용(1주택자 9억원→12억원, 다주택자 6억원→9억원)을 담은 종합부동산세 개정안에 대해서도 정부와 여당은 부동산 시장 안정을 이유로 일축했다.

2008년에 정해진 이후 13년째 그대로인 고가주택 기준(9억원)에 대한 논란을 두고도 말이 많다. 이 기준대로면 서울 아파트의 절반이 고가주택이란 말인데, 고가주택의 기준을 올려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어도 지금 정부는 기준 상향에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집값 상승에 따른 부동산 중개수수료율 개편을 권고함에 따라 고가주택인 9억원 이상의 중개 요율을 세분화한 것과도 맞물려 고가주택 기준을 올려야 한다는 여론도 무르익었지만 당정이 반길 리 만무하다. 집값 상승에 기름을 부을 수 있다는 방어논리 뒤에 부동산 세수 확보라는 셈법이 있어서다.

정부 곳간이 늘어나는 만큼 아직 집이 없는 ‘비자발적’ 무주택자의 설움은 더 커진다. 세금과 대출 규제가 까다로워 지는 9억원 이상 주택이 늘어날수록 이들의 내 집 마련은 더 어려워진다. 집값이 6억원만 넘어도 보금자리론과 같은 정책 모기지론을 받지 못한다. 집값이 제자리걸음을 하는 것도 아니고 하루가 다르게 뜀박질을 하고 있으니, 6억원 아래에서 고를 수 있는 집이 점차 주는 것도 그렇다.

여기에다 정부가 검토 중인 개인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강화와 신규 분양시 전월세를 금지해 입주를 의무화하는 법안까지 나온다면, 현금깨나 쥐고 있지 않으면 집을 사기도 새 아파트를 분양받기도 더 까다로워진다.

부동산 대책이 나올 때마다 매번 무주택∙실소유자를 위한 정책이란 점을 강조했던 정부다. 그래서 집 문제로 고민하는 그들의 시름이 사라지고, 그들의 내 집 마련 꿈은 더 가까워졌을까?

최근 한 대학 부동산 전공 교수로부터 재미있는 얘기를 들었다. 가족 사진을 찍을 때 포즈를 취하는 위치에도 보이지 않는 나름의 원칙이 있다는 거였다. 가장을 중심으로 배우자와 아들, 딸, 부모 세대가 함께 서는데, 보통은 가계 소득이 가장 많이 지출되거나 신경써야 하는 우선순위가 높을수록 가장과 가깝게 선다는 거다. 그러면서 앞으로 유주택자가 가족사진을 찍는 경우에는 대통령도 가족사진에 함께 넣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도 있다고 했다.

나라 곳간 채울 걱정만큼 이젠 민생 주거 실정에 맞는 틀과 기준이 무엇인지 부디 고민 좀 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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