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손병호 "'멀리가지마라', 내 안의 희망 깨운 도전"
“무대와 브라운관을 넘나들며 활동하면서 어느 순간 스크린과는 다소 멀어졌던 것 같아요. 늘 마음 한켠에는 갈증, 꿈이 있었지만요. 잠들어있던 제 안의 희망을 다시금 깨워준, 연기에 대한 더 큰 열망과 설렘을 안겨준 기회였어요.”
베테랑 배우 손병호(58)가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당당히 ‘K-막장극’이라고 선언한, 영화 ‘멀리가지마라’(감독 박현용)를 통해서다. 영화는 아버지의 임종을 앞두고 모인 가족들이 유산 분배에 불만을 터트리고 있을 때, 아이를 살리고 싶으면 20억을 준비하라는 유괴범의 협박전화가 걸려오면서 점잖았던 속속들이 벗겨지는 한 가족의 민낯을 까발린다. 손병호는 극 중 반전을 품은 둘째로 분해 역대급 열연을 펼친다.
그는 인터뷰 내내 위트와 유쾌한 에너지, 진지함을 오가며 작품에 대한 애정과 배우로서의 가치관, 앞으로의 꿈에 대해 진솔하게 들려줬다. 다음은 손병호와의 1문1답이다.
Q. 영화가 4년 만에 개봉하게 됐다. 소감은?
A. 행복하고 기쁘다. 아니 그 이상의 뭉클함이 있다. 이 어려운 시국에 관객과 소통할 수 있다니,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주연으로서 영화를 선보이게 된 것도 감격스럽고 무엇보다 새로운 도전, 독특한 개성이 돋보이는 작품이어서 뿌듯하다.
Q. 말한대로 다소 독특함이 묻어나는 영화다. 선택 이유는?
A. 일단 시나리오가 너무 좋았다. 공감이 가는 심리들의 보이지 않는 격돌이 아닌가. 인간적이면서도 웃프고 강렬하다. 연극 무대를 옮겨 놓은듯한 연출도 좋았다. 자유로웠다고나 할까? 어떤 면에서도 안 할 이유가 없는 작품이었다.
Q. 극중 맡은 인물이 굉장한 반전을 품고 있다
A. 정헌철은 형제들에게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성격을 지녔다. 아버지의 유산 배분이 이뤄지고 형이 9억을 챙기는데 자신은 동생들과 똑같은 3억 밖에 상속 받지 못한다는 사실에 씁쓸해 한다.
사실 최대한 (반전을) 숨겨야 해 힘들었다.(웃음) 생각할 게 너무 많고 ‘척’도 많아서. 꿍꿍이 속마음을 내색하면 안 되니까 자연스럽게 그것을 표현해 연기해야 하니 쉽지만은 않았다.
Q. 그 외 어려운 점은 없었나
A. 없었다. 무대라는 공간은 내게 매우 익숙하기 때문에 오히려 그 실험적 도전들이 장점으로 다가왔다. 배우들 간 소통이 잘 됐고 그것이 케미로 이어지더라. 온 몸을 사용할 수 있고 보다 다양한 표현력이 허락되는 환경이라 좋았다. 몰입도에 큰 도움이 됐다.
A. 사실 처음엔 아버님 계신 거주 공간을 ‘강화도 펜션’에서 하려고 했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촬영할 수 있는 기반이나 여러 가지 환경이 너무 안 맞고 열악하더라. 감독이 아이디어를 내 구조만 있고 불빛과 카메라만 사용해 연극 무대처럼 구성해 재탄생 시켰다. 그 과정이 모두 기억에 남고 결과적으로도 탁월했다.
Q. 만족도가 높아 보인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은?
A. 시나리오의 힘이 가장 크다. 예상치 못한 마지막 반전까지 참 알차다. 여기에 연극적 요소가 가미돼 예술적인 감각이 묻어나 좋았다. 그 부분이 다른 영화와 차별화된 장점이 아닌가 싶다. 독특하고도 깊이가 있어 보인다는 말을 많이 들어 기분이 좋더라.
연기에 있어서는 물론 항상 아쉬움이 남지만, 사실 이번에는 스스로도 좀 칭찬해주고 싶다. 편안하게 내 스타일대로 할 수 있었던 적인지 처음으로 ‘나도 이제는 조금...조금은 잘 하는데?’라는 생각을 해봤다. 하하!
Q. 오랜 기간 다양한 캐릭터, 작품을 해오며 보다 굳건해지는 가치, 소신이 있다면?
A. 할수록 어렵다는 말이 정말 정말 진실이더라. 얼마나 많은 표현법이 있는지 갈수록 알아가다 보니 선택 하나하나가 어렵고 고민이 되더라. 만족이 되는 순간이 정말 없더라. 그래서 이런저런 시행착오 끝에 결국 ‘연기하지말자’ ‘척 하지말자’였다. 그 인물이 처한 상황에 그냥 들어가 상대방의 리액션을 받는 거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내가 그 인물이 되는 것밖에는 길이 없더라. 지금도 여전히 어렵고 힘들고 두렵지만 그래서 설레고 에너지가 줄지 않는다.
Q. ‘멀리가지마라’는 어떤 작품으로 남을 것 같나?
A. 희망을 보게 해준 작품이다. 새로운 가능성, 아직도 충분히 더 많은 걸 해낼 수 있을 거라는, 발전할 수 있다는 좋은 기운을 많이 받았다.
Q. '가족'은 어떤 의미인가?
A. 내가 아침에 일어나는 것, 일을 하는 것은 모두 아내와 두 딸 때문이다. 가족에게서 에너지를 얻고 뛸 수 있는 힘을 얻는다. 아내가 생기고 나서 일을 하게 됐고, 딸이 생기면서 TV와 영화에 나올 수 있게 됐다. 가족 덕분에 좋은 일만 생긴다고 믿는다. 첫째 딸이 태어났을 때 영화를 하게 됐고, 둘째 딸이 태어났을 때 예능 프로그램에 나가 '손병호 게임'이라는 것도 만들었다. 사랑하는 아내와 두 딸이 나를 바라보고 있지 않나. 그들에게 웃음을 주고 싶다. 그것이 가족이 저를 밀어주고 끌어주는 힘이다.
Q. 관객들에게 한 마디.
A. 어려운 시기에 만날 수 있게 돼 정말 기쁘다. 소통이 부재해 소통이 더 절실해진 시기, 이럴 때일수록 예술의 힘이 빛을 발휘하지 않나 싶다. 거기에 우리 영화가 힘이 된다면 영광스러울 것 같다. 가족의 이야기이지자 보편적인 메시지를 지닌, 독특한 개성이 있는 작품이다. 마음껏 즐겨주셨으면 좋겠다.
‘멀리가지마라’는 웃음이 나지만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아이러니를 통해 ‘선을 넘지 말라’는 당연하지만 지키기 어려운 메시지를 다양한 방식으로 강조한다. 유괴에 얽힌 가족들의 이야기를 외피로 우리가 일상에서 매일 보고 듣는 소소한, 혹은 거대한 일들 속에 헛웃음 짓게 만드는 것들을 빗대어 표현한다.
비극적인 상황을 묘하게 풍자, 블랙코미디의 진수를 표방하며 스크린으로 옮겨진 연극 무대, 이 독특한 구성으로 새로움을 꿰한다. 작은 영화의 힘을 보여주기 위해 실험적 시도를, 부족한 공간은 배우들의 내공으로 채우고자 했다. 4일 개봉.
kiki2022@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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