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롯 전설'이 된 나의 인생곡⑦] '안동역에서' 진성, "꿈같은 반전 히트"
트로트가 밝고 젊어졌다. 최근 몇 년 사이 방송가에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이 활성화되면서다. 전통적으로 중장년층 전유물처럼 여겨지던 트로트 팬층도 훨씬 넓고 깊고 다양해졌다. 덕분에 잊혔던 곡들이 리바이벌 돼 역주행 신화를 만들기도 한다. 누구나 무명시절은 있기 마련이고 터닝포인트도 있다. 수많은 히트곡을 낸 레전드 가수들 역시 인생을 바꾼, 또는 족적을 남긴 자신만의 인생곡에 각별한 의미를 두고 있다. 단 한 두 곡의 히트곡만을 낸 가수들이라면 더욱 애틋할 수밖에 없다. 가수 본인한테는 물론 가요계와 팬들이 인정하는 자타공인 트로트 인생곡들을 조명한다. [편집자 주]
40년 무명 인생 바꾼 '한(恨)과 울림'의 인생 노래
[더팩트|강일홍 기자] 진성은 방송가에 트로트 오디션 열기가 확산된 이후 가장 많은 수혜를 받은 가수로 꼽힌다. 조용하고 말 수가 적은 진중한 스타일이면서도 레전드 가수답게 음악에 대한 임팩트 있는 팁은 시청자들의 무한 공감을 샀다.
그가 부르는 노래 중에는 유독 슬픔과 한을 되새김질하는 곡이 많다. 가요계에선 한(恨)과 깊은 울림의 목소리를 가진 가수로 정평이 나 있지만, 전국민이 인정하는 스타가수로 등극하기까지 그에는 남다른 삶의 이력이 숨어있다.
'안동역에서'는 그에게 오랜 무명생활을 벗게 해준 인생곡이다. 2008년 첫 음반 발표 후엔 아무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사실은 스스로도 마음에 들지 않아 거의 부르지 않았다고 한다. 이 곡이 세상에 다시 알려지기까지 무려 6년이 걸렸다.
2014년 작사가 김병걸이 "지금 이 시기에 부르면 딱 히트할 곡"이라고 권유하자, 그는 나훈아가 부른 '어메'의 작곡자 정경천씨한테 부탁해 복고풍 리듬으로 편곡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재발표한 지 불과 3개월 만에 반응이 왔다. 그리고 1년여만에 역주행 신화를 쓰기 시작했다.
"모든 게 다 꿈만 같았죠. 10대 후반 밤무대서부터 노래를 부르기 시작해 쉰 살이 넘도록 무명이었으니까요. 솔직히 크게 기대를 하지 않았고, 더이상 승부가 나지 않으면 장사라도 해서 먹고 살 궁리를 하던 차에 뒤늦게 히트곡이 터진 거죠."
'안동역에서'의 히트는 애초 타이틀 곡도 아니었기 때문에 의외로 비쳤다. 이 곡이 터지면서 그를 상징하는 '님의 등불' '태클을 걸지마' '보릿고개' 등 이전까지 크게 알려지지 않았던 곡들까지 덩달아 히트 대열에 올라서는 계기가 됐다.
"17살부터 10년 이상 남의 노래로만 무대에 섰고, 93년에야 '님의 등불'로 정식 데뷔했어요. 이후 '사랑은 장난이 아니야' '내가 바보야' 같은 노래를 불렀는데 여전히 가수로는 존재감을 내지 못했죠. '안동역에서'의 히트가 제 40년 무명가수 인생을 바꾼 셈입니다."
'바람에 날려버린 허무한 맹세였나/ 첫눈이 내리는 날 안동역 앞에서 만나자고 약속한 사람/ 새벽부터 오는 눈이 무릎까지 덮는데/ 안오는 건지 못오는 건지 오지 않는 사람아/ 안타가운 내 마음만 녹고 녹는다 기적소리 끊어진 밤에'(진성의 '안동역에서' 1절)
누구에게나 단 한번의 첫사랑의 기억은 있다. 아픈 이별의 쓰라림도 한번쯤은 가슴에 담고 있을터다. '안동역에서'는 연인간 보편적인 사랑과 이별을 소재로 해 애틋함을 더한다. 진성은 "안동역이란 특정 지역이 언급돼 대중적 히트가 쉽지 않을 것이란 우려는 기우였다"고 말했다.
사실 진성은 어려서부터 살아온 과정이 남다르다. 불행하게도 부모가 모두 3살때 차례대로 집을 떠나 홀로 내팽개쳐 져 친척집을 전전하며 살았다. 철이 들 때까지 외로움과 원망, 우울함, 가슴속 증오만 남은 가슴 아픈 과거가 켜켜이 쌓였다.
그의 또 다른 히트곡 '보릿고개'에도 사연이 있다. 2000년대 중반 고향인 전북 부안에 있는 아버지 산소에 술 한잔 개고 돌아서는데 '너는 이 바닥 생활이 몇년인데 아직도 그 모양이냐'는 아버지의 환청이 들렸다고 한다.
진성은 "저도 모르게 '내 인생 태클을 건 분은 바로 당신'이라고 항변했다"면서 "순간 떠오르는 느낌을 가사와 리듬으로 급히 담배값을 찢어 메모했고, 불과 5분 만에 곡의 기본 구상이 완성됐다"고 말했다. 그는 평소 무명 시절을 돌이키며 "시련과 고난도 내겐 축복"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eel@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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