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오늘] 정치인의 단견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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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사학자 루트비히 크비데(Ludwig Quidde, 1858.3.23~1941.3.4)는 나치와 나치 이전 빌헬름2세 독일 제2제국의 광기에 맞서 정치인의 역할을 촉구하고 지식인의 윤리적 책임을 실천한 평화주의자다.
브레멘자유시의 부유한 상인 집안에서 태어나 1894년 괴팅겐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그해 발표한 17쪽짜리 팸플릿 '칼리굴라: 제국의 광기에 대한 연구'로 제국 황제 빌헬름2세의 폭압을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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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사학자 루트비히 크비데(Ludwig Quidde, 1858.3.23~1941.3.4)는 나치와 나치 이전 빌헬름2세 독일 제2제국의 광기에 맞서 정치인의 역할을 촉구하고 지식인의 윤리적 책임을 실천한 평화주의자다.
브레멘자유시의 부유한 상인 집안에서 태어나 1894년 괴팅겐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그해 발표한 17쪽짜리 팸플릿 '칼리굴라: 제국의 광기에 대한 연구'로 제국 황제 빌헬름2세의 폭압을 비판했다. 79개의 각주를 단 그 짧은 팸플릿은 A.D. 1세기 로마 폭군 칼리굴라를 '자기애성 인격장애(megalomania)' 환자로 규정하며 통렬히 비판한 내용이었지만, 눈 밝은 독자라면 누구나 행간의 빌헬름2세를 쉽사리 찾을 수 있었다고 한다. 실명으로 발표한 그 팸플릿으로 갓 박사학위를 받은 그의 강단 학자로서의 길은 사실상 차단됐고, 팸플릿도 대부분 압수당해 몇몇 간행물에 실린 리뷰마저 없었다면 존재 자체가 잊혔을지 모른다고 한다. 그는 전임 황제 윌리엄1세(1881~1888 재임) 기념 메달을 공개적으로 조롱해 '불경죄'로 3개월 옥살이를 하기도 했다.
1차대전 직후 그는 승전국이 베르사유조약으로 부과한 독일에 대한 과도한 배상금을, 민족주의가 아닌 평화주의자의 관점에서 격렬히 비판했다. '굴욕과 경제적 비참으로 찢긴 독일의 민족 정서는 세계 평화의 상시적인 위험 요소가 될 것이다. 천부의 인권과 최저의 생활수준을 보장하는 것이야말로 평화의 믿음직한 기둥이기 때문이다.(...) 국제 정치 지도자들은 오늘을 넘어 인류의 미래를 생각해야 하며(...) 인류 공통의 안녕을 위해 새 질서를 창조해야 한다. 단견에 치우쳐 남용하는 권력은 모든 것을 망칠 것이다." 1918년 평화학회에서 행한 그의 예언적 연설은 1939년 2차대전으로 입증됐다. 그는 나치 집권 후 스위스로 망명했다.
그의 주된 활동 무대는 다수의 '노벨 평화상' 수상자를 배출한 '독일평화협회(1892년)'였고, 그도 1927년 노벨평화상을 탔다.
최윤필 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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