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C] 170시간의 초과근무

유환구 2021. 3. 4.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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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그는 실무자들의 이름을 일일이 거론하며 "OOO 사무관이 실무를 담당했는데 지난 한달 동안 초과근무만 170시간을 했다. 초과근무 수당이 57시간까지밖에 지급이 되지 않는데 애를 많이 써주셨다. OOO 과장은 마스크에 고흐의 '별 헤는 밤'을 하고 다닐 정도로 밤을 꼬박꼬박 새우면서 데이터베이스를 정리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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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예비후보가 28일 서울 마포구 경의선 숲길에서 '서울을 걷다: 마포편' 정견발표를 하고 있다. 뉴시스

올해 초 중소벤처기업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고통 받는 소상공인들에게 '세계에서 가장 빨리' 버팀목자금을 지급했다. 첫날 신청한 101만명에게 총 1조4,317억원을 지급했는데, 신청자들은 빠르면 3시간 늦어도 다음날 오전에는 100만~300만원의 지원금을 받을 수 있었다.

이 사실은 박영선 당시 중기부 장관의 입을 통해 알려졌다. 1월 12일 열린 버팀목자금 세부집행방안 브리핑에서 그는 "지원금이 가장 빠르게 나간 나라가 스위스, 독일인데 이들도 하루 내지는 이틀이 걸렸다. 우리처럼 2~3시간 만에 지원금을 통장으로 입금하는 사례는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세계 1위를 달성한 '비결'도 소개했다. 그는 실무자들의 이름을 일일이 거론하며 "OOO 사무관이 실무를 담당했는데 지난 한달 동안 초과근무만 170시간을 했다. 초과근무 수당이 57시간까지밖에 지급이 되지 않는데 애를 많이 써주셨다. OOO 과장은 마스크에 고흐의 ‘별 헤는 밤’을 하고 다닐 정도로 밤을 꼬박꼬박 새우면서 데이터베이스를 정리했다"고 했다.

초과근무 170시간. 감이 오지 않아 30일로 나눠봤다. 대략 6시간이 나왔다. 한달 내내 쉬지 않고 일해도 매일 자정 무렵 퇴근을 해야 채울 수 있는 숫자다. 더구나 170시간 중 113시간은 '유노동 무임금'이다.

두 달 가까이 지난 일을 꺼낸 것은 박 전 장관이 지난 1일 여당의 서울시장 후보가 됐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서울시는 박원순 전 시장 재임 기간 공무원 7명이 극단적 선택을 한 곳이다. 2017년 9월 스스로 목숨을 끊은 20대 서울시 공무원은 숨지기 전 한달 동안 170시간 초과근무를 한 것으로 조사됐다.

현 정부는 2018년 처음으로 주 52시간 근로제를 도입했다. 장시간·야간 근로 관행을 개선하기 위한 취지였다. 특정 기간 집중 근무가 필요한 업종별 사정을 감안해달라는 경영계 요구도 거부했다. 예외를 허용하기 시작하면 제도의 취지가 무색해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공무원은 52시간제 적용 대상이 아니어서 A사무관의 장시간 노동에 법적인 문제는 없다. 그러나 52시간제가 정권의 핵심 정책과제란 점을 떠올리면 공직사회가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중기부가 민간 기업이라면, '사업주' 격인 박 전 장관은 2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다.

지금은 코로나19와 싸우는 전시나 다름없다고 할지 모르겠다. 공무원들의 헌신 덕분에 더 빨리, 더 많은 소상공인들이 정부 지원을 받게 된 것도 사실이다. 중기부만의 일도 아니다. 다른 관련 부처나 공공의료기관 종사자들은 국가적 재난 상황이란 이유로 무한정 희생과 헌신을 강요받고 있다.

문제는 이 싸움이 전투가 아니라 전쟁이라는 점이다. 1년 넘게 계속되고 있고, 언제 끝날 지도 모르는 장기전이다. 사람을 '갈아넣어' 성과를 내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지속가능하지도 않다. 더구나 직원의 과로는 칭찬이 아니라 자책의 대상이다. 과도한 초과근무가 발생한 원인을 살피고, 시스템을 개선해야 할 의무가 조직의 수장에게 있어서다.

서울시장은 1,000만 시민의 대표이자 중기부보다 훨씬 큰 서울시 공무원 조직의 최고 책임자다. 성공한 시장이 되려면 좋은 상사가 돼야 한다. 그래야 공무원들이 더 창의적인 정책을 펼칠 수 있다. 과로가 미담이 되던 시대는 지났다.

유환구 기자 red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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