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의 ‘대·반·전’ 정책, 미국 일으킬 경제 백신 될까

김기훈 경제전문기자 2021. 3. 4.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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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훈 전문기자의 Special Report] 바이드노믹스 앞날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로이터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1월 20일 취임한 지 40여 일이 지나면서 바이드노믹스(Bidenomics·바이든 대통령의 경제정책)의 방향이 구체적으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직후 잇따라 행정명령을 발동하면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정책 기조를 뒤집는 탈(脫)트럼프 작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전임 대통령의 그림자를 지우고 새로운 비전을 실행하려는 그의 발목을 코로나 사태가 붙잡으면서 반(半)트럼프 형국이 나타나고 있다. 최석영 외교부 경제통상 대사는 “바이든 대통령은 같은 민주당 출신인 버락 오바마 대통령 시절의 정책을 부활시켜 확대하려 하고 있지만, 코로나 사태로 공화당 출신 트럼프 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 보호무역 정책이 이어지고 있는 절충 상태”라고 평가했다.

쏟아지는 새로운 행정명령

김기훈 경제전문기자

바이든 대통령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미국 민주당 텃밭인 중산층을 공략해 대통령에 당선된 점을 반성, 이 지지 기반을 되찾아오는 방향으로 경제정책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는 대선 기간 경제 공약으로 ①확장적 재정 정책 ②다자주의 무역 ③환경-노동-인권 강조 ④강경한 대중(對中) 정책을 내걸었다. 이 가운데 앞의 세 가지는 오바마 전 대통령의 경제정책과 맥을 같이한다. 넷째는 트럼프 전 대통령과 정책 노선이 같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직후 먼저 1조9000억달러의 3차 경기 부양책을 내놓았다. 재닛 옐런 신임 재무장관은 재정에 큰 부담을 주는 막대한 경기 부양 자금에 대해 “앞으로 더 큰 대가를 치르지 않기 위해서는 그 돈이 필요하다. 비용보다 효과가 더 클 정책이다”라며 확장적 재정 정책에 대해 결연한 입장을 표시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또 트럼프 전 대통령이 탈퇴한 파리기후변화협약과 세계보건기구(WHO)에 재가입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트럼프의 정책을 뒤집었다. 연방정부의 차량을 전부 전기차로 교체해 전기차 산업을 육성하고, 화석 에너지 보조금을 폐지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행정명령에도 서명했다. 풍력 에너지 생산을 2030년까지 현재보다 100% 확대하고, 2050년까지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자연 감소분을 초과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환경 목표치도 제시했다. 그는 이러한 친환경 정책을 수행해나가기 위해 ‘국가 기후변화 태스크포스’를 창설해 지나 매카시(McCarthy) 전 환경청장을 국가기후변화 고문으로 임명했다.

통상 정책은 트럼프 계승

환경 및 기후변화 분야와 달리 무역 정책은 주로 트럼프 시대의 정책이 이어지고 있다. 그는 지난 1월 취임 후 트럼프 전 대통령이 시행한 각종 무역 규제를 재검토하는 조치를 취했다. 예컨대 1962년 무역확장법 제232조에 따른 철강 수입 규제, 1974년 통상법 제301조에 따른 불공정 무역 관행 철폐(대중국 관세 조치)와 통상법 제 201조에 따른 글로벌 세이프가드 조치(세탁기·태양광 패널 등에 대한 긴급 수입 규제)의 철폐 여부를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얼핏 보기에는 트럼프 노선 뒤집기처럼 보이지만 아직까지 실제 정책에는 큰 변화가 없다.

/사진=AP 연합뉴스, 그래픽=박상훈

특히 트럼프의 대외 통상 정책의 핵심 가운데 하나인, 미국 내에서 생산된 미국 제품을 우선적으로 소비하는 바이 아메리칸(Buy American) 정책은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중국에 대한 단호한 입장도 변화가 없다. 바이든 대통령은 중국의 불공정한 무역 관행과 합작 미국 기업의 기술 이전 강요, 지식재산권 침해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중국 기업의 미국 투자 제한, 첨단 기술 제품의 중국 수출 통제, 대중국 고관세 정책 등 트럼프 전 대통령의 상징적 정책도 유지되고 있다. 다만 중국과 1대1 대결 양상을 취했던 트럼프 전 대통령과 달리, 바이든 대통령은 동맹국과 협력해 중국을 제재하는 방식을 추진 중이다. 이에 맞서 중국은 중국의 제조 기술을 2025년까지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중국 제조 2025’ 프로젝트를 포기할 수 없다는 입장이어서 미·중 양국의 기술 갈등은 바이든 정부에서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반도체 공급망 재검토

바이든 대통령의 행정명령 가운데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지난달 24일 발령한 국방·ICT(정보통신 기술)·에너지·농업·보건·환경 등 핵심 산업 6분야의 공급망 재편 검토다. 여기에는 반도체 공급망의 재편도 포함되어 있다. 미국에서 반도체가 부족해 산업이 제대로 가동되지 않는 측면이 있고, 중국이 미국의 반도체를 활용해 응용한 기술을 개발하면서 미국의 경쟁력을 잠식하는 사태를 막아야 한다는 위기감도 깔려 있다. 중국이 반도체를 기술 경쟁의 지렛대로 활용하는 것을 막겠다는 그의 정책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한국의 반도체 기업에도 영향을 줄 전망이다.

바이든 대통령의 주요 경제 공약

미국 정부는 반도체 공급 사슬의 취약점을 파악하고자 미국 업계의 이해 당사자들과 집중적인 검토와 분석을 진행 중이다. 국내 반도체 업계 한 전문가는 “바이든의 행정명령은 미국과 가치를 공유하는 동맹국 간의 공급망을 새로 만들고, 가치를 공유하지 않으면 공급망을 끊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고 말했다.

한국 기업들 미국행 빨라질 듯

바이드노믹스는 코로나 사태에 맞서 신속한 백신 접종과 적극적 확장 정책을 시행하면서 올해 미국 경제 부활에 일단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IMF(국제통화기금)는 미국의 GDP(국내총생산) 성장률이 지난해 마이너스 3.5%에서 올해에는 플러스 5.1%로 돌아설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미·중 경제 전쟁에서 바이든 대통령의 정책 기조가 트럼프 전 대통령보다 더 효과적일지는 미지수다. 영국 싱크탱크 경제경영연구소(CEBR)는 미국의 경제성장률이 2022년부터 다시 1%대로 낮아지면서 당초 예상보다 5년 빠른 2028년에 중국이 미국을 제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미국 투자은행인 뱅크오브아메리카(BoA)도 2027~2028년에 중국의 경제 규모가 미국을 넘어설 것으로 내다봤다.

국내 경제 전문가들은 바이든 대통령이 향후 1~2년간은 미국 내수 경기 회복에 집중하기 위해 대규모 확장 재정 정책을 쓰지만 한국 경제가 받는 혜택은 제한적일 수 있다고 말한다. 바이 아메리칸 정책에 따라 미국 제품을 우선 쓰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한국 기업들의 미국행이 빨라질 수도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김봉만 국제협력실장은 “미국이 대규모 인프라 건설을 통해 경기 부양에 나서면 전반적으로 한국의 수출에 도움이 되기는 하겠지만, 미국이 미국산 제품 사용을 강조하면서 한국 기업들이 미국에 생산 기지를 세우려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미 LG화학과 SK에너지 등 전기차 배터리 생산 업체들은 미국에 공장을 짓고 있다. 한국 기업들의 미국 진출이 활발해지면 그만큼 한국 내 고용이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美·中 보호주의 거세져… 정부가 반도체 등 주력산업 지켜야”

최석영 경제통상 대사 “자유민주주의 기반한 전략적 외교 필요”

최석영 경제통상 대사

최석영 외교부 경제통상 대사는 3일 “바이든 정부 시절에는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더 첨예하게 불거질 수 있기 때문에 반도체 등 한국의 주력 산업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정부와 기업이 긴밀히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 대사는 지난 2010년 한·미FTA(자유무역협정) 재협상 때 한국 수석대표를 지냈다.

최 대사는 조선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근본적으로 중국의 국가 자본주의 체제를 용인할 수 없다는 입장을 대선 과정에서 여러 차례 표명했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특히 중국에 대해 ①지식재산권 침해 ②강제적 기술 이전 ③국가의 산업 보조금 지원 ④국가의 기업 통제(국영기업) ⑤낮은 환경 및 노동 기준을 문제 삼고 있다. 중국이 환경을 파괴하고 저임금으로 제품을 만들면서 불공정 무역을 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미국이 중국 기업의 미국 투자를 제한하자, 중국도 외국인 투자를 제한하고 수출 통제를 강화하는 조치로 맞서면서 양국 갈등이 날카로워지고 있다고 최 대사는 강조했다.

최 대사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미국·일본·인도·호주 등 4국 체제로 이끌면서 중국 포위망을 구축했는데, 이러한 추세는 바이든 대통령도 계승할 것으로 예측했다. 바이든 정부의 고위직은 현재 대중(對中) 강경파로 구성돼 있다.

최 대사는 이러한 미·중 갈등 속에서 한국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코로나 이후 강화되는 각국의 보호무역주의 경향을 먼저 체계적으로 모니터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특히 반도체 등 주력 산업 분야에서 각국이 취하는 보호주의 정책을 파악하고 정부와 기업 간에 정보 교류가 활발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대사는 “미·중 갈등이 격화되는 상황에서는 자유민주주의 가치에 기반한 전략적 외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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