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수의 오프사이드] 스포츠 폭력의 씨앗

정윤수 스포츠평론가·성공회대 교수 2021. 3. 4.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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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모든 스케줄은 감독님과 코치님들이 수시로 감독했고, 우리들은 딴짓을 할 수 없었다. 선수들이 일탈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없었다. 학교 앞 문방구에도 나갈 수 없을 정도로 통제를 받았다.”

정윤수 스포츠평론가·성공회대 교수

기성용 선수 사건과 관련하여 당시 합숙소 생활을 했던 관계자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글의 일부다. 기성용 선수에게 유리한 내용이 담긴 이 증언에서, 내가 주목한 것은 위와 같은 통제된 생활이다. 일단 기성용 선수와 관련된 직접적인 사안은 좀 더 추이를 살펴보기로 하자. 그렇다고 사건의 심각한 정황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초등학교 학생들이 ‘학교 앞 문방구에도 나갈 수 없을 정도로 통제’된 채 생활했다고 고백하고 있지 않은가. 그것도 21세기의 벽두에.

이 정황 자체를 중대한 상황으로 인식해야 한다. 수년에 걸친 국가인권위원회의 실태 조사와 학생선수 관련 전문 연구자들의 지속적인 보고에 따르면 십수년째 반복되고 있는 스포츠폭력의 씨앗은 이와 같은 초등학교 합숙소에서부터 비롯되어 중·고교 과정에서는 개인이나 팀 전체의 강력한 행위 규범으로 작동하게 되며, 성인이 된 이후에는 폭력의 위계질서 문화 자체를 내면화하는 상황으로 고착된다.

이것이 최근의 사태가 학교폭력의 일반적인 양상에 더하여 스포츠폭력이라는 특수한 성격과 결합되어 있음을, 따라서 바로 그 ‘특수한 성격’을 직시해야 함을 일깨워준다. 물론 학교폭력 일반의 양상 역시 성장 과정의 한 인간의 내면을 갈기갈기 찢어놓을 정도로 끔찍한 면이 있지만, 스포츠폭력은 여기에 몇 가지 특징이 더해진다.

우선 시공간의 철저한 제약과 통제 상태에서 벌어진다. 일반적인 학교폭력의 경우에도 그 피해 학생이 학교 공간과 또래 집단 사이를 벗어나기 어렵지만, 학생선수들은 기본적으로 합숙소와 전지훈련과 대회 출전이라는 통제된 시공간에서 생활한다. 통제된 훈육의 질서로부터 벗어나기 쉽지 않다. 다행히 이러한 시공간에서도 정성껏 보살펴주는 감독이나 코치를 만날 수 있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 폭력은 복합적·중층적 양상으로 전개된다. 지도자의 묵인이나 방조에 따른 ‘위임 폭력’, 당사자를 ‘보이지 않는 사람’으로 취급하는 감정 폭력, 사태의 원인이 당사자에게 있다고 강요하는 일종의 그루밍 폭력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폭력은 ‘때리거나 맞은 적 있습니까’라는 질문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구조적 폭력이며, 시공간의 통제와 압력을 행사한 지도자들이 ‘때린 적은 없다’고 빠져나가기 쉬운 알리바이가 된다.

앞으로 국가인권위원회나 스포츠윤리센터 등이 어떤 ‘실태조사’를 한다고 할 때, 물리적 폭행의 여부만이 아니라 이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시간의 압박이 전개되고 공간의 통제가 작동하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그것은 몇 %가 신체적인 폭행을 당했는가 하는 숫자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생활 요소 전반에 대한 문화적 판단을 필요로 한다.

여기에 뛰어난 선수와 그 부모가 일정한 문화권력을 형성하고 다른 학생들이 종속되는 양상이 나타나는데, 이는 스포츠의 특성상 한번 형성되면 직업선수가 될 때까지 지속된다. 다른 학교로 전학가거나 종목을 바꾸는 등의 ‘자가격리’가 불가능한 것이 스포츠폭력의 특수성이다. 그러니 대한체육회가 “청소년기에 무심코 저지른 행동”이라고 한 말은, 상황의 중대함이나 사태의 구조적인 양상 자체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거나 혹은 일부러 무시한 처사다.

문제의 핵심은 맨 앞에 인용한 상황이 십수년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전국의 합숙소에서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19년 12월에 발간한 <합숙소 앞에 멈춰 선 인권>에 따르면 “침실에까지 CCTV를 설치해 학생선수들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곳도 있었으며, 관등성명을 외치면서 매일매일 긴장 상태”로 살아가고 있다.

결국 관건은 문화체육관광부다. 물론 사태의 어떤 측면을 교육부와 협업하거나 실행의 어떤 책무를 대한체육회에 위임할 수는 있다. 그러나 국가 스포츠정책과 그 사업에 있어 더 이상의 상위 단위를 찾을 수 없는, 최고 높은 수준의 책임과 권한을 지닌 곳이 문체부다. 돌발적인 사건도 아니고 우연히 벌어진 사태도 아니다. 그야말로 ‘직을 걸고’ 해결해야 할 국가적 문제다.

정윤수 스포츠평론가·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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