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회사에 사표내던 날
드라마와 현실은 다르다고 하지만, 현실에서 사람은 늘 드라마를 꿈꾼다. 최근 상상했던 인생의 드라마는 이런 것이다. 시원하게 사표를 낸다. 근무하면서 느낀, 결국에는 퇴사의 사유가 된 사내의 여러 아쉬움에 대해서도 논리정연하게 말한다. 통쾌하고 시원한 배경음악이 흐르고, 가벼운 마음으로 상자 하나에 소지품을 담아 매일 드나들던 출입구에 마지막 퇴근 지문을 찍는다. 그날따라 발랄한 기계음, “안녕히 가십시오.”
상상 속 모습과 별다를 게 없었던 건, 지문을 찍을 때 들리던 차가운 기계 음성뿐이었다. “안녕히 가십시오” 하는 말을 듣기 훨씬 전부터 내 어깨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그래서 더욱 어쩔 수 없는 서글픔에 들썩거리고 있었다. 사표를 내는 마음은 시원함보다는 섭섭함이 훨씬 컸다. 동료들은 과분한 덕담을 건네주었다. 팀원들의 따뜻한 메시지에 주책맞게도 눈시울이 붉어졌다. 퇴사의 논변보다는 아쉬움의 인사가 먼저였다. 그간 지내온 사무실은 상자 몇 개로는 감당할 수 없는 짐이 쌓여 있었다. 짐을 정리하는 데에만 며칠이 걸렸다. 퇴사일 오후, 소지품보다 더한 추억과 회한이, 기쁨과 슬픔이, 시간이 축적한 모든 것들이 자리에 놓여 있었다. 책상의 주인이 사라지면 자연스레 놓여날 것들이었다. 그걸 쉬이 놓을 수가 없어서, 사무용품 하나 없는 빈 책상에 오래도록 앉아 있었다. 드라마와 현실은 당연히 다를 테지만, 가끔은 모든 순간이 드라마가 되기도 한다.
독립하게 되었다. 드라마 같은 일은 없을 것이다. 회사의 보호 아래 누렸던 안정과 편의는 이제 내 것이 아니고, 예상되는 어려움과 예상 못 한 고난이 시기를 가리지 않고 찾아올 것이다. 가장 아쉬운 것은 역시나 동료다. 내 자리를 채울 이도 역시 동료일 것이다. 그들에게 기계는 낼 수 없는 소리를 내어 본다. 그날따라 떨리는 음성으로, “안녕히 계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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