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진만의 도발하는 건축] 대재앙이 만드는 새로운 도시

조진만 건축가 2021. 3. 4.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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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파주 청소년 빌리지 계획안. 단일한 건물을 탈피한 집들이 어우러져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게 한다.

대재앙은 늘 우리의 도시와 건축의 구조를 크게 변화시켰다. 중세 페스트는 좁고 불결한 도로가 전염병의 확산 원인으로 지목되었고, 이후 기하학적 도시의 르네상스가 시작되었다. 목조건물 중심이었던 미국 시카고는 1871년 대화재 이후 철과 콘크리트의 거대 건축물들로 대체되어 초고층 붐과 함께 세계 경제의 주축이 되었다. 1918년에 발생해 세계 인구 3분의 1을 감염시킨 스페인독감은 대도시의 열악한 공간 구조를 급격히 변모시킨 모더니즘 탄생의 계기가 됐다. 이처럼 재해와 도시 건축의 관계를 짚어보면 매번 도시와 건축은 더욱더 강력하고 거대한 것으로 진화했다. 이번에 세계를 강타한 전염병은 이러한 도시와 건축의 일관된 흐름을 되풀이할 것인가. 즉 재앙 이후에 도시가 더 강하고 더 큰 것으로 진화할 것인가? 근본적으로 다른 일이 일어날 것 같다는 생각이다. 이제까지 이러한 크고 튼튼한 상자에 밀집한 우리의 생활 스타일 자체가 이번 전염병에 의해 거부된 것이다.

조진만 건축가

효율적이며 위생적인 20세기 대도시의 정수는 초고층 건물이며 거기에 속하는 것이 엘리트의 증거였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이 거대한 성냥갑은 조금도 효율적이지 않았다. 정보기술의 발전으로 거리나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소통과 업무가 가능하게 되었다. 오히려 큰 상자가 배출하는 탄소나 열부하가 주변 환경을 점차 파괴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20세기 낭만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거대한 상자를 계속 찍어내면서 대도시라는 보다 큰 성냥갑을 확대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점차 생활 전반으로 침투되어 갔다. 교육도 근대 이후 균일하고 평등한 공간이라는 전국적으로 모두 엇비슷한 성냥갑 속에 아이들을 채워 넣고 입시라는 경쟁을 하게 했다. 그 연장으로 다음 경쟁은 사무실 성냥갑에서 반복되었다.

우리의 주거는 아파트라는 성냥갑이 기본 모델이 되었고 그것들은 모두 같다. 기존의 성냥갑은 장소의 고유한 특성을 말살하고 어디에나 균질화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성냥갑 건축이 가지는 답답함과 한계에 대해 이미 폭넓게 공감하고 있다. 도시와 건축은 기존의 사회와 제도에 근간을 두는 것이라 급격한 변화는 쉽지 않다. 하지만 변화는 작은 여백에서 하나씩 더해가는 침 놓는 식의 방법을 통해서도 가능하다. 이번에 우리 모두 동네라는 장소가 가진 매력을 새롭게 발견했다. 주변을 산책하며 다양한 즐거움을 발견하고 성냥갑을 탈피한 이색적인 장소들에 우리는 열광하게 되었다. 균질화에서 벗어난 매력적인 장소 덕분에 우리 삶은 풍요롭고 도시는 활력을 가진다.

조진만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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