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무관심 속에.. '성전환 후 강제 전역' 변희수 숨진지 수일 지나 발견
극도의 스트레스와 우울감, 그리고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여군의 꿈’은 그렇게 스러져 갔다. 스스로 트랜스젠더임을 밝힌 최초의 직업군인이었던 변희수(23·사진) 전 하사가 충북 청주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시신이 상당히 부패한 점으로 미뤄 사망한 지 수일이 지났을 것으로 판단했다.
3일 충북소방본부 등에 따르면 변 하사는 충북 청주시 상당구 금천동 아파트에서 이날 오후 5시49분쯤 숨진 채 발견됐다.
변 하사는 지난해 11월에도 한 차례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고자는 청주시 상당구 정신건강센터 관계자였다. 그는 지난달 28일 이후 변 전 하사와 연락이 닿지 않아 119에 ‘생사를 확인해 달라’고 신고했다.
구급대원들이 현장에 출동해 현관문을 따고 들어갔으며, 집 안에서 침대 위에 누운 채 숨져있는 변 전 하사를 발견했다.
현장에 있던 구급대원은 “부패한 정도로 보아 숨진 지 며칠 정도 지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웃 주민들은 “변 전 하사가 11월 중순에도 자살을 시도해 경찰이 출동했었다”면서 “얼마 전부터 그의 집에서 악취가 난 것 같다”고 말했다.
경찰은 외부 침입 흔적 등이 없는 것으로 보아 변 전 하사가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자택에서 유서 등은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정확한 사망 경위를 조사 중”이라며 “구체적인 사망 원인 등은 아직 확인해 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변 전 하사가) 지난해부터 청주에 내려와서 살았으며, 가족과도 연락이 잘 닿지 않고 심리상담 과정에서 심각한 스트레스를 호소해 정신건강센터 쪽에서 중점 관리를 해왔다”라고 전했다.
그의 사망 소식에 관련자들은 물론, 누리꾼들의 추모 메시지가 쏟아졌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트랜스젠더 군인 변 전 하사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전한다”라며 “자세한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군인권센터 상근자들이 자택으로 가고 있다”고 밝혔다.
신지예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대표는 이날 자신의 공식 페이스북에 “가난해서 아프지 않고 폭력 때문에 죽지 않고 차별 때문에 병들지 않는 사회. 한국 사회는 당연한 것을 꿈꾸는 사람들을 벼랑 끝으로 몰고 있다”면서 “너무 낡은 시대에 너무 이르게 왔던 변희수 하사님, 벌써 보고 싶어요. 미안해요. 애썼어요”라는 글을 남겼다.
◆“성 소수자도 군 복무할 수 있다” 외쳤던 변 전 하사… 軍 당국 “군의 입장을 낼 것은 없다”
변 전 하사는 경기 북부 육군 부대에서 복무 중이던 2019년 11월 휴가를 받고 태국으로 건너가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 수술을 받았다.
이에 군은 그를 ‘심신장애 3급’으로 분류하고 지난해 1월 강제 전역 조치했다.
그러자 변 전 하사는 군인권센터와 함께 자신의 얼굴과 실명을 공개하며 ‘강제 전역 조처를 취소해달라’로 호소했다.
그는 같은 해 1월22일 기자회견에서 “성별 정체성을 떠나 이 나라를 지키는 훌륭한 군인 중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저에게 그 기회를 달라”면서 “모든 성 소수자 군인이 차별받지 않는 환경에서 각자 임무와 사명을 수행할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또한 “국가를 지키고 싶은 마음 하나만 있으면 복무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 수 있길 바란다”고 했다.
변 전 하사는 그 다음 달인 2월 법원으로부터 성별 정정 허가를 받았고, 군 측에 ‘전역 처분이 부당하다’며 재심사해 달라며 인사소청을 제기했다.
그러나 이때에도 군은 “전역 처분의 위법성이 확인되지 않았다”며 인사소청을 기각했다.
이에 변 전 하사는 대전지법에 전역 처분 취소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대전지법 행정2부(재판장 오영표)는 다음 달 15일 첫 변론을 진행할 예정이었다.
변 전 하사는 지난해 8월11일에만 해도 “제가 커밍아웃해 성별 정정을 결심한 그때의 마음가짐, 더 나은 세상에 대한 기대, 옆에서 응원하는 군 동료와 친구들, 성 소수자들, 변호인단과 함께 다시 이 싸움을 시작하려 한다”고 당찬 포부를 밝혔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전역 처분 결정 이틀 전 변 전 하사 측이 제기한 진정 사건 관련해 지난해 12월 “트랜스젠더 군인에 대한 강제 전역 처분은 인권 침해에 해당한다”며 육군참모총장에게 전역 처분을 취소하라고 권고한 바 있다.
한편 육군 측은 변 전 하사의 사망 소식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군 관계자는 “민간인 사망 소식에 따로 군의 입장을 낼 것은 없다”면서도 “고인의 안타까운 소식에 애도를 표한다”고 전했다.
현화영 기자 hhy@segye.com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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