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가족 '새치기 접종'..질병청, 남은 백신 도로 가져갔다

황수연 입력 2021. 3. 4. 01:00 수정 2021. 3. 4.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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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이 본격화하면서 잡음도 일고 있다. 먼저 접종을 시작한 해외에서 논란이 된 새치기 접종이 경기도 한 요양병원에서도 확인돼 당국이 이 병원을 형사고발하는 것까지 검토하고 있다.

질병관리청은 3일 경기도 동두천의 한 요양병원에서 운영진 가족 등 10명이 부정 접종했다는 의혹과 관련, “대부분 사실인 것으로 확인됐다”며 “불법행위자 및 관여자, 추가 부정 접종 여부 등의 사실관계를 파악해 감염병예방법·형법 등을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형사 고소·고발 조치할 것”이라고 밝혔다.

3일 오후 경기 동두천시가 운영진 가족에게 부정하게 백신을 접종했다는 의혹을 받는 요양병원. 뉴스1


당국에 따르면 해당 요양병원에선 백신 접종이 처음 시작된 지난달 26일 예방접종 대상자가 아닌 병원 임직원의 가족 등이 접종을 받았다. 사전 등록된 접종대상자 181명 중 170명(종사자 140명, 환자 30명)에 접종을 완료했는데 이 중 10명이 부정하게 접종받은 것으로 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접종 대상자가 아닌 법인 이사 등 5명, 가족 1명, 지인 4명 등이다.

9일부터 시행되는 감염병예방법 개정안에 따르면 거짓이나 그 밖의 부정한 방법으로 예방 접종할 경우 당사자는 물론 도운 사람도 각각 최대 200만원의 벌금을 물 수 있다. 부정한 예방접종에 대한 벌칙이 신설됐지만 아직 공포 전이라 부정 접종자들이 8주 이후 2차 접종을 받아야 처벌할 수 있을 거로 당국은 보고 있다.

해당 부정이 발생한 기관을 대상으로 질병청은 일단 예방접종 업무 위탁계약을 해지하고 병원에서 1차 접종 후 보관 중인 잔여 백신 3바이알(병)을 회수했다. 해당 요양병원의 2차 백신 접종은 병원이 아닌 관할 보건소에서 진행할 계획이다. 질병청은 이 병원에 추가적인 제재와 형사고발까지 검토하고 있다.

3일 오후 운영진 가족에게 부정하게 백신을 접종했다는 의혹을 받는 경기도 동두천시의 요양병원 모습. 뉴스1


정세균 국무총리는 앞서 이날 오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이 사건을 직접 언급하며 “사실이라면 참 개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백신 접종 순서는 전문가들의 논의를 거쳐 과학과 사실에 근거해 정해진 사회적 약속”이라며 “사회적 신뢰를 저버리고 갈등을 야기하는 행위를 묵과할 수 없다. 가능한 모든 제재수단을 검토해 엄정 조치해달라”고 당국에 주문했다.

질병청은 해당 요양병원에 조치한 데 이어 앞으로 유사 사례 발생 시 “관련 법에 따라 엄정 대응하겠다”고 경고했다. 관련 부처나 지자체 협의를 통해 부정 접종자가 있는지를 조사하는 등 관리 감독을 강화해 향후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할 계획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재개된 2일 세종시 보건소에서 의료진이 요양병원 종사자 등에게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접종하기 위해 냉장고에서 꺼내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우리보다 먼저 접종을 시작한 해외에서도 물량 부족 사태로 각종 해프닝이 일었다. 페루와 아르헨티나, 에콰도르에서는 백신 새치기 사건과 관련해 각료들이 사임하고 대규모 항의 시위가 일어났다. 미국에서도 대형병원 관계자들의 새치기 사례에 100만 달러(약 10억원)의 벌금을 물리겠다고 나선 주도 있다.

국내에선 올 초 접종 우선 대상자를 검토하던 때에도 각종 기관이 백신을 먼저 맞겠다고 질병청에 잇따라 민원을 넣으며 당국이 골머리를 앓기도 했다. 정부가 확보한 백신 물량이 충분치 않다는 불안감에 17곳의 정부부처뿐 아니라 각종 기관 등이 우선 접종을 요청한 것이다.

김우주 고려대 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이례적인 팬데믹 상황에서 평상시 보지 못하던 상황들이 연속되고 있다”며“아이러니하지만 한쪽에선 안전하지 못해 못 맞겠다고도 하고, 어떻게 서라도 혜택을 받아 우선순위에 들려는 이들도 있다. 자연스러운 인간 군상의 양태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전 세계적으로 백신 물량이 부족한 상황에서 앞으로도 한동안 비슷한 논란이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황수연 기자 ppangsh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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