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환 화백 "이건희 회장, 사업가보다 철인·예술가 같았다"
한국 현대미술 거장 이우환(85) 화백이 지난해 10월 별세한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을 추모하는 글을 썼다. 이 회장을 가리켜 "사업가라기보다 어딘가 투철한 철인(哲人)이나 광기를 품은 예술가로 생각되었다"고 하면서다.
이 화백은 문예지 ‘현대문학’ 3월호에 ‘거인이 있었다’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어느 한 존재를 잃고 나서야 비로소 그 존재의 크기를 깨닫는 것이 세상의 상례”라며 “경제계, 과학기술계, 스포츠계는 물론 문화예술계는 최상의 이해자, 강력한 추진자, 위대한 동반자를 잃었다”고 고인을 추모했다. 그러면서 미술에 대한 이 회장의 안목과 관심을 구체적인 에피소드로 소개했다.
예컨대 삼성문화재단 지원으로 2001년 독일 본시립미술관에서 개최한 대규모 회고전을 찾은 이 회장에게 인사하자 “미술은 제 영감의 원천입니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또 이 회장이 ‘뛰어난 예술작품은 대할 때마다 수수께끼처럼 보이는 이유는 뭐죠’라든가 ‘예술가에겐 비약하거나 섬광이 스칠 때가 있는 것 같은데, 어떤 것이 계기가 되나요’라고 묻기도 했다면서 “이러한 질문 자체가 날카로운 안력(眼力)과 미지에 도전하는 높은 의지의 증거”라고 했다.
이 회장의 고미술에 대한 남다른 감식안도 전했다. 이 화백은 “그의 고미술 애호는 선대인 이병철 회장의 영향이 크겠지만, 내가 본 바로는 어느샌가 아버지와는 다른 스케일과 감식안과 활용 방식을 갖추고 있었다”면서다. 그러면서 “이병철 회장의 고미술 사랑은 이상하리만큼 집념이 강했고 한국의 전통을 지극히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에 비해 이건희 회장은 한국의 미술품이라 하더라도 작품의 존재감이나 완성도가 높은 것을 추구하며, 언제나 세계적인 시야로 작품을 선별했다”고 돌아봤다. “덕분에 한국의 고전미술 및 근현대미술, 그리고 글로벌한 현대미술의 수준 높고 내실 있는 컬렉션은 세계 미술계가 주목하는 바가 되었다.특히 한국의 고도자기 컬렉션을 향한 정열에는 상상을 초월한 에로스가 느껴진다”며 "이 회장이 수집한 컬렉션이 잘 지켜지기를 빈다"고 썼다. 이어“이 회장이 국내외 문화예술계에 이뤄낸 업적은 헤아릴 수 없다”며 “특히 영국 대영박물관, 미국 메트로폴리탄미술관, 프랑스 기메미술관 등 주요 박물관·미술관 한국 섹션 개설이나 확장은 음으로 양으로 이 회장의 의지를 빼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그는 6년여를 병석에서 투병한 이 회장을 돌이키면서 “멀리 떨어져 있어도 늘 마음이 통하는 벗이었는데, 그의 죽음의 순간을 마주치지 못한 채 영원히 헤어지고 말았다”며 “한국을 방문해 검진 등으로 몇 번인가 병원을 찾았을 때 면회를 시도해보았지만 끝끝내 대면하지 못했던 것이 너무 애석하다”고도 했다.
이 화백은 또 이 회장이 세계 3대 건축가를 선정해 서울에 세운 리움미술관 등을 언급하며 “미술가의 한 사람으로서 다시 한번 박수를 보내고 만감을 담아 감사를 표한다”고 적었다.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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