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국의 '백신 쇼핑' 그들만의 세상

이윤정 기자 2021. 3. 3.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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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자는 롤스로이스, AZ는 르노" 효능 비교하며 접종
'백신 여권' 추진도..개도국·빈국들 상대적 박탈감 커져

[경향신문]

코로나19 백신 전체 공급량의 4분의 3을 가져간 부자 나라들에 곱지 않은 시선이 쏠리고 있다. 25억 인구가 사는 세계 130개국은 백신을 구경조차 못했는데, 부자 나라들은 제약사별 백신 효능을 비교해 쇼핑하듯 접종을 하고 있어서다. 주요국의 제약사들은 공공기금을 투자받아 백신을 개발하고도 ‘특허권’으로 돈을 쓸어모으고 있다는 비판에도 직면해 있다. 백신을 확보한 나라들이 ‘백신 여권’을 만들어 ‘그들만의 세상’을 꿈꾼다는 소식까지 들려오면서 개발도상국·빈국들의 상대적 박탈감은 커져가고 있다.

2일(현지시간) 블룸버그는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이 코로나19 백신을 ‘비교 쇼핑’하는 바람에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물량이 접종자를 찾지 못한 채 쌓여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예방효과는 화이자·모더나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60~70%이지만, 전문가들은 코로나19 감염자를 줄이기에 충분한 수준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프랑스 일부 의료진은 “화이자 백신은 롤스로이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르노”라고 표현하면서 아스트라제네카 접종을 기피하고 있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이탈리아와 독일에서도 아스트라제네카 대신 화이자나 모더나 백신을 요구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이 때문에 프랑스는 지난달 아스트라제네카로부터 받은 백신 160만도스 중 겨우 25%만 접종했고, 이탈리아는 공급량의 26%, 스페인은 43%만 사용했다.

블룸버그는 “개발도상국과 빈국들은 부유한 나라들의 백신 구매가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면서 “배포 전략을 바꿔 백신을 더 필요로 하는 곳에 보내야 한다”고 지적했다.

주요국의 제약사들도 약 100억달러(약 11조원)에 달하는 공공·비영리기금을 지원받아 백신을 개발해 놓고 특허권 장사로 막대한 돈을 벌어 들이고 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5개 상위 제약사들은 전염병대비혁신연합(CEPI)으로부터 21억달러(약 2조3000억원)를 추가로 지원받기도 했다. 이 때문에 남아프리카공화국과 인도는 지난해 10월 세계무역기구(WTO)에 코로나19 백신에 대한 지식재산권을 전 지구적 집단면역이 형성될 때까지 유예해줄 것을 요청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물론 국경없는의사회, 국제앰네스티 등 국제단체 300여개가 이 요청에 지지를 표명하고 있다.

백신을 먼저 확보한 나라들은 이제 ‘백신 여권’을 화두로 꺼내고 있다. EU는 지난 1일 침체된 여행산업을 살리기 위해 백신 여권 도입을 추진할 방침을 밝혔다. 하지만 백신 여권으로 관광을 가는 것은 결국 백신을 이미 접종한 부자 나라 국민이나 가능한 일이다. 뉴욕타임스는 “백신 접종 여부로 세상을 나누는 것은 정치적, 윤리적 문제를 야기한다”면서 “백신은 압도적으로 부유한 나라와 특권층에게 돌아갔다. 백신 여권은 이미 벌어진 격차를 더 크게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윤정 기자 y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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