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시서 터진 LH 직원 투기 의혹, 성긴 법망이 탈선 불렀다

진명선 2021. 3. 3.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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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 관련성이 유무죄 관건인데
법규정 협소해 처벌 피해 갈수도
3일 오후 LH 직원들의 투기 의혹이 제기된 경기도 시흥시 과림동의 한 밭에 묘목들이 심겨 있는 모습. 연합뉴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전·현직 직원들의 광명·시흥 새도시 사전 투기 의혹의 파장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는 가운데 이번 사건은 현행법이 개발 정보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은 공직자·공공기관 직원들의 투기 행위를 사실상 방치해온 결과라는 지적이 나온다. 미공개 중요정보를 이용한 내부자들의 투기행위를 엄격하게 처벌하는 자본시장법처럼 부동산 시장에도 내부자 투기 행위를 막을 수 있는 강도 높은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3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과 참여연대 등에 따르면, 국토교통부나 엘에이치 등 택지 개발 관련 업무를 수행하는 공직자 및 공공기관 임직원의 투기 행위를 금지하고 처벌하는 법규는 부패방지법과 공공주택특별법이다.

부패방지법 7조는 ‘업무처리 중 알게 된 비밀’을 이용해 재산상의 이득을 취하는 일을 금지하고 있고, 이 경우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7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이 조항에 따른 유무죄 판단은 ‘업무 관련성’이 좌우하는데, 새도시 지정 업무를 하면서 알게 된 후보지의 토지를 취득한 사례가 대표적인 위법행위다. 문제는 이번 엘에이치 직원들처럼 새도시 지정 업무와 직접 관련성이 없는 경우다. 참여연대에 따르면 토지를 취득한 엘에이치 직원 10여명 가운데 다수가 수도권 지역에서 보상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국토부와 엘에이치는 이날 자체 조사를 통해 직원 13명이 12개 필지를 취득했다는 사실을 파악했다며 “신규 후보지 관련 부서 및 광명시흥 사업본부 근무자는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사실상 1차적 업무 관련성은 없는 것으로 판단됐다는 얘기다.

공공주택특별법 역시 ‘보안관리 및 부동산투기 방지대책’이라고 정한 9조에서 공공주택지구 지정 관련 비밀 누설 및 목적 외 사용을 금지하고 있지만, ‘업무 처리’ 중에 알게 된 정보를 사용할 경우에 한해 5년 이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엘에이치 ‘임직원 행동강령’(26조 직무관련 정보를 이용한 거래 등의 제한)도 직무 관련 정보를 이용한 토지거래만 제한하고 있다.

업무 관련성이 인정되더라도 광명·시흥 새도시가 부패방지법이나 공공주택특별법이 인정한 ‘업무상 비밀’이 아니라고 주장할 여지도 있다. 광명·시흥 새도시는 3기 새도시와 관련한 1·2차 발표에서 유력한 후보지로 언론에 거론됐으나 결국 빠졌다. 지난달 24일 여섯번째 3기 새도시로 확정 발표 되기 전에도 다수 언론에서 ‘0순위’로 거론됐다. 김태근 참여연대 민생경제위원장(변호사)은 “광명·시흥 새도시가 업무상 비밀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나는 보상 업무만 했을 뿐 새도시 지정 업무는 한 적이 없다’고 하면 현행법상 처벌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새도시 지정 관련 업무만 하지 않으면, 개발이 예상되는 지구에 투자하고 택지개발 관련 기관에 종사하면서 얻은 전문적 지식을 이용해 개발이익을 챙겨도 제재를 할 방법이 없는 셈이다.

이 때문에 택지개발 등 중요 개발 정보를 접하는 공직자나 공공기관 직원들의 부동산 투기행위에 대한 규제가, 내부자의 미공개 중요정보 이용을 처벌하는 자본시장법에 견줘 지나치게 관대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자본시장법상 내부자로 인정되는 직원의 범위는 미공개 중요정보 관련 업무뿐만 아니라 ‘해당 법인의 재무, 회계, 기획, 연구개발에 관련된 업무에 종사하고 있는 직원’으로 대다수 직원들을 포괄한다.

현행법상 투기행위에 대한 몰수 규정이 없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자본시장법이 위반행위로 얻은 이익의 최대 5배를 벌금으로 물리는 반면, 부패방지법이나 공공주택특별법에는 택지개발 정보를 이용한 부동산 투기행위에 대한 이익을 몰수하는 규정이 없다. 징계를 받거나 해임되더라도 투기이익은 고스란히 챙길 수 있는 구조다. 김태근 위원장은 “자본시장법에 준해서 내부자 범위를 넓게 인정하고 몰수형을 신설하는 관련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장은 “엘에이치나 국토부는 개발 관련 업무에 다양하게 관련될 수밖에 없는데 사실상 개발 정보를 이용하는 일을 개인의 양심에 맡겨둔 상태였다”며 “보상 주체가 보상 대상이 되는 상황은 국민들의 눈높이에도 맞지 않는 만큼 이번에 공직자·공공기관 직원 투기 방지 장치가 마련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국토교통부는 이날 신규택지 개발과 관련된 국토부와 엘에이치 등 임직원은 원칙적으로 거주 목적이 아닌 토지 거래를 금지하고, 불가피할 경우 사전에 신고하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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