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2천원씩..'공평한 행복' 배워요

보은 | 글·사진 이삭 기자 2021. 3. 3.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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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은 판동초 기본소득 실험

[경향신문]

충북 보은군 삼승면 판동초등학교 학생들이 지난 2일 5학년 교실 복도 벽면에 설치된 ‘어린이 기본소득 게시판’에서 기본소득으로 지급된 매점 화폐를 찾아가고 있다.
전교생 36명에 ‘매점 화폐’ 지급
학용품·간식 사거나 저축 열심
용돈기입장 쓰며 ‘경제’ 깨달아

지난 2일 오전 충북 보은군 삼승면의 판동초등학교. “매점 화폐를 지급했으니 ‘어린이 기본소득 게시판’에서 찾아가라”는 교내방송이 흘러나왔다. 교실 문이 열리고 아이들이 학교 2층 5학년 교실 앞 복도로 몰려들었다. 아이들이 몰려간 곳은 ‘어린이 기본소득 게시판’ 앞이다. 게시판에는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전교생 36명의 이름이 적힌 봉투가 붙어 있었다. 매주 월요일 이 봉투에는 학생 1인당 1000원짜리 매점 화폐 2장이 채워진다. 새 학기가 시작된 이날도 게시판에는 매점 화폐가 꽂혔다. 자신의 이름을 찾아 두리번거리던 학생들은 봉투 안에 있는 매점 화폐를 꺼내들고 활짝 웃었다. 정성현군(5학년)은 “매주 2000원씩 받다보니 돈을 모으는 습관이 생겼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시작된 판동초의 기본소득 실험이 학생들을 변화시키고 있다. 판동초는 지난해 10월26일부터 아무 대가 없이 매주 2000원씩을 전교생에게 지급한다. 학생들의 기본소득 소비처는 학교 매점이다. 빈 교실을 새 단장해 만든 이 매점은 2019년부터 협동조합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매점 운영은 조합에 가입한 학생, 교사, 학부모들이 맡았다. 조합원도 70여명이나 된다.

학생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간식은 2개에 800원인 ‘김치만두’다. 한 봉지에 1400원인 양념치킨맛 라면과자와 1000원짜리 유기농 솜사탕도 학생들의 단골 간식거리다. 학생들은 매점 화폐로 물건을 산 뒤 용돈기입장에 꼬박꼬박 기록하는 법도 익혔다.

이날 매점 운영을 맡은 학부모회장 김라모나씨(40)는 “매점 화폐를 바로 쓰는 아이들도 있고, 학용품 등 필요한 물건을 사기 위해 모으는 아이들도 있다”며 “학생들이 경제를 배우는 효과도 있다”고 말했다.

설문조사에서도 학생들은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지난해 12월 당시 전교생 41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어린이 기본소득을 통해 느끼는 것들’(중복응답)을 물었더니 학생 35명(88%)이 ‘부모님께 용돈을 받지 않거나 덜 받아도 괜찮다’고 대답했다. 또 ‘학교에 오는 것이 좀 더 즐거워졌다’는 학생도 34명(85%)이나 됐다. 32명(80%)은 ‘돈 관리를 스스로 할 수 있어서 좋다’고 대답했다. ‘친구에게 무언가 사줄 수 있는 여유가 생겨서 좋다’거나 ‘사고 싶은 것을 스스로 결정해서 좋다’고 답한 학생들도 있었다.

서우정군(6학년)은 “용돈을 받으려면 심부름을 하거나 설거지를 해야 하는데 그런 것 없이 매주 전교생에게 2000원씩 주니까 공평하다는 느낌이 들었다”며 “처음에는 간식과 학용품 구매에 주로 사용했지만 조금씩 저축도 하고 있다. 기본소득이 없어지면 아쉬울 것 같다”고 말했다.

판동초는 학교 구성원들과 협의해 기본소득 지급액을 늘리는 것도 검토 중이다. 판동초의 기본소득 소식을 듣고 후원도 이어지고 있다. 강환욱 교사는 “학생들이 공평하게 매점을 이용할 수 있도록 이 제도를 도입했는데 소식을 듣고 여러 곳에서 후원을 해 기본소득 예산을 확보할 수 있었다”며 “학생, 학부모들과 충분히 논의한 후 지급액을 늘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보은 | 글·사진 이삭 기자 isak84@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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