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전 나무 심어놓고.." LH 직원들 '투기 의혹' 현장 가보니
허위·과장 영농계획서 제출 정황
공인중개사들 '조직적 매입' 주장
"싸게 나온 걸 지분 투자로 다 잡아"
주민들도 분노 "모여서 한참 욕했다"
"저기 보이지? 나무 심은 지 일주일도 안 됐어. LH 놈들이 다 알고 샀으면 정말 몹쓸 놈들이야."
3일 오후 경기 시흥시 과림동 1,000평 규모의 밭에는 갓 심은 듯한 향나무 묘목 수백 그루가 검은 비닐 위로 삐져 나와 있었다. 해당 농지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이 정부의 광명·시흥 신도시 지정 전 본인 및 가족 명의로 매입해 '땅 투기' 의혹이 제기된 곳이다. 이들은 수용보상금이나 대토보상(현금 대신 토지로 보상하는 방식)을 노리고 농지를 매입했다는 의혹을 받았는데, 현장에 가보니 따로 관리가 필요 없는 묘목을 신도시 지정 발표 직후 심은 정황이 발견됐다. 농지 주변엔 주민들이 실제 거주하는 주택을 비롯해 철물점과 건설장비 제조사 등 작은 공장들이 즐비했다. 건물들 한가운데 자리잡은 향나무 밭이 마치 '알박기'라도 한 듯한 모양새였다.
인근에서 30년 넘게 철물점을 운영한 80대 남성 A씨는 "며칠 전까지만 해도 아무 것도 없는 밭이었는데, 비가 오고 난 뒤 심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장사도 안 되는 판에 신도시가 들어서면 우리는 갈 곳도 없는데, 누구는 저렇게 돈을 쉽게 번다니 화가 안 나겠냐"며 분통을 터트렸다.
LH 임직원들이 3기 신도시로 지정된 광명·시흥지구에 사전 투기를 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가운데, 한국일보가 3일 이들이 매입한 것으로 추정되는 필지를 방문해봤더니 투기 의혹을 뒷받침 할만한 흔적이 여럿 발견됐다.
LH 직원 명의의 과림동 일대 다른 400평대 밭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버드나무 묘목 수백 그루가 촘촘하게 제각각 심어져 있었다. 인근 밭에서 20년 넘게 고구마·고추 농사를 지었다는 B(70)씨는 "원래 논이었는데 지난해 초 사람들이 와서 밭으로 바꾸고 버드나무를 심고 갔다"며 "한참 동안 밭에 온 사람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B씨는 "버드나무로 돈을 벌 수 있을지 의아했는데, 투기했다는 뉴스를 보고 '그럼 그렇지' 생각했다"며 "버드나무는 관리할 필요도 없고 물만 주면 된다"고 말했다. 시흥시 과림동의 공인중개사 C(45)씨는 "논은 분할 소유가 안 되는데, 밭은 가능하다"며 "이 점을 노리고 답(畓)에서 전(田)으로 토지 종류를 변경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해석했다.
광명시와 시흥시 일대 부동산의 말을 종합하면 이곳에선 2017년부터 투자 목적의 토지 거래가 활발히 이뤄졌다. 2010년 이명박 정부 당시 보금자리주택지구로 지정됐으나, 주민 반대 등으로 2015년 해제된 뒤 특별관리구역으로 지정됐다. 하지만 3, 4년 전부터 구역 지정이 해제될 것이란 소문이 돌면서 평당 30만원대였던 땅값이 지난달 신도시 지정 직전에는 120만~130만원대까지 올랐다.
한때 지역에선 "LH 직원이 땅을 샀다"는 이야기가 퍼졌다고 한다. 광명시 노온사동의 공인중개사는 "2, 3년 전부터 LH 직원이 광명에 땅을 샀다는 소문을 듣고 투자에 뛰어든 사람들이 몇몇 있었다"며 "직원들 친인척이나 지인의 입을 통해 알려진 것으로 보인다"고 귀띔했다.
공인중개사들은 정황상 사전 정보를 활용한 '조직적 매입'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었다. 시흥시 무지내동의 공인중개사는 "LH 직원들이 땅이 싸게 나오면 무조건 잡은 것으로 보인다"며 "돈이 부족하다 보니 여러 명이 지분 투자를 한 건데, 전답을 100억원씩이나 주고 샀다는 건 (신도시 지정을) 미리 알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짓"이라고 말했다.
주민들은 LH 직원들의 투기 의혹에 분노를 터트리면서 철저한 조사를 당부했다. 과림동의 다른 공인중개사는 "LH 직원들이 회사에서 일 안 하고 여기서 농사 짓는다는 게 말이 되나. 정말 죽일 놈들"이라고 말했다. 이 지역엔 집성촌이 많아 수백 년 동안 모여 살아온 원주민이 많은 데다, 2015년부터 환지 방식 개발을 추진해왔다. 하지만 이런 계획이 신도시 지정으로 무산될 판에 투기 의혹까지 제기되자 분노가 치솟았다. 도로변 곳곳에 나붙은 토지 강제수용 반대 플래카드는 이런 민심을 대변하고 있었다.
34년째 시흥시 과림동에 살고 있는 D(73)씨는 "언론 보도를 접하고 동네 주민들끼리 한참 욕을 했다"며 "우리는 이곳을 떠나고 싶지 않은데, 정작 신도시 지정으로 누군가는 이득을 취하고 기뻐했다니 어이가 없다"고 말했다.
이승엽 기자 sylee@hankookilbo.com
강진구 기자 realn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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