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희 칼럼] BNPL, 찻잔속 미풍이냐 태풍이냐

2021. 3. 3.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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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희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이준희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금융위원회는 지난 2월 9일 제6차 디지털금융협의회를 열어, 금융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대형 핀테크회사의 후불결제 서비스를 승인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에 따라 현재 국회 계류 중인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에 따라 허용되는 후불결제의 시범사업이 법 통과 이전에 시장에 출시될 예정이다. 2월 18일 금융위원회 정례회의에서 네이버파이낸셜의 네이버페이가 가장 먼저 승인을 받았고 4월경 서비스를 출시할 것으로 예상되며, 카카오페이 등 다른 사업자들의 출시도 이어질 전망이다. 이러한 후불결제는 해외에서 각광받는 서비스인 BNPL, 즉 Buy Now, Pay Later 서비스를 우리나라에서도 허용하기 위한 움직임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서비스가 이루어지는 현장을 상상해보자. 쇼핑몰에서 이런저런 물건을 구경하다가, 사고싶은 물건을 발견했는데, 지금 당장은 통장 잔고가 좀 부족한 상황이다. 이럴 때 스마트폰을 꺼내어 앱을 실행하고 그 앱이 생성하는 QR코드나 바코드를 통해 일단 BNPL 결제를 하면, 무이자 또는 아주 낮은 이자로 그 다음달에 일시불로 또는 몇 달에 걸쳐 할부로 대금을 낸다. 소비자는 당장의 지출 없이 쇼핑을 하게 되고, BNPL업체는 우량고객에 대한 선별적인 신용공여를 통하여 수수료 매출을 창출하게 된다. 쇼핑몰 업체는 그 만큼 매출이 증가하는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어디서 많이 보던 장면 같지 않은가? 그렇다. 신용카드 보급율이 매우 높은 우리나라에서는 전통적으로 신용카드가 이러한 역할을 해왔다. 비록 신용등급 7등급이라는 법적인 최소 발급기준 등 다양한 규제로 인해 사회 초년생이나 주부와 같은 신용 취약계층(Thin Filer)에 대한 발급이 까다로운 문제가 있긴 하지만, 가족카드, 하이브리드체크카드와 같은 유형의 신용카드를 통해 그러한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해 오기도 했다. 언뜻 보면 BNPL이라는 서비스는 그러한 틈새시장이 존재하는 다른 나라에서는 유효한 서비스일지 모르나 우리나라에서는 과연 이러한 모델이 시장성과 사업성이 있을까 의문이 들기도 한다. 이에 더하여, 자동차과 같은 고가의 소비재의 경우 할부금융(캐피탈)이라는 또 하나의 소매금융 서비스가 오랫동안 이용되어 오기도 했다. 하지만, 실제 시장에서는 이와 같은 후불결제 서비스에 대하여 많은 갑론을박이 오가고 있고, 이러한 B2C 소매금융의 영역을 수성하고자 하는 신용카드업계와 새로운 혁신적인 서비스로 이 영역을 침투하고자 하는 핀테크 업계의 치열한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몇 가지 관전포인트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이러한 후불결제는 핀테크 업체가 제공하는 간편결제 서비스 중 최초로 자체적으로 신용을 부여하는 수익성 서비스라는 점이다. 기본적으로 핀테크 간편결제 서비스는 사용자와의 접점에서 다양한 결제수단을 제공하나 이러한 결제수단은 대부분 기존의 금융회사가 제공하는 서비스(신용카드, 계좌이체 등)와 연결된 것이며, "~머니"로 불리는 충전형 선불수단 또한 미리 충전을 통해 가치를 옮겨놓은 것일 뿐 핀테크 업체가 자체적으로 소비자에게 신용을 공여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간편결제 서비스 업체가 중간에서 받는 가맹점 수수료율 또한 0.3~0.6% 정도의 낮은 수준에 불과했다. 이번 후불결제는 실제 핀테크 업체가 스스로 일종의 소액신용공여라는 금융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첫 물꼬를 튼 것이라는 의미가 있다.

둘째, 이러한 소액 B2C 소매금융 시장은 신용카드 회사 입장에서는 향후 몇 년 뒤에 우량고객으로 성장할 신규 고객의 진입관문이라는 의미가 있다. 회사별로 다를 것이나 일반적인 카드 고객은 다양한 카드를 발급받아 소지하면서 혜택 조건에 따라 사용처를 나누어 사용하는 패턴을 보이고 있고 단일 카드로 100만원 이상을 소비하는 경우가 많지는 않다. 특히 특정한 쇼핑몰의 충성고객들도 해당 쇼핑몰에서 월 30만원 이상 사용하는 사례는 많지 않을 것이다. 즉, 이 시장을 핀테크 회사가 장악한다는 것은 신용카드회사의 고객유입통로를 틀어쥐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셋째, 이 시장은 휴대폰 소액결제 서비스와의 본격적인 전투가 벌어지는 시작점이기도 하다. 통신요금에 얹어서 익월 청구가 이루어지는 휴대폰 소액결제 서비스는 현재 100만원 한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데, 통신회사가 신용을 공여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후불결제와는 다른 측면이 있다(즉, 가맹점에 대한 정산도 마찬가지로 늦게 이루어지는 셈이다). 후불결제 및 신용카드는 사용 후 단기간 내에 가맹점 정산이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가맹점, 특히 중소상공인을 두텁게 보호하는 효과가 있다.

이러한 다양한 측면과 이해관계, 시장질서를 고려한 정책당국의 고민이 이번에 처음으로 도입되는 후불결제 서비스 법안에 담겨 공개됐다. 충전한 선불수단의 잔액부족인 경우에 한해 30만원 한도 내에서 이용이 가능하고 수익성 확보를 위한 할부, 리볼빙, 현금서비스 등은 엄격히 금지되며 비금융정보의 빅데이타분석 등 신기술을 통한 심사와 리스크관리가 이뤄져야 한다. 이에 대하여는 지나치게 공익적인 측면만 고려한 엄격한 규제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비판도 있지만, 실제 커머스 고객의 락인(lock-in)효과 등 다른 측면의 효익도 존재하고 신용평가모델링와 심사, 리스크관리와 연체관리, 추심에 이르는 전 프로세스를 구축해 전문화할 수 있는 기회이며, 카드사에게는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반론도 존재한다.

향후 이 후불결제서비스가 정말 정책적인 목적도 달성하면서 카드와의 차별화를 통한 소매금융에의 혁신을 가져오는 첫번 째 테스트베드가 될지, 아니면 전통적인 신용카드 시장과의 경쟁에서 밀려나갈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 더하여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기존에 엄격한 규제 하에 관리되던 신용카드 서비스와 상품에 좀 더 유연성을 부여하는 방식의 규제완화도 검토되면 좋지 않을까 싶다. 예를 들어, 특정한 가맹점으로 사용처를 제한해 특정한 금액과 조건에 따라 사용과 승인 여부를 자체적으로 관리하고 대신 발급심사와 리스크관리, 인증절차에 보다 편의성과 자율성이 부여되는 백지(White Label) 카드에 관한 스몰라이센스를 도입하면 어떨까? 이를 통하여 후불결제서비스와의 혁신경쟁을 유도한다면, 보다 소비자와 가맹점 모두의 이익이 되는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을까 생각해본다.

해외로 눈을 돌려보자, 이미 페이팔(Paypal) 뿐만 아니라 클라나(Klarna), 어펌(Affirm), 애프터페이(Afterpay), 시즐(Sezzle) 등과 같은 기업들이 무이자 할부, 익월 결제 등 다양한 서비스모델로 시장을 확대하고 있고, 비자, 마스터카드와 같은 전통적인 금융업계와의 경쟁 또는 제휴를 통해 서비스의 차별화로 경쟁하고 있다. 물론, 신용카드 보급률이 매우 높고 무이자할부와 같은 서비스가 일반화된 국내 시장에서는 쉽지 않으리라는 예상도 일리는 있다. 하지만, 세대의 스펙트럼을 펼쳐놓고 보면, 직불이나 체크카드, 충전식 간편결제에 익숙한 사회 초년생들이나 젊은 세대를 선점할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나게 큰 의미가 있다. 이렇게 첫 물꼬를 튼 후불결제 서비스가 앞으로 어떻게 변화되고 확장되어 갈지, 이에 대응하는 신용카드 서비스는 또 어떻게 혁신을 이루어갈지 잘 관찰해볼 필요가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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