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사진으로, 먹고 들어간다
지난달 경기도 파주에 있는 SSG닷컴(신세계·이마트 온라인몰) 스튜디오 1층에선 ‘피코크 떡갈비’가 카메라 세례를 받고 있었다. 사진사가 셔터를 멈추면 옆에서 대기하던 푸드스타일리스트가 붓에 식용유를 찍어 떡갈비에 발랐다. 고기가 말라서 퍽퍽해 보일까 봐 윤기를 더한 것이다. 2층에선 잡채 촬영이 한창이었다. 그릇에 담긴 잡채가 봉긋해 보이도록 잡채 밑에 무 한덩이를 깔아놨다.
지난해 4월 문을 연 이 스튜디오는 까만 부엌, 흰 부엌 등 디자인과 배경 색이 다른 부엌 3개를 갖추고 있다. 나무 도마, 대리석 도마, 플라스틱 도마, 실리콘 도마 등 도마만 100여 개에다가 그릇도 재질별, 크기별, 색상별로 있다. 이 밖에도 식기, 조리 도구 등 사진 연출을 위한 집기는 1만개가 넘는다. SSG닷컴의 상품 3만1000여개 중 3만개의 사진이 여기서 찍혔다.
잘 찍혀야 산다. 구직자가 사진에 공들여 이력서 사진을 찍듯이 온라인 장보기 상품도 웹사이트에 오르기 전 소비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 사진 촬영을 한다. 롯데마트(롯데온), 마켓컬리, SSG닷컴, 오아시스, 현대백화점 식품관, 홈플러스 등 대형 유통 업체는 사내에 자체 스튜디오를 운영하거나 사진·동영상 전담팀을 꾸려서 외주 스튜디오와 작업을 하고 있다. 푸드스타일리스트들이 동원되고 스톱모션(물체를 조금씩 움직이면서 촬영해 연속 동작을 구현하는 애니메이션 기법) 촬영까지 활용한다.
◇사진발 살렸더니 매출이 늘었다
업계에선 사진 경쟁이 새벽 배송 선두주자인 마켓 컬리가 등장하면서 시작됐다고 보고 있다. 기존에는 제품의 정면 사진이나 생산자·업체가 제공한 사진을 썼는데, 마켓컬리는 직접 제품 연출 사진을 찍었다. 대리석이나 나무 탁자를 배경으로 삼고, 식탁보, 식기 등을 동원해 음식 잡지에 등장하는 화보처럼 신선 식품을 찍어 사용자들에게 ‘고급스럽다’는 인식을 심어줬다.
사진발은 매출로 이어졌다. SSG닷컴 관계자는 “전체 제품의 20%를 사진으로 찍어 올렸을 때, 여기서 매출의 50%가 나왔다”고 했다.
초기에는 신선 식품과 PB(private brand·자체 브랜드) 상품 위주로 사진 촬영이 진행됐다. 신선 식품을 직접 보지 않고 온라인에서 구매하는 것을 꺼려 하는 소비자가 많기 때문에 제품이 신선하다는 걸 사진을 통해 보여줘야 했기 때문이다. PB 상품의 경우엔 자사(自社) 제품이기 때문에 타사 제품에 비해 사진 연출이 자유롭다. 최근에는 조리 결과를 보여줄 수 있는 밀키트의 사진을 공들여 찍는 편이다.
◇푸드스타일리스트, 스톱모션까지 동원
사진 찍을 품목이 늘어나고, 사진발 경쟁이 일어나자 SSG, 마켓컬리, 현대백화점 식품관 등은 아예 자체 스튜디오를 차렸다. 현대백화점 측은 “대리석 상판까지 다 갖춘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고 밀키트의 경우 식당 현장에 가서 찍을 때도 있다”고 했다. 마켓컬리에는 상품의 이미지·영상 담당자만 50여명이다. 사진작가와 푸드스타일리스트가 상주하는 SSG스튜디오는 동영상 촬영을 강화하기 위해 최근 영상촬영실을 따로 만들었다.
인스타그램이나 핀터레스트를 통한 홍보가 많이 이뤄진 것도 한몫했다. 홈플러스가 2019년 7월 인스타그램에서 운영한 ‘소비 패턴’ 계정은 상품 여러 개를 마치 패턴처럼 보이도록 나열한 사진을 올려 감각적이고 발랄하다는 소비자 평가를 받았다. 게시물마다 수백 개의 댓글이 달릴 정도로 반응이 뜨겁다. 홈플러스는 지난해 11월 중순부터 상품을 활용한 조리법을 스톱모션 영상으로 촬영해서 올린다. 상품 하나를 찍는 데 15일 걸린다.
사람도 사진을 찍을 때 화장을 하거나 필터 앱을 쓰는 것처럼 음식과 식재료 사진에도 ‘단장’이 필요하다. 음식에 윤기를 주려고 기름칠을 하는 것은 기본. 탱글탱글한 새우를 보여주기 위해 투명 실을 새우에 감아 매달아 찍기도 한다. 마켓컬리 관계자는 그러면서도 “사진을 잘 나오게 하려고 연출을 하긴 하지만, 보정을 많이 할 순 없다. 제품과 사진의 차이가 크면 소비자가 불만을 제기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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