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재난시대, '휴먼그리드 플랫폼'으로서의 대학을 사유하다 / 이재영

한겨레 2021. 3. 3.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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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영 | 교수

이재영 | 서울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결국 이번 학기도 비대면 수업으로 시작되었다. 지난 1년, 처음 경험하는 전면적 비대면 수업이었지만 지식의 ‘다운로드’에 별다른 어려움은 없었다. 그럼에도 강의를 마치고 나면 허전함이 차오르곤 했다.

그러는 동안에 대학은 심각한 위기를 겪었다. 비대면이라는 형식은 학교라는 장소와 등교, 집합 등을 기반으로 행해지던 기존 대학 교육의 근간을 흔들었다. 여기에 고등교육의 값비싼 비용 문제와 제2, 제3 직업의 획득은 고사하고 졸업 후 제1 직업의 획득에도 확실한 밑천이 되지 못하는 대학의 현실 등이 더해지면서 대학의 위기가 심화되었다.

그나마 위안이 됐던 점은 그러한 위기 속에서 대학의 본질이 부각되는 수확을 얻었다는 역설이다. 대학은 지식과 교양의 발신과 수신이 이루어지는 학술의 광장일 뿐 아니라 소통능력과 협동심 같은 사회적 인격을 쌓아가고 삶의 기술을 익히는 도야의 장이라는 ‘오래된 미래’ 말이다. 사람 간 부딪힘에서 비롯되는 대면적 상호의존성은 개인이 독립성을 키우고 창의적, 협업적 존재로 성장하는 데 방해 요소가 아니라 오히려 든든한 힘이었다.

그간의 비대면 수업을 통해 지식 전수라는 교육목표를 달성할 수 있음과 동시에 대학의 존재 이유는 대면 기반일 때 온전히 구현됨을 새삼스레 확인한 셈이었다. 겸하여 비대해진 대학의 군살도 찾아낼 수 있었다. 비대면 수업을 적절히 활용함으로써 강의실 등 공간 활용의 효율을 높일 수 있고, 온라인 기반 교육 콘텐츠의 활용을 통해 행정과 비용을 절감할 수 있음을 목도했다. 이러한 군살빼기의 성과를 오롯이 학생에게 환원한다면 “교육이 높고 강한 대학”이라는 이상 실현은 멀지 않게 될 것이다.

이는 비대면 교육을 변수가 아니라 상수로 놓아야 함을 말해준다. 대면 교육과 비대면 교육의 장점이 서로를 보완하는 ‘대면-비대면 하이브리드’형이 미래 대학의 새로운 기본임을 일러준다. 대학이 ‘하이브리드 교육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는 얘기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하이브리드 교육을 뒷받침할 수 있는 제도적 환경의 구축, 이에 필요한 기술적 높이의 구현, 훌륭한 교육 콘텐츠의 지속적 확보와 이의 편리하고도 스마트한 활용 등이 코로나19 이후의 교육을 사유함에 관건이 되어야 한다.

또한 ‘재난시대’에 직면하여 대학이 어떠한 노력을 해야 하는지도 사유해야 한다. 우리는 이미 재난이 개인부터 국가 차원에 이르기까지 상수가 된 시대를 살고 있다. 생태파괴, 이상기후 등으로 인한 재난은 코로나19 팬데믹에서 볼 수 있듯이 일국 차원을 넘어 국제적 차원에서 동시적으로 발생되고 있다. 이러한 재난시대에 대학이 존재 이유를 입증하려면 개인이 재난에 탄력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는 데 쓸모 큰 교육을 체계적이고 실질적으로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재난에 탄력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개인이어야 재난에 대해 회복력을 갖는 사회가 된다. 탄력적 개인, 회복력 강한 사회를 만들어가는 일, 이것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 대학이 앞장서야 하는 일의 하나다.

이러한 일은 어느 특정 대학이 혼자 하기는 어렵다. 모든 대학이 ‘그리드’(grid, 연결망)를 형성하여 집단지성을 구축해야 한다. 재난시대에 대학이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고 새로운 교육 내용과 방식 등을 강구하면서, 유관 경험을 공유하고 역할을 분담해야 한다. 이것이 인간을 위한 그리드, 곧 ‘휴먼그리드’이다. 각 대학은 자신이 속한 지역사회에서 각자의 소규모 휴먼그리드를 조성하여 중추 역할을 해야 한다.

대학은 이렇듯 다양한 차원에서 사람을 위해 힘쓰는 ‘휴먼그리드 플랫폼’으로 진화해야 한다. 그랬을 때 대학은 제2 팬데믹 같은 재난 상황이 반복되더라도 그러한 위기를 기회로 전환해가는 미더운 플랫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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