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회 비정규 노동 수기 공모전] 시수당 3000원이 올랐다, 20년 동안 (하) / 김기영

한겨레 2021. 3. 3.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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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 노동 수기 공모전]]2020 공모전
예술강사들은 10년이 넘게 일해도 1년차 신입 강사들과 똑같이 시수당 몇만원의 강의료를 받는 1년 단위 계약직일 뿐이다. 해마다 재고용이 되고는 있지만, 이런 연속고용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1년 단위로 10개월씩 일하는 계약직. 비정규직 일자리에서도 최악의 일자리가 아닐까 싶다.

김기영 | 영화예술강사

20여년 전엔 20대의 젊고 의욕 넘치던 청년 예술강사들이 지금은 40~50대의 머리 희끗희끗한 중년들이 되어 버렸다. 누군가는 결혼하고, 누군가는 아이도 낳았다. 20여년의 세월 동안 꾸준히 예술강사로서 활동하고 아이들을 가르쳤으니 그동안 축적된 경험과 노하우만 따져도 일반 회사라면 웬만한 경력직 못지않을 것이다. 그러나 예술강사의 경력은 전혀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예술강사는 아직도 1년 단위의 불안정한 계약직이고, 1년 열두달 중 10개월밖에 일하지 못하는 초단시간 근로자의 덫에 걸려 있다. 학교 선생님들은 방학 중에도 월급이 나오지만, 예술강사들은 방학은 영락없이 손가락 빨면서 굶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예술강사 처지에 2020년 코로나19 사태가 겹치면서 상황은 더욱 심각해졌다. 당장 나만 해도 3월부터 예정되어 있던 수업이 5월까지 연기되어 버렸다. 이미 전년도 12월 초 수업이 끝나고 겨울방학 두달 남짓 전혀 수입이 없는 상황에서 3월 개학만 기다리던 상황에서 날벼락이 아닐 수 없었다. 당장 매달 나가야 하는 집세와 아이들 학원비, 이런 기본적인 것들조차 해결할 수 없는 하루하루가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정부에서는 특수고용 노동자들을 위해 고용안정 지원금을 준다고 했지만, 예술강사들은 고용보험에 가입되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특수고용 직종이 아닌 것으로 분류되었고, 고용안정 지원금마저 받을 수 없었다. 생각해보면, 매달 월급 받을 때마다 꼬박꼬박 고용보험료를 내긴 했어도 정작 실업급여는 한번도 받아본 적이 없는데 말이다.

5월 초에 다행히 예술강사들도 수업을 할 수 있게 되었지만, 오프라인과 온라인 수업을 병행하게 되면서 또다른 위기에 봉착하게 되었다. 원래 학생들과 실제 예술적 체험 및 실습 위주로 수업을 진행하게 되는데 갑자기 이론 위주의 동영상 수업을 제작하라는 과업이 떨어진 것이다. 그나마 교사들은 교육청에서 동영상 촬영에 필요한 기자재며 촬영 관련 연수 등을 발 빠르게 준비해주었지만, 예술강사들에게는 오로지 개인 역량에 모든 게 맡겨진 상황이었다.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은 우리 사회 누구 할 것 없이 고통스러운 위기의 순간을 안겨주었지만, 정규직은 그나마 그런 위기의 순간을 넘기도록 돕는 법적, 제도적 장치들이 여럿 있는 반면 비정규직 노동자는 아무런 완충장치 없이 맨몸으로 태풍에 맞서는 느낌이었다. 학교 선생님들은 코로나19로 인해 수업을 하지 않아도, 방학에도 급여가 나오지만, 예술강사는 오로지 수업시수에 따른 강의료가 전부이다. 예술이라는 특성상 개인별, 학급별, 학교별 대상자에 따라 다양한 커리큘럼을 연구하고 개발해야 하는데도 수업 준비에 필요한 그 어떤 시간도 인정받지 못하고 수업시수에 따른 강의료가 전부인 상황인 것이다. 아무런 지원도 받지 못하고 어렵게 어렵게 온라인 수업을 위한 동영상을 만들어 겨우겨우 수업을 진행했는데도 불구하고, 직접 수업하지 않고 동영상으로 하니 편해진 거 아니냐는 학교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했을 때엔 정말이지 울컥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우리가 원해서 온라인 수업으로 바꾼 것도 아니고, 상황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온라인 수업을 진행했을 뿐인데, 실제 수업을 하지 않으니 되레 더 편해진 게 아니냐는 시각은 학교가 갑이고 강사는 을이라는 사회적 위치를 새삼 느끼게 해주었다.

나는 이제 햇병아리 강사이지만, 주변에는 이 일을 20여년 가까이 해오신 예술강사들도 꽤 있다. 다른 직종이라면 20여년 경력으로 안정적인 직급과 보수를 받고 있을 터인데, 예술강사들은 10년이 넘게 일해도 1년차 신입 강사들과 똑같이 시수당 몇만원의 강의료를 받는 1년 단위 계약직일 뿐이다. 해마다 재고용이 되고는 있지만, 이런 연속고용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1년 단위로 10개월씩 일하는 계약직. 비정규직 일자리에서도 최악의 일자리가 아닐까 싶다. 이런 불안정한 요소들이 예술강사들이 온전히 수업에만 전념할 수 없게 만드는 최악의 요인임을 과연 모르는 것인지 궁금해진다. 수업과 창작에만 전념하고 싶어도, 당장 내일 일을 모르기에 투잡을 뛰어야 하고, 다른 알바 자리를 찾아 헤매는 예술강사들. 하루빨리 정부에서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예술강사를 하다못해 무기계약직으로라도 직업적인 안정성을 확보해주기를 바랄 뿐이다. 말로만 창의적인 예술교육을 외칠 것이 아니라, 그런 교육이 실제로 가능하도록 근로환경을 만들어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가 지난해 주최한 ‘10회 비정규 노동 수기 공모전’ 응모작입니다. 수상작을 해마다 <한겨레>에 게재해왔으나, 코로나19 팬데믹 1년을 견뎌온 비정규직 노동자의 저마다 고충이 담긴 ‘노동일기’로서 응모작 일부를 추가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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