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수 칼럼] 어찌 이리도 모진 것이냐

박찬수 입력 2021. 3. 3. 18:26 수정 2021. 3. 3.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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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수 칼럼]
서민 교수가 조국 전 장관을 어떻게 평가하고 비판하든, 그건 그의 자유다. 그러나 딸을 ‘추적’하는 건 사안이 다르다. 내가 굳이 서 교수 칼럼을 반박하는 글을 쓰는 건, 이것이 요즘 우리 사회를 휘감고 있는 공정 담론의 가장 취약한 지점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고 보기 때문이다. 공정의 추구가 모든 행동을 정당화할 수 있다는 잘못된 믿음이다.
2월27일치 <조선일보>에 실린 서민 단국대 교수의 칼럼.

지난 토요일 <조선일보>에 실린 서민 교수의 칼럼, ‘조민 추적은 스토킹이 아니다,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는 글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강퍅하고 정치적으로 모진 공격에 몰두해 있는지를 보여준다. 서 교수는 “부모의 죄가 곧 자식의 죄다. 똑똑히 지켜보고 종놈이 법을 어기면 어찌 되는지 뼈에 새기거라”라는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대사를 인용하면서, ‘연좌제에 반대하지만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딸을 언론이 뒤쫓는 건 연좌제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서 교수가 말하고 싶은 건 실은 이것일 게다. ‘때론 부모의 죄를 자식에게 물어도 된다. 반성하지 않는 자에겐 그 어떤 관용도 필요 없다.’

조국 전 장관 딸을 겨냥한 종편과 보수 신문, 보수 유튜버들의 ‘추적’은 이미 스토킹 수준에 도달했다. 몇달 전 <조선일보>는 조 전 장관 딸의 세브란스병원 인턴 요청 기사를 잘못 내서 지면에 사과문을 실었다. 그렇게 오보까지 내며 추측기사를 써야 할 정도로 조 전 장관 딸의 동향이 국민의 알 권리와 사회적 진실 찾기에 중요한 건지 이해하기 어렵다. 오로지 정치적 증오를 부추기기 위해 딸까지 표적으로 삼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서민 교수가 조국 전 장관을 어떻게 평가하고 비판하든, 그건 그의 자유다. 그러나 딸을 ‘추적’하는 건 사안이 다르다. 내가 굳이 서 교수 칼럼을 반박하는 글을 쓰는 건, 이것이 요즘 우리 사회를 휘감고 있는 공정 담론의 가장 취약한 지점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고 보기 때문이다. 공정의 추구가 모든 행동을 정당화할 수 있다는 잘못된 믿음이다.

공정한 절차와 과정을 위해 개인적 노력을 기울이는 건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 사회의 관용과 이해, 포용의 폭을 넓히기보다 오히려 좁히는 쪽으로 작용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최근 온라인에서 이슈가 된 사유리씨 논란은 단적인 예다. 추워서 입술이 파래진 아기의 몸을 녹이려 휴대폰과 신분증이 없는데도 스타벅스 매장에 들어가려 했던 사유리씨의 다급함을 오로지 ‘방역수칙 준수’라는 잣대로만 엄격하게 재단하는 건 온당한 일일까. 어린아이 안전은 최우선으로 보호해야 한다는 관념에 비춰보면, 비록 방역수칙에 어긋나더라도 엄마로서 사유리씨 행동을 나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연예인이라고 방역수칙 어겨도 되나’ ‘아이 가진 게 무슨 특권이냐’는 거센 비난에 사유리씨는 끝내 공개적으로 사과를 했다.

언론 보도를 보니, 정반대의 비난이 스타벅스 직원에게도 쏟아졌던 모양이다. 방역수칙을 지키려는 직원의 행동도 이해할 만하다. 문제는 원칙과 기준을 내세워 개별 사안 사안의 특수한 사정을 손쉽게 무시해버리는 지금의 분위기에 있다. 사회적으로 방역의 효과를 실질적으로 높이는 차원이라기보다, ‘나는 지키는데 너는 왜 안 지키냐’라는 불관용의 심리가 과도한 비난 공세에 깔려 있다고 본다. 공정과 정의를 강조하는 과정에서 우리 사회의 포용성은 오히려 낮아지고 있다는 뜻이다.

최근 경기도와 충청도 이주노동자들의 집단감염 사태를 보는 싸늘한 시선도 비슷한 경우다. 방역 사각지대라는 구조적 측면과, 낯선 나라이기에 자체 모임에 더욱 열심인 그들의 사정은 이해와 고려의 대상이 되질 못한다.

보수 언론이 조 전 장관 딸을 쫓는 명분은 의학전문대학원 입학이 ‘공정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에 대해선 재판이 진행 중이고, 유은혜 교육부 장관은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그 딸을 집요하게 추적해 낱낱이 생활을 공개하는 게 우리 사회의 ‘정의와 공정’ 수준을 높이는 데 과연 얼마나 도움이 될 수 있을까. 고교 시절 등교시간 1분 늦었다고 쪽문조차 걸어 잠근 학교를 바라보며 느끼던 막막함을, 지금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에서 똑같이 느낀다. 그게 정말 우리가 가려고 하는 바람직한 방향인 걸까.

최순실(개명 후 최서원)씨 딸과 조국 전 장관 딸의 사례가 뭐가 다르냐고 반문할 수 있다. 서민 교수도 비슷한 논리로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아들의 운전병 특혜 논란을 욕했던 이들을 비판했다. 설령 그런 비판이 타당할지라도, 그 비판의 화살은 조국 전 장관을 겨누는 걸로 충분하다. 딸까지 쫓는 걸 언론의 사명으로 포장하고 그게 정의의 실현인 양 옹호하는 건 몰인정과 정치적 의도에 찌든 잔인함을 드러낼 뿐이다. 상대방이 극단적인 편견에 사로잡혔다고 비난하기 전에, 스스로는 얼마나 관용하고 인내했는지 돌아봤으면 한다. 이건 물론 나 자신에게도 향하는 말이다.

박찬수 l 선임논설위원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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