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올림픽 조직위 여성 이사 비율이 42%가 되기까지
[경향신문]
모리 요시로(森喜朗) 전 도쿄올림픽 조직위원장의 여성혐오 발언과 사퇴 등으로 바람잘 날이 없어왔던 도쿄올림픽 조직위원회가 여성 이사를 추가로 선임해 이사회 내 여성 비율을 높이기로 결정했다.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도쿄올림픽 조직위가 2일 임시 이사회를 열고, 전직 운동 선수, 대학교수, 변호사, 기업 경영인 등 여성 12명을 새로운 이사 후보로 추천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현재 도쿄올림픽 조직위 이사 34명 중 여성은 7명(20%)이지만, 이들의 추천이 받아들여지면 여성은 19명(42%)으로 늘어난다. 요미우리신문은 3일 도쿄올림픽조직위 평의원회에서 이들의 부임이 승인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모리 전 위원장이 쏘아올린 ‘망언’
모리 전 위원장의 여성혐오 발언은 도쿄올림픽 조직위가 여성 이사 비율을 높인 발단이 됐다. 그는 지난달 3일 열린 일본올림픽위원회(JOC) 회의에서 여성 이사 비율을 40%로 올리자는 안건이 올라오자 “여성이 많은 이사회는 (회의 진행에) 시간이 걸린다”며 “여성은 경쟁의식이 강하다. 누군가 손을 들면 자신도 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성 이사를 늘리면 발언 시간도 규제해야 한다. (회의가) 좀처럼 끝나지 않기 때문에 곤란하다”고 발언해 거센 비난을 받았다.
모리 전 위원장은 다음날 취재진에 “올림픽·패럴림픽 정신에 반하는 부적절한 표현이었다”며 사죄하면서도 “사임할 생각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자 모리의 위원장직 사퇴를 압박하는 여론은 더욱 거세졌다. 일본 주요 일간인 마이니치신문, 아사히신문, 도쿄신문은 지난달 5일 모리 전 위원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사설을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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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온라인 청원사이트인 ‘Change.org’에는 ‘성차별을 다음 세대에 물려주고 싶지 않다’는 글이 올라왔고, 3일 현재까지 15만명 이상의 동의를 받았다. 청원에는 “모리의 편견이 담긴 발언은 다른 여성에게 영향을 미치거나, 위협을 줄 수 있다”며 “이사회 내 지속적인 성차별 예방조치와 더불어 여성 이사 비율을 40% 이상 채울 것을 요구한다”는 내용의 글이 올라왔다
일본 야당 소속 여성 의원들은 지난달 8일 열린 중의원 본회의에 모리 회장의 여성혐오 발언에 항의하는 뜻으로 미국 여성 참정권 운동의 상징인 흰옷을 입고 출석했다. 남성 의원들은 가슴 부위에 흰 장미를 달고 뜻을 함께 했다.
올림픽 성화 봉송 주자 2명을 포함한 도쿄올림픽 자원봉사자 390여명도 모리 전 위원장의 발언 이후 사퇴했다는 일본 언론들의 보도도 다음날 나왔다. 자원봉사자 대부분은 모리 회장의 발언을 사퇴 이유로 꼽았다. 교도통신은 모리 전 위원장의 발언 이후 5일 동안 올림픽 조직위에 약 350통의 전화와 약 4200통의 메일 문의가 왔고, 이 가운데 90%는 모리 회장에 대한 항의 연락이었다고 전했다.
결국 물의를 빚은 지 9일 만에 모리는 위원장직을 내려놓았다. 하지만 지난달 12일 도쿄에서 열린 사임 기자회견에서 “그것(문제의 발언)은 해석의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말하면 또 욕을 써대겠지만”이라고 말해 또다시 구설수에 올랐다.
이후 스케이트 선수 출신 여성인 하시모토 세이코(橋本聖子)가 지난달 18일부터 위원장직을 맡았다. 그는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 폐회식 후 선수촌 파티에서 남성 피겨스케이트 선수에 강제로 입을 맞춰 비판받은 바 있다.
■도쿄올림픽 조직위 내 성차별 없어질까
여성혐오 발언 파문 끝에 부임한 하시모토 위원장은 부임 후 열린 첫 이사회에서 도쿄올림픽 조직위 내 성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그는 여성 이사 비율을 높이고, 부회장직에도 여성을 선임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이번 사태는 단순한 조직 내 문제가 아니라, 일본 사회의 구조적 성차별 문제를 보여준 사건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일본 최대 경제단체인 게이단렌(經團連)의 나카니시 히로아키(中西宏明) 회장은 모리 회장의 발언에 관해 “솔직히 말하자면 일본 사회는 그런 본심이 있는 것 같다”고 지난달 9일 아사히신문에 말했다. 나카니시 회장은 ‘본심’의 의미를 “여성과 남성을 나눠서 생각하는 습성”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모리 전 위원장의 발언을 농담으로 받아들이며 회의 현장에서 웃었던 이사들도 비판을 받았다. 트위터에는 일본어로 “발언도 문제지만, 비난 대신 웃음이 터져 나온 건 정말 부끄러운 일”이라는 글도 올라왔다.
일본은 세계경제포럼(WEF)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성평등 순위에서 153개국 중 121위를 차지했다. WEF는 일본 내 정치인과 기업 고위직 여성 비율 순위가 130위대인 것으로 조사했다.
윤기은 기자 energye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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