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영 장관이 '불경죄'라도 저질렀나?

2021. 3. 3.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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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칼럼] 제재를 '재검토'하지 않으면 뭘 하겠다는 건가?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wooksik@gmail.com)]
이인영 통일부 장관이 국내외 보수 진영으로부터 뭇매를 맡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와 인터뷰에서 대북 제재의 효과에 대해 의문을 표하면서 재검토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에 대한 비난이 거세지고 있는 것이다.

이 장관은 "강력한 대북 제재를 부과한지 5년이 흘렀는데, 제재가 성공적인 북한의 비핵화에 긍정적으로 기여했는지에 대해 검토해볼 시기가 왔다"며 "포괄적인 재검토"에는 제재가 북한 주민들에게 미치는 영향도 포함되어야 한다고 밝혔었다.

그러자 상당수 국내 언론들은 미국 국무부와 유럽 연합의 논평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이 장관에게 맹폭을 퍼붓고 있다. 북한의 경제난과 주민들의 고초의 원인은 김정은 정권의 실정에 있는데, 이 장관이 제재 탓으로 돌리고 있다는 것이 주된 논조이다.

이러한 공세를 보고 있노라면 적반하장이라는 말이 절로 떠오른다. 보수 언론들은 대북 제재 강화가 북한의 경제난을 가중시켜 비핵화를 앞당길 것이라고 이구동성으로 외쳤었다. 그러나 김정은 정권이 제재에 굴복하기는커녕 "핵무력 증강"을 공언하고 나오자 '그럴 줄 알았다'는 식으로 반응을 쏟아내고 있다.

그토록 신봉했던 제재의 효과가 없었다면 자성이라도 해야 할 텐데, 제재의 문제점을 정확히 지적한 이인영 장관에게 비난의 화살을 쏟아 붓고 있는 것이다.

언론들은 미국은 물론이고 유럽연합도 이 장관의 발언을 비판한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그런데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유럽의 일부 국가들은 미국 주도의 대북 제재를 동참하면서 이를 정당화하기에 급급해왔다. 이랬던 이들 나라가 대북 제재의 역효과와 비인도성을 인정하는 건 애초부터 기대하기 힘든 것이다.

보다 현실적인 문제도 있다. 필자가 작년에 만난 독일의 한반도 전문가는 "유럽연합이 미국보다 대북 제재에 강경한 이유는 자기들 이익과 별 상관이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지요"라고 말했다. 유럽연합의 주된 이익과 관심사는 이란 제재에 있는데 대북 제재를 두고 미국과 다른 목소리를 내면, 이란 제재 문제를 푸는 데에 도움이 안 된다고 여긴다는 것이다.

실제로 2015년 이란 핵협정 타결 이후 이란과 경제협력을 늘려왔던 유럽 국가들은 트럼프 행정부가 이 협정에서 일방적으로 탈퇴해 제재를 부과하자 미국과 각을 세워왔다. 대북 제재는 옹호하면서 말이다.

이에 반해 대북 제재는 대남 제재이기도 하다. 박근혜 정부의 '통일대박론'과 조선일보의 '통일은 미래다'라는 구호는 남북경제협력과 유라시아로의 경제 진출이 한국 경제의 '블루 오션'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대북 제재가 강해지면서 한국 경제의 새로운 활로는 막혀 있다.

이에 따라 제재가 과연 비핵화에 기여했는지를 재검토하고 비핵화 진전에 발맞춰 제재를 풀어가야 한다는 취지의 이 장관 발언은 '국익'에도 부합하는 것이다. 휴전선을 맞대고 있는 우리가 태평양 건너에 있는 미국이나 유라시아 대륙 반대편에 있는 유럽의 일부 국가들과는 다른 안목이 필요한 까닭이다.

미국 정부의 태도도 극히 유감스럽다. 바이든 행정부는 외교정책의 정신 가운데 하나로 "겸손"을 강조해왔다. 그렇다면 이인영의 발언에 대해 불쾌하다는 식의 반응이 아니라 대북 제재의 효과에 대해서도 한국 정부와의 긴밀히 협의하겠다고 밝히는 것이 도리에 맞다.

역대 미국 정부들과 의회는 습관적으로 대북 제재를 강화시켜왔다. 이는 북한의 핵개발에 강력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는 '이미지'를 연출하는 데에 성공했을지는 몰라도 비핵화 진전에는 아무런 기여도 하지 못했다. 제재를 핵심 도구로 삼아왔던 미국의 역대 행정부들을 거치면서 북핵 문제는 더욱 악화되어오지 않았던가?

사정이 이렇다면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 재검토의 핵심적인 대상은 다름 아닌 제재가 되어야 한다. 제재 중독증에서 벗어나 북한의 긍정적인 조치에 맞게 제재를 하나둘씩 풀어가는 접근법이 절실한 것이다. 그래야만 바이든 행정부가 강조한 또 하나의 외교 정신인 "자신감"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제재가 옳다는 '오만'에 휩싸일수록 그건 자신감이 아니라 '자만심'의 원천이 될 것이고 이는 실패한 대북정책의 되풀이로 이어지고 말 것이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wooksi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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