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결] 유재석식 후배 사랑의 한계 / 김선기

한겨레 2021. 3. 3.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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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

문화방송 제공

김선기 |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 연구원

17번째 대상 트로피를 거머쥔 유재석의 수상소감은 특별했다. “후배들이 꿈을 꿀 수 있는 조그마한 무대가 하나 생겼으면” 하는 바람을 밝혔다. 곧이어 <놀면 뭐하니?>에서 ‘카놀라 유’라는 새로운 부캐로 출연하여, ‘예능 새 얼굴’을 찾는 프로젝트의 시작을 알렸다. <무한도전> 시작 당시 맏형 박명수의 나이가 36살에 불과했으나, 현재 같은 나이인 양세찬과 전소민이 예능에서 막내로 나온다며, 예능 출연진의 고령화를 지적하기도 했다.

첫 취업에서부터 선출직 정치인에 이르기까지 사회의 수많은 영역이 젊은이들에게 진입장벽을 높이고 있는 현실에서, 유재석의 행보에는 큰 의미가 있다. 그러나 진정성으로 세상을 구원할 수는 없을 터다. 후배를 위하는 진심에 박수를 보내야 마땅하다만, 지난달 27일 방송분까지로 마무리된 ‘2021 동거동락’은 젊은 예능인의 활약보다는 과거 ‘동거동락’의 추억을 되새기는 데 집중하는 모습으로 아쉽게 끝났다.

가장 큰 문제는 결국 후배들이 아니라 유재석이 돋보인다는 데 있다. 다섯명의 개그맨 후배(김승혜, 김해준, 신규진, 이은지, 하준수)가 ‘예능 원석’으로 출연한 1월30일 방송분의 한 장면을 보자. 이은지는 적극적으로 출연진의 박수를 유도한다. 일제히 박수를 치던 중 유재석이 끼어들어 이렇게 말한다. “이런 게 여러분들이 긴장하고 있다라는 거예요. 박수 칠 필요 없어요.” 호응을 유도하는 방송 역량으로 해석될 수도 있을 행동이 긴장감 내지는 역량 부족의 증거로 재해석되어버린다.

방송 내내 유재석은 멘토 캐릭터를 자처하며 웃음을 만들어낸다. 후배 개그맨의 행동 하나하나에 신인들은 긴장할 수밖에 없다거나, 칭찬하거나 하는 식으로 토를 단다. 틀림없이 후배들이 잘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나온 행동이다. 그러나 웃음을 만드는 과정에서, 후배들은 점차 미숙하고 부족한 이미지 쪽으로 배치된다. 시청자와 업계 관계자들이 ‘역시 유재석이고, 후배들은 아직 부족하다’라는 주관을 객관으로 인지하게 될 개연성이 크다. 무의식적으로 몸에 밴 배려의 습관이 의도와는 다르게 작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시간상으로는 과거, 구체적 인물로는 유재석이라는 사람에게 붙들려 있는 예능의 기준도 젊은 출연진에게 불리하게 작용한다. 단적으로 제작진은 신인 발굴을 위한 포맷으로 ‘스타 서바이벌 동거동락’의 리바이벌을 선택했다. ‘동거동락’이 유재석에게는 매주 새로운 예능 원석이 발굴되었던 ‘빛나는 과거’이자 검증된 형식이겠지만, 이미 20년 전의 이야기다.

에스엔에스(SNS) 100만 팔로어를 보유한 20살 이영지나 10년 이상의 자기 경력을 가진 개그맨들이 ‘신인’으로 불리며 몸에 맞지도 않는 옛날식의 버라이어티에 도전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수많은 관찰 예능은 물론 유튜브, 틱톡, 웹예능 등의 대체 플랫폼이 새로운 스타 발굴의 장이 된 지 오래다. 공채 개그맨을 위한 무대가 필요한 것은 맞지만, 그 답이 버라이어티로의 회귀라면 시대착오적이다. 심지어 막상 젊은 출연진 명단은 아이돌과 배우로 채워지고, 나이 35살의 김승혜가 ‘가장 어린 개그맨’의 자리를 채웠다.

과거에도 ‘동거동락’은 유재석을 가장 빛나게 했던 프로그램이었다. 당시 출연진 중 활발하게 예능에 여전히 출연하는 건 김원희, 김종국, 송은이 등 극소수뿐이다. ‘2021 동거동락’을 보면 20년 전과 변하지 않은 점이 눈에 띄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1972년생 유재석이 메인 엠시(MC) 자리에 있다. 주요 시청자도 여전히 지상파 티브이 콘텐츠를 가장 많이 소비하는 연령층이다. 유재석과 함께 나이를 먹은 그들은 1990년대와 2000년대를 재차 주류 콘텐츠로 소환하며 ‘싹쓰리’ 열풍을 낳기도 했다. 지상파 주말 예능 단독 엠시로 발탁된 유재석의 나이는 만 28살이었고, 당시 ‘동거동락’은 이전에 없었던 참신한 포맷이었다. 예능에서 새로운 인물과 신선한 실험을 하려면, 애초에 기준 자체를 새롭게 바꾼 프로그램 개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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