겹겹이 접힌 300여 년 된 편지, 열어보지 않고 읽었다
미국 MIT대와 영국 킹스칼리지런던 등 다국적 과학자 11명으로 구성된 연구진이 1680~1706년에 작성된 이래 수 겹으로 접히고 일부는 실로 꿰매기까지 해 한번도 개봉된 적이 없는 편지들을 3D 스캔과 X레이 미세단층촬영술을 응용해 ‘가상 개봉(virtual unfolding)’해 읽는 데 성공했다고, 2일 과학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발표했다.
이 시기엔 아직 편지 봉투가 사용되지 않았다. 편지 봉투는 1800년대 중반에 등장했다. 그래서 그 이전 사람들은 전달 과정에서 타인이 내용물을 읽지 못하게 종이접기 식으로 작성한 편지를 여러 번 접어 구멍을 내고, 편지의 귀퉁이를 길게 오려내 이 구멍으로 넣어 묵은 뒤 실로 다시 꿰매는 등 편지를 잠그는(letterlock)등 복잡한 작업을 했다.
1587년 스코틀랜드의 메리 1세 여왕이 잉글랜드에서 참수되기 전에, 자신의 과거 시동생이었던 앙리 3세 프랑스 왕에게 보낸 편지도 이런 형식을 취했다. 문제는 이렇게 작성된 편지는 수세기 동안 개봉되지 않았을 경우, 후대 사람이 편지를 풀어 여는 과정에서 접히고 봉인된 부분이 부서져 원본이 훼손되기 십상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이번에 국제 연구진이 4년에 걸친 협업 끝에, 300여간 미개봉된 채 네덜란드의 한 박물관에 소장돼 온 ‘브리엔 컬렉션(Brienne Collection)’의 편지 중 일부를 가상으로 개봉해 읽어낸 것이다. 브리엔 컬렉션은 1689~1706년에 당시 헤이그의 우체국장인 시몬 드 브리엔이 상자에 보관했던 편지들로, 모두 3148 통에 달하며 이 중 577통은 한번도 개봉되지 않았다. 당시는 우표가 발명되기 전이었다. 그래서 서신의 수신인이 사망했거나 주소지에 거주하지 않고 또 수신을 거부한 경우 브리엔 우체국장은 배달료를 수거하지 못하고 이들 편지를 보관했다.
연구진은 이 중 미개봉 4통에 대해 런던 퀸메리대학의 치(齒)연구소가 개발한 X레이 스캐너를 이용해 3D 촬영을 해 편지가 접힌 구조와 형태를 파악했다. 이후 미세 단층촬영을 하고 컴퓨터 알고리즘을 이용해 편지 내부의 접힌 각층을 드러내고, 펼쳐졌을 경우의 편지 형태를 스크린에 재연할 수 있었다.
그 결과 8겹으로 접힌 한 편지는 1697년 7월31일에 프랑스의 북부도시 릴에서 네덜란드 헤이그의 한 상인에게 보낸 것으로 “정확해야 할 필요”를 강조하며 어느 한 사람의 “사망 통보서 한 통을 보내달라”는 것이었다. 11명의 연구원 중 한 명인 MIT의 재너 댐브로지오는 월스트리트저널에 “이번 결과는 문서 보관 분야에선 꿈이 실현된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지금까지는 미개봉된 서신의 내용을 보기 위해선 종이의 일부를 잘라내거나 밀봉한 것을 제거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수백 년 된 편지가 훼손되는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역사학자들은 이들 서신은 17세기 유럽인들의 일상을 들여다볼 수 있는 무작위적인 샘플에 가장 가깝다고 평가했다. 연구진은 “브리엔 컬렉션의 다른 편지들을 가상 개봉함으로써, 초기 근대 유럽의 우편제도뿐 아니라 정치, 종교, 음악, 연극, 이주 형태 등에 대한 연구를 풍부하게 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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