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반란에 동참하자[플랫]

플랫팀 twitter.com/flatflat38 입력 2021. 3. 3. 16:11 수정 2021. 3. 3.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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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이길보라의 논픽션의 세계

‘탈시설장애인당’에 반가운 마음으로 가입했다. 탈시설장애인당은 장애인과 가난한 이들이 주축이 되어 그 누구도 배제되지 않고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창당된 정당으로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겨냥해 장애인 정책의제를 선전하는 ‘가짜정당’이자 ‘투쟁정당’이다. 이들을 보며 하라 가즈오 감독의 영화 <레이와 시대의 반란>(2019)이 떠올랐다.

정치란 모름지기 계절별 화제가 아니라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산책을 하는 것처럼 일상적이며 재밌고 신나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만든 이 영화의 상영 시간은 248분이다. 그렇다, 60에 4를 곱하면 240이다. 네 시간이 넘는 분량에 놀라 모두 도망가겠지만 잠깐 기다려! 하나도 지루하지 않고 엄청 재밌다. 보는 내내 계속해서 울고 웃고 소리 지르고 박수치게 만드는 이 영화에는 “자, 이제 쉬어가겠습니다!”하고 요란하게 외치는 인터미션, 중간 쉬는 시간도 있다.

기록영화란 “단순히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찍히는 쪽과 찍는 쪽이 어떤 상황을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작품론을 가진 감독의 이 작품은 본격 선거 다큐멘터리영화다. 인기배우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한 야마모토 다로가 2019년 7월 일본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100일 전에 창당한 반체제 진보정당 ‘레이와 신센구미’의 선거투쟁을 다룬다. 영화는 도쿄대 교수로 재직 중인, 남성으로 태어났지만 스스로를 여성으로 규정하는 야스토미 아유미의 제안으로부터 시작한다.

2021년 보궐선거를 겨냥해 장애인과 가난한 이들의 정책을 알리기 위해 만들어진 선전용 정당 ‘탈시설장애인당’ 탈시설장애인당 제공

“레이와 신센구미 정당의 비례대표 후보로 출마하는데요. 말을 도시로 데려와 선거운동을 할 예정인데 그 과정을 기록해주셨으면 합니다.”

그의 정치적 구호는 간단하다. ‘아이들이 맘껏 뛰어놀 수 있는 세상을 만들자.’ 말 그대로 말이 도시에 등장한다. 여기서 관객은 질문을 던지게 된다. 말을 왜 도시로 데려와서 굳이 동물을 힘들고 괴롭게 하지? 도시는 이런 동물이 살 수 있는 공간인가? 그럼 동물은 시골에만 있어야 하는 존재인가? 그렇다면 우리는 동물과 같은 다른 생명체와 공존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가 말을 데리고 다니며 선거운동을 할 때마다 아이들은 함께 놀고 싶어 안달하며 어쩔 줄 몰라 한다. 도시의 일상적 공간에 말과 같은 동물이 등장하고 그런 동물에 반응하는 아이들을 선거의 한복판으로 초대하는 것, 아이들과 말이 있는 공간에서 ‘정치’를 말하고 ‘선거’를 논하는 것, 투표권이 없는 사람들이 선거의 중심이 되는 것. 이것이 그가 출마를 통해 하고 싶었던 일이다.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세상을 위해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맞춰
장애인 정책의제를 선전하는 정당
반가운 마음으로 입당을 했다
정치를 해 본 적 없는 ‘소수자’가
정치적 주도권 잡기에 나서는
영화 ‘레이와 시대의 반란’이 떠올랐다



이 정당의 비례대표 후보는 하나같이 이상하고 특이하다. 루게릭병으로 전신마비 중증장애인이 된 기타리스트 후나고 야스히코, 척수 손상으로 뇌성마비가 된 중증장애인 기무라 에이코, 홈리스 출신의 비정규직 파견노동을 하고 있는 싱글맘 와타나베 데루코, 환경운동가, 납북자 가족단체 활동가, IT 기업 및 금융전문가, 세븐일레븐 본사에 맞서는 편의점 점주, 문화운동가 등 ‘정치’라고는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사회의 ‘소수자’로 분류되는 이들이 이 정당의 비례대표 후보다.

영화 <레이와 시대의 반란> 에 등장하는 비례대표 후보는 하나같이 이상하고 특이하다.‘정치’라고는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사회의 ‘소수자’로 분류되는 이들이 이 정당의 비례대표 후보다. My Theater DD 제공



당 대표 야마모토 다로는 이전 선거에서 당선되었던 자신의 지역구를 오키나와 헤노코 미군기지 건설 반대를 의제로 내건 오키나와 출신 창가학회 개혁파 노하라 요시마사 후보에게 양보하며 비례대표 3번 후보로 출마한다. 보기에도 심상치 않아 보이는, 요상하고 특이한 이들이 정치를 하겠다며 기자회견에서 출마 소회를 밝힌다.

‘정치와는 동떨어진 세계’에 살던 이들이 무대 위로 등장한다. 휠체어를 타는 비례대표 1, 2번 후보자가 무대에 서기 위해서는 휠체어를 밀 사람도, 무대와 같은 높이로 올릴 리프트 장치도 필요하다. 이들이 휠체어를 타고 무대 앞으로 등장하자 바닥에 설치되어 있던 리프트가 움직인다. 비로소 그들의 눈높이는 무대에 선 다른 이들과 같아진다. 비례대표 1번 후보 후나고 야스히코가 발언한다. 그는 기기 혹은 자원봉사자의 도움이 없이는 음성언어로 소통하기 어렵다. 자원봉사자가 일본어 철자가 적힌 판을 들고 있으면 눈동자를 움직여 글자를 하나하나 선택한다. 그렇게 문장 하나가 완성되면 자원봉사자가 대독한다. 기기를 통한 방법은 이렇다. 후나고 야스히코가 입으로 무는 힘을 통해 기기에 신호를 보내 글자를 입력하고 출력 버튼을 누르면 컴퓨터가 완성된 문장을 읽는다. 이 방식으로 그는 사고 후에도 계속해서 음악을 작곡하고 기타를 치며 뮤지션으로 활동한다.

비례대표 2번 후보 기무라 에이코는 생후 8개월 때 보행기가 넘어지는 사고를 당해 목 아래로는 움직일 수 없는 뇌성마비 중증 장애인이다. 그는 시설에서 나와 사는 것이 너무나 어렵고 힘들었다고, 그런데 왜 나의 삶이, 우리의 삶이 그래야만 하냐며 장애인의 입장에서 정치를 하겠다고 포부를 밝힌다. 그의 입 앞에는 마이크를 대신 쥐고 있는 자원봉사자의 손이 있다. 홈리스 생활을 할 때 남자친구를 만나 아이 둘을 낳았는데 정신 차려보니 싱글맘이 되어 있었다는 와타나베 데루코는 선거 출마 선언을 하던 기자회견 때는 분명히 수줍은 얼굴과 목소리였는데 본 선거가 시작되자 180도로 확 변한다. 제대로 학교를 다녀본 적 없고 변변치 않은 형편에 선거운동을 하느라 비정규직 일자리도 그만두어야 했다는 그는 수많은 카메라와 수백 명 앞에서 이렇게 외친다.

“이 고통을 권력으로 바꿉시다! 우리, 시민은 민주주의와 정치의 주인공입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기에 이 말을 외치는 것 자체가 너무나도 멋지고 대단한 일이 된다. 세븐일레븐 가맹점 노조 대표이자 점주로서 출마선언을 한 미쓰이 요시후미는 마이크를 들고 세븐일레븐 본사로 향한다. 본사의 횡포와 갑질에 대해 비례대표로서 정치참여를 통해 알리고 시정하겠다며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 같은 도전을 한다.

상영 네 시간 동안 그런 일들이 계속해서 벌어진다. ‘무한도전’ 같아 보이는 정말이지 무모한 도전을 하는 평범한 시민들, 아니 ‘비시민(非市民)’으로 평생을 살아왔던 이들이 삶과 정치의 주도권을 쥐겠다며 선언하고 행동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유쾌하고 재밌다 못해 감동적이다. 그들의 말과 선언, 공약의 내용이 너무나 옳고 당연하여, 이들이 정치를 하고자 하는 이유가 매우 적확하고 확실하여 영화를 보는 내내 울게 된다. 평소에 쥐어 본 적 없는 마이크를 떨리는 손으로 잡아내고, 자원봉사자의 손을 빌려 대신 잡고, 기술과 기기의 도움을 받아 음성언어로 변환하여 “정치를 하고 싶다”고 말해내는 순간, ‘아름다움’이라는 것이 섬광처럼 그들을 비춘다.



‘정상성’에 던지는 질문




이 영화의 묘미는 선거를 하겠다며 나선 다양한 사람들의 얼굴과 몸을 마주하는 것에 있다. 선거철만 되면 등장하는 선거 포스터를 떠올려보자. 정당의 색깔에 맞춘 바람막이 혹은 검은색 정장을 입고 깔끔한 옷차림에 신뢰감을 주는 표정으로 카메라를 바라보는 정치인의 모습, 하나같이 말끔한 ‘정상적’인 이미지들의 나열. 그러나 이 영화에서 정치를 하겠다며 나선 예비 정치인들은 ‘정상성’에 질문을 던진다.

정당의 선거운동에는 수어통역사가 화자 옆에 서서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수어로 통역하고, 말을 도시로 데려오자고 외친 후보의 선거운동에는 도로를 점거하고 있는 말과 경찰의 대치 상황이 번번이 벌어진다. 거리예술가들이 악기를 들고 노래를 부르며 행진하면 그 뒤로 유모차를 끈 부모와 아이들이 뒤따른다. 소리를 지르면서 휘젓고 다니는 아이들을 시끄럽다며 자리에 앉히지 않고 그대로 놀게 놔둔다. 이 때문에 후보자의 선거 공약을 잘 들을 수 없는 일도 일어나지만 그래도 괜찮다. 아이들은 아이들의 방식으로 선거를 접하며 정치에 참여하고 있으니까. 비례대표 1, 2번 후보의 중증장애인 동료와 친구들도 거리로 나선다. 전동휠체어와 수동휠체어를 타고 무대를 점거한다. 아주 느리고 천천히 말한다. 의사소통법은 장애 특성에 따라 각양각색이다. 한 뇌성마비 장애인은 몸의 방향을 움직이는 방식으로 소통하는데 자원봉사자가 그를 껴안고 있으면 움직이는 방향과 정도에 따라 글자를 선택한다. 일본어 철자를 읊고 있는 자원봉사자가 해당하는 일본어 철자를 읊는 순간에 몸으로 미세한 신호를 주거나 동작을 멈추는 것으로 의사 표현을 한다. 그렇게 철자 하나하나를 모아 문장을 완성한다.

몸과 몸이 안아 글자를 전달하고 받아내는 소통방식, 누군가는 느려터지고 복잡하고 불편하다고 하겠지만 그건 또 하나의 소통방식일 뿐이라는 걸, 각자의 몸과 마음, 정신에 맞는 언어(말)가 존재한다는 걸 이 영화는 담담하게 보여준다. 감독은 이렇게 말한다.

“‘말’은 유용한 도구이지만 아이디어, 감정뿐 아니라 단어 소리의 힘과 아름다움을 전달하기도 합니다. 이 영화에서는 말의 힘에 집중했습니다.”



닮은꼴의 ‘탈시설장애인당’
지금은 비록 홍보용 ‘가짜’이지만
이번 실험을 계기로 ‘진짜’가 되어
국회에 입성하는 그날을 꿈꾼다
탈시설장애인당을 ‘진짜정당’으로!




2021년 2월10일,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장애인 이동권 예산을 누락한 서울시를 규탄하며 서울 지하철 4호선 열차를 타고 내리는 투쟁 시위를 했다. 이에 서울교통공사는 “장애인단체의 시위로 인해 4호선 열차 운행이 지연되고 있다”며 그 책임을 이들에게 돌렸다. 그러나 서울시는 2017년 “2022년까지 서울 시내 모든 지하철 역사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이에 따른 예산을 책정하지 않았다.

앞서 언급한 탈시설장애인당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주축이 되어 창당한 ‘가짜정당’이며 장애인의 이동권 보장을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서울시’를 위한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장애인 정책 11대 요구안” 중 하나로 들고 있다. 이 정당의 중심은 그동안 철저히 배제되고 ‘비시민’으로 규정되었던 장애인이다. 당사자가 직접 그들이 원하는 정책을 제시하고 요구한다. 그리하여 탈시설장애인당은 존재 그 자체로 의미를 가진다.

이 정당이 가짜정당이 아니라 진짜정당이었으면 좋겠다고, 탈시설장애인당이 장애인을 위한 공약을 내걸고 국회에 들어가 장애인 중심의 세상을 만들어내기를 바란다.

영화 <레이와 시대의 반란>에 등장하는 이상하고 요상한 사람들이 끝내 표를 얻어 국회에 입성해 문턱을 없애는 공사를 하여 이동할 권리를 국회까지 확장해낸 것처럼, 탈시설장애인당도 ‘진짜정당’이 되어 국회로 입성하는 세상을 꿈꾼다. 레이와 시대의 반란처럼 탈시설장애인당의 반란 역시 가능할 것이라 믿는다. 탈시설장애인당이 당원을 모집 중이다.




이길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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