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아웅산 수치가 DJ를 존경한 이유 / 전정윤

전정윤 입력 2021. 3. 3. 15:16 수정 2021. 3. 4.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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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2013년 2월1일 오전 미얀마 민주화운동 지도자 아웅산 수치 당시 의원(현 국가고문)이 서울 마포구 동교동 김대중도서관을 방문해 주한 미얀마인들과 간담회를 마친 뒤 이희호 여사와 면담에 앞서 인사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전정윤 | 국제부장

전정윤 | 국제부장

“유엔이 행동을 취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희생자가 필요한가요?”

1988년(8888 항쟁)과 2007년(사프란 혁명)에 이어 또다시 군부와 맞서고 있는 미얀마 시민들이 국제사회를 향해 절박하게 묻고 있다.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을 직접 만날 수 없는 지금, 2010년 12월20일치 <한겨레> 기사를 다시 가져와 본다. 당시 <한겨레>는 미얀마 양곤으로 가, 가택연금에서 해제된 지 한달 된 아웅산 수치를 최초 인터뷰했다. 지금 가택연금 중인 수치 고문을 다시 인터뷰해도, 그때 그가 했던 말을 그대로 할 것 같다. “군사정권의 통치를 겪은 한국이 버마(군사정권이 국호를 미얀마로 바꾸기 전 이름) 민주화 투쟁에 대해 더 잘 이해하고 도울 수 있을 것이며, 버마 상황이 나아질 수 있도록 한국이 도움을 주었으면 한다.”

당시 수치의 인터뷰 내용 중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고인이 된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진심 어린 존경과 감사였다. “(외국에서) 우리를 지지하던 사람들도 일단 정권을 잡으면 예전 같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버마 현 정부와의 공식적인 관계를 고려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 전 대통령은 그렇지 않았다. 변함없이 우리를 지지해주었다.”

수치의 감사와 존경은 ‘빈말’이 아니었다. 김 전 대통령은 실제로 미얀마 민주화와 수치 석방을 위해 “귀감이자 영감”이 될 만한 다양한 ‘행동’을 했다. 김 전 대통령은 취임 전인 1994년 코라손 아키노 전 필리핀 대통령 등과 함께 아·태 민주지도자 회의를 창설했고, 아시아 민주주의 발전 노력의 일환으로 수치와 미얀마를 지원했다. 대통령 취임 뒤인 1999년엔 ‘자유메달’ 부상으로 받은 10만달러를 이 회의 기금으로 지원했다. 퇴임 이후인 2007년 1월에는 미얀마 민주화 캠페인에 참가하려고 미얀마 방문 비자를 신청했다가 거절당한 일도 있다. 김 전 대통령은 생전에 “한국이 독재에 시달릴 때 세계의 민주인사들이 성원을 아끼지 않았던 것처럼 이제는 우리가 도울 차례”라고 말했다. 그리고 취임 전, 임기 중, 퇴임 이후 한결같이 자신의 말을 행동으로 옮겼다.

문재인 대통령은 민주화와 인권신장에 헌신해온 인권 변호사였다. 취임 이후 수치 고문과 양곤과 부산에서 두차례 만나 각별한 우의를 다진 인연이 있다. 문 대통령은 특히 2019년 9월 미얀마를 국빈 방문해 수치 고문을 만난 자리에서 “한국은 미얀마로부터 큰 도움을 받았던 역사가 있다”며 “한국전쟁 당시 미얀마가 지원해준 5만불(달러) 규모의 쌀은 전쟁으로 고통받던 한국 국민들에게 따뜻한 마음으로 다가왔다”고 사의를 표하기도 했다.

지난달 28일 미얀마 군부의 무차별 시위 진압 이후, 한국 외교부는 곧장 대변인 명의 성명을 냈다. 외교부는 “시위대에 대한 폭력 사용을 즉각 중단할 것을 강력히 요구”하고 “국제사회와 함께 미얀마 상황을 주시하며, 우리의 향후 조치를 강구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미얀마에서 들려오는 다급한 구조신호에 비하면 ‘적극적인 행동’과 거리가 먼 ‘빈말’처럼 들렸다.

“세계 최빈국에서 세계 10위권의 경제로 성장했고, 세계 7대 수출 강국이 되었다”는 문 대통령의 3·1절 연설을 듣고 새삼 우리의 국력을 실감했다. 한국은 경제력과 케이팝, 케이방역 등 국제적 위상 향상에 자부심을 느끼다가도, ‘국제사회의 책임’ 문제 앞에서는 돌연 국내 문제도 버거운 약소국의 자리로 뒷걸음질 치곤 한다. 문 대통령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미얀마 사태의 민주적 해결을 위해 협력하기로 했지만, 아직 공개 발언을 하지 않고 있다. 문 대통령이 사태의 심각성과 우리의 위상에 걸맞은 말과 행동으로 아시아 민주주의 발전에 앞장서주길 바란다.

우선 한국도 군부가 운영하는 기업들에 대한 실질적인 제재에 나설 때다. 미얀마(군부)와 합작투자를 하는 기업 14개 중 6개가 포스코 등 한국 기업이라고 한다. 미얀마 시민들은 한국 기업이 군부와의 관계를 청산해주길 바란다. 해당 기업의 조처는 물론 한국 정부도 명확한 입장 정리가 필요해 보인다. 아울러 미얀마에 대한 무기 금수 조처와 각종 제재 등 국제사회가 미얀마 군부를 압박하기 위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조처에 한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주길 기대한다.

ggu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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