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KB증권, 라임펀드 사기 판결 나와도 '계약취소 불가' 지침 내렸다 철회

김소희 기자 2021. 3. 3.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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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증권이 지난해 금융감독원이 권고한 라임펀드 피해자 배상 관련 분쟁조정안을 수락하겠다는 입장을 대외적으로 밝혔지만, 막상 배상 절차에 착수하자 이와 상반되는 내부 문건을 만든 것으로 확인됐다.

앞서 금감원은 투자자가 KB증권으로부터 불완전판매에 대한 배상을 받더라도 추후 재판 결과에 따라 계약 취소를 추가적으로 청구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현재 검찰이 KB증권의 라임펀드 판매 사기 의혹을 수사 중이어서, 의혹이 입증되면 투자자가 계약을 무효화하고 투자금을 전액 반환받을 가능성이 생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KB증권은 불완전판매 배상을 받으면 계약 취소 청구는 불가능하다고 투자자에게 안내하라는 내부 문건을 만들었다.

일각에서는 KB증권이 박정림 KB증권 사장의 제재 수위를 결정하는 금융위원회 회의를 앞두고 투자자 구제 노력을 보여주기 위해 분쟁조정안을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받아들였지만, 물밑에서는 배상금을 줄일 방안을 강구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3일 조선비즈가 확보한 KB증권의 라임펀드 분쟁조정 관련 ‘직원용 Q&A’ 문건에 따르면, KB증권은 투자자가 불완전판매에 대한 배상을 받는 경우 추가로 계약 취소를 요구하지 못하도록 안내하라고 직원들에게 교육했다.

KB증권이 직원에게 배포한 라임펀드 자율조정 관련 투자자 응대 매뉴얼./독자 제공

이 문건은 KB증권 직원이 투자자와 배상 절차 과정에서 질문을 받는 경우 어떻게 답변할지 정리해둔 매뉴얼이다. 총 14개의 질문과 답변을 담고 있는데 문제가 되는 내용은 9번째 질의응답이었다.

매뉴얼에 따르면 KB증권 직원은 투자자가 "동의서를 작성하고 최종 정산금을 지급받은 후에도 현재 회사 임직원에 대해 진행 중인 수사 결과에 따라 회사에 판매계약 자체의 무효, 취소를 주장하거나 추가배상을 청구할 수 있냐"고 질문하면 "아니다. 동의서를 제출한 고객은 본건 펀드 판매 및 투자 등과 관련된 일체의 민형사상 청구나 이의제기 등을 할 수 없으며, 동의서 제출 및 합의금 지급에 따라 분쟁은 완전히 종결된다"라고 답변해야 한다.

이 같은 KB증권의 행동은 지난해 12월 30일 금감원이 권고했던 라임펀드 분쟁조정안과 상반된다. 앞서 금감원은 KB증권에 라임펀드 투자자에게 40~80%를 배상하되, 투자자가 사법당국의 판단에 따라 계약 무효 또는 취소를 추후에도 청구할 권한이 있다고 조정결정서에 명시했다. KB증권은 지난달 27일 금감원에 분쟁조정안을 수용하겠다고 회신했다.

금감원이 투자자의 청구권을 열어두겠다고 명시한 이유는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통상 금감원의 분쟁조정에 따른 사적 화해는 금융위원회의 설치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재판상 화해 효력을 지닌다. 하지만 이번 건은 재판 결과에 따라 계약 취소가 적용될 여지가 있어 금감원이 처음으로 단서 조항을 달았다.

금융감독원의 KB증권 라임펀드 불완전판매로 인한 손해배상책임 등을 다룬 조정결정서의 일부./독자 제공

현재 검찰에서 밝혀져야 하는 사항은 두 가지다.

우선 펀드가 판매된 2019년 1~3월 사이 펀드 자산이 이미 부실했는지 여부다. 판매 시점 이전부터 펀드가 부실한 상태였다면, 판매사는 투자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핵심 요소를 투자자에게 알리지 않은 셈이다. 이 경우 판매사가 투자자에게 착오를 불러일으킨 책임으로 계약은 무효가 된다. ‘착오에 의한 계약 취소’가 적용되는 것이다.

만약 KB증권 직원이 펀드 부실을 파악하고도 고의적으로 투자자에게 펀드를 판매했다면 ‘사기에 의한 계약 취소’가 적용될 여지가 생긴다. 현재 서울남부지검 형사6부(부장검사 김락현)는 KB증권이 라임자산운용 측에 총수익스와프(TRS)를 통해 신용을 제공하는 과정에서 펀드 부실을 파악하고도 이를 숨긴 채 펀드 판매를 지속했다는 의혹을 수사하고 있다고 알려졌다. 사기 판매의 핵심 인물로 지목된 KB증권 델타원솔루션부 A팀장은 라임 등으로부터 뒷돈을 챙겼다는 의혹도 제기되는 상황이다. KB증권은 해당 의혹을 모두 부인하고 있다.

재판 결과 해당 의혹이 입증돼서 착오·사기에 의한 계약 취소가 적용되는 경우 KB증권은 투자자에게 투자금을 전액 환불해야 한다. 계약 자체가 무효가 되기 때문이다. 앞서 신한금융투자가 판매한 라임펀드에 대해서는 착오에 의한 계약 취소로 투자자 전원에게 100% 투자금 반환 결정이 내려진 바 있다. KB증권은 신한금투와 달리 투자자들의 계약 취소 청구권을 차단하겠다는 방침이다.

KB증권은 문건에서 "합의 이후에도 소송 등 이의제기 가능성을 열어둘 경우 분쟁의 조기 종결이라는 합의의 목적에 반한다"면서 "수사를 비롯한 형사 절차는 피의자의 범죄 여부를 판단하는 절차일 뿐 계약의 무효, 취소 여부나 배상비율을 판단하는 절차가 아니어서 민사상 배상 절차와는 구분된다"고 밝혔다.

KB증권은 이번 배상이 추후 소송을 제기하지 않도록 약정하는 ‘부제소합의’를 전제하는 화해계약의 성질을 가진다고 문건에 명시했다. KB증권은 문건에 "고객의 가장 중요한 양보사항인 부제소합의가 사라지면 화해계약 자체의 효력에 영향을 줄 우려가 있다"고 적었다. 고객이 부제소합의를 전제해야 KB증권 입장에서도 화해계약에 응할 유인이 생긴다는 의미다.

KB증권

그러나 금감원과 법조계에서는 KB증권이 주장하는 부제소합의는 개별 혐의에만 적용된다고 판단했다.

서창대 금감원 분쟁조정3국 팀장은 "이번 분쟁 조정은 불완전판매만을 다루고 있으므로 부제소합의는 계약취소 건에 적용되지 않는다"면서 "투자자가 판매사와 합의하면 불완전판매에 대한 배상 비율을 두고 추가적으로 소송을 제기하지 못하겠지만, 계약 취소를 청구할 권한은 여전히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한 금융투자업계 변호사는 "민법상 계약 취소를 청구할 권리는 투자자에게 있으므로 판매사가 권리를 포기하라고 강제할 수 없다"면서 "KB증권이 투자자에게 불완전판매 배상을 유도하고 추후 계약 취소를 청구하지 못하도록 유도하려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KB증권 관계자는 "금감원이 분쟁조정 안건에 단서 조항을 단 것이 이번이 처음이라 내부에서 여러 논의가 오고 갔다"면서 "배상 합의는 결국엔 투자자와 판매사 간에 이뤄지는 것이므로 투자자의 의견을 적극 반영할 예정"이라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또 "분쟁해결을 위한 사적 화해에서는 향후 일절 이의제기하지 않도록 하는 부제소합의가 수반되는 것이 일반적"이라면서 "고객의 의견을 수렴한 결과 부제소합의 조항에 예외를 둬서 고객이 향후 무효나 취소에 관한 청구권을 행사할 길을 열어두는 쪽으로 내부 지침을 바꿨다"고 덧붙였다.

한편 KB증권은 2019년 1~3월 라임자산운용의 ‘AI 스타 1.5Y 전문투자형 사모투자신탁 1호’ ‘AI 스타 1.5Y 전문투자형 사모투자신탁 2호’ ‘AI 스타 1.5Y 전문투자형 사모투자신탁 3호 펀드’를 총 580억원 판매했다. 개인 96명(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에서 배상 완료된 3명 제외)과 법인 20개사가 이번 배상 대상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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