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만에 신간 낸 신경숙 "발등 찍은 쇠스랑 보는 심정으로 지냈다"

이기문 기자 2021. 3. 3.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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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소설 '아버지에게 갔었어' 출간으로 8년만에 복귀
소설가 신경숙 온라인 기자 간담회

“젊은 날 저도 모르게 저지른 잘못 때문에 발등에 찍힌 쇠스랑을 내려다보는 심정으로 지냈습니다. 허물과 불찰을 등에 지고 앞으로 새 작품을 써나가겠습니다.”

/창비

소설가 신경숙이 표절 논란 이후 6년 만에 침묵을 깨고 여덟 번째 장편 소설 ‘아버지에게 갔었어’(창비)를 출간하며 복귀했다. 그는 2015년 일본 작가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을 표절했다는 의혹이 일자 일주일 만에 잘못을 인정하고 외부 활동을 멈췄다. 단행본으론 8년, 장편으론 11년 만의 신작 출간이다.

3일 유튜브에서 열린 온라인 기자 간담회에서 신경숙은 목까지 덮는 검정색 스웨터를 입고 책상에 앉아 답변했다. 연필을 만지작거리기도 하고, 목이 타는 듯 중간 중간 커피와 물을 마시기도 했다. 그는 “제 작품을 따라 읽어준 독자분들을 생각하면 낭떠러지 앞에 서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가슴이 미어지기도 한다”며 “다시 한번 제 부주의함에 대해 깊이 사과를 드린다”라고 말했다.

그의 신작 소설은 6·25전쟁과 4·19혁명, 소값 폭락으로 인해 일어난 1980년대 ‘소몰이 시위’까지 현대사의 질곡을 겪어낸 아버지의 인생을 딸의 입장에서 복기하는 내용이다. 지난해 6월부터 6개월간 ‘매거진 창비’에 연재한 작품을 수정·보완했다. 2008년 출간돼 250만부의 기록적인 판매량을 올린 베스트셀러 ‘엄마를 부탁해’와 한 쌍의 소설로 보이기도 한다. 신경숙은 소설책 ‘작가의 말'에서 “‘엄마를 부탁해’를 출간한 후 많은 분에게 아버지에 대한 작품은 쓸 생각이 없느냐는 질문을 받곤 했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참 단호하게도 쓸 생각이 없다고 대답했네요”라며 “그래놓고는 십여년이 지나 이 작품을 썼으니, 누군가, 엄마 이야기를 쓰더니 이젠 아버지 이야기야? 해도 할 말이 없게 되었습니다. 다만 소설 속의 이 아버지를 잘 살펴봐 주기를 바랄 뿐입니다”고 썼다. 그는 “아버지의 심중에 들어 있는 말들을 어떤 말인지 찾아내고 싶은 작가적 욕망이 있었다”고 했다.

신경숙은 간담회에서 “독자들은 (내게) 대자연”이라고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제가 넘어진 땅을 짚고 또 일어설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저에겐 작품 쓰는 일입니다. 소설에 제가 하고 싶은 말들이 다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앞으로도 다음 말은 다음 책에 다 담겠다”고 했다.

그는 또 “(그동안) 주로 제 일상을 지키려고 애쓰면서 지냈다”며 “고장난 것을 고치는 일과 같이 바쁘다는 이유로 뒤로 물려놨던 것을 했다”고 말했다. 이어 “30년 동안 제가 써왔던 제 글에 대한 생각을 처음부터 다시 해 보기도 한 시간이기도 했다”며 “쓰는 것을 놓치지 않기 위해 새로운 작가들 작품 부지런히 찾아 읽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런 시간들이 저한테는 다시 새롭게 나갈 수 있는 그런 시간들의 디딤돌이 되어줬습니다.”

간담회는 사회를 맡은 출판사 편집자가 질문하고 신경숙이 답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말미에 사회자는 기자들의 질문을 문자로 받아 대신 물었다. 아래는 간담회 전문.

/창비

“안녕하세요, 신경숙입니다. 온라인 간담회가 처음이라서 어색하긴 한데 이렇게 새 책으로 뵙게 되었습니다. ‘아버지에게 갔었어’는 제가 36년 동안 작가 생활하면서 써낸 여덟 번째 장편소설입니다. 이 소설은 그동안 제 작품을 따라 읽어주셨던 독자 한 분 한 분께 간절하게 전해 드리는 손 편지 같은 작품이라 생각해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 단행본으론 8년, 장편소설로는 11년 만의 신작이다. 소감은?

“‘아버지에게 갔었어'라는 제목에서 이미 느끼셨겠지만, 이 작품 속 첫 문장처럼 시골에 오래된 집에 엄마가 병 치료를 위해 떠나면서 오래된 집에 혼자 남게 된 아버지를 돌보러 가는 딸의 시선으로 쓰인 작품입니다. 오랜만에 집에 가서 아버지를 지켜보면서 아버지를 재발견하는 소설입니다. 어린 시절 전쟁을 겪은 아버지, 현대사 속 고통받은 아버지. 가족으로서의 아버지, 개인적인 사연 가진 아버지, 자식을 생각하는 아버지. 그런 모습들을 썼는데요. 이 세상에 그 익명성, 그러니까 아무 이름 없이 한 세상을 살다 가는, 또 살고 있는 아버지들에게 바치는 신경숙의 서사시? 헌사? 이렇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신작 접하게 될 독자에게 한 말씀 부탁한다.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이 작품은 독자 한분 한분에게 편지를 쓰는 그런 감정을 가지고 제가 썼던 작품입니다. 젊은 날의 제가 저도 모르게 저지른 잘못.때문에 저 자신도 제 발등에 찍힌 쇠스랑을 내려다보는 심정으로 지냈습니다. 그동안에 쭉 제 작품을 따라 읽어준 독자분들을 생각하면 낭떠러지 앞에 서 있는것 같기도 하고, 가슴이 미어지기도 했습니다. 다시 한번 제 부주의함에 대해 깊이 사과를 드립니다. 과거의 제 허물과 불찰을 등에 지고 앞으로도 새 작품을 써 가겠습니다. 제가 작가이니까 작품을 쓰는 일로 나올 수밖에 없다는 걸 말씀드리고요. 저한테 독자분들은 제가 태어난, 이 작품 속에서 나오는 ‘J시’와 같은, 대자연과 같은 그런 의미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제가 넘어진 그런 땅을 짚고 제가 또 일어설 수밖에 없는. 그것이 저한테는 작품 쓰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에게 갔었어’에서 제가 하고 싶은 말들이 다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다음 말은 다음 책에 다 담겠습니다. 기다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

“주로 제 일상을 지키려고 애쓰면서 지냈습니다. 그동안에 바쁘다는 이유로 제가 하지 못했던 것. 다 뒤로 물려놨던 것. 예를 들면 고장 난 것을 고치는 일로 보내기도 했습니다. 30년 동안 제가 써왔던 제 글에 대한 생각을 처음부터 다시 해보기도 한 시간이기도 합니다. 혼자 있었지만 저한텐 문학과 가장 깊이, 문학 속에 있었던 그런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쓰는 것을 놓치지 않기 위해 새로운 작가들 작품을 부지런히 찾아 읽기도 했습니다. 그런 시간들이 어떻게 들으실지 모르겠지만, 저한테는 다시 새롭게 나갈수 있는 그런 시간들의 디딤돌이 되어줬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지냈습니다.”

- 2008년 출간한 ‘엄마를 부탁해’는 올해 국내에서만 총 250만부가 팔렸다. 현재 해외 41개국에 수출됐다. 지난 2018년엔 미국 제작사에 드라마 판권으로 판매되기도 했다. 한국 문학작품이 드라마 제작용으로 수출된 건 최초의 일이었다. 이번 신작 작품도 해외에서 많은 관심 가질 것 같다.

“’엄마를 부탁해'는 제가 작품 쓰면서 생각할 수도 없는, 진짜 머나먼 곳까지 퍼져 나간 작품이었습니다. 참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많은 나라가 계약 기간이 지나 재계약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영국 출판사 등은 현대 독자를 위한 클래식 시리즈 속에서 다시 출간하겠다고 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드라마로 되는 경우는 좀 오랜 소식이 끊겨 있었는데, 올해 들어오면서 좋은 소식들이 들리고 있습니다. 할리우드에서 좋은 시나리오 작가가 작업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한국과 협업 속에서 곧 이뤄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한국 콘텐츠에 대한 관심 높아지고 있다. 엄마를 부탁해 드라마가 나오게 되면 한국 콘텐츠 반향이나 반응 커질 듯하다.

“제가 ‘아버지에게 갔었어’란 작품을 오랜만에 출간하니까 에이전트 쪽에서도 관심을 많이 보여줬습니다. 이 책이 한국에서 출간되기 전에 샘플과 시놉시스를 만들었다. 그들이 일을 하고 있으니까. 좋은 결과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 기억에 남는 외국 독자들의 반응은?

“많은 일들을 다 잊어버렸어요. 한번은 미네소타에 가서 낭독회 한 적이 있었는데 나이가 드신, 지금 이 ‘아버지에 갔었어’에 나오는 그런 연세 드신 분이 세 시간 반쯤 운전하고 오셔서 저한테 그러시더라고요. 자기도 작품 속에 아버지처럼 항상 엄마보다 빨리 걸음을 걸었던 사람이다. 이 작품을 읽고 보조를 맞춰야겠다, 그런 생각을 했다. 북클럽 회원들에게 주려고 책을 구했다고 하시면서 그 두꺼운 책을 열 몇권을 제 앞에 내놓고 한 사람 한 사람 사인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다시 몇 시간 운전해서 돌아가셔야 한다고 그러시더라고요.”

- 이번 작품 간단히 소개해달라.

“이 작품은 총 5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1장은 앞에서 잠깐 말씀드렸듯이 화자가 J시라는 곳으로 혼자 남은 아버지를 돌보러 가는 장면이고요. 거기에서 이렇게 우는 아버지, 울고 있는 아버지를 마주치면서 굉장히 당황하는 게 1장의 내용입니다. 2장은 그 아버지 어린 시절. 전염병으로 양친 잃고 혼자 남은 아버지가 지내는 시간들. 전쟁을 치러내는 동안에 아버지가 겪는 일들이 2장을 차지하고 있고. 3장은 오랫동안 소를 기르던 빈 우사에 우연히 딸이 갔다가 나무 궤짝을 발견하는데, 그 안에서 아주 오래전 젊은 아버지가 자기 큰아들하고, 리비아로 파견 근무 나간 큰아들하고 주고받았던 편지를 화자가 발견해서 거기서 읽는 그런 장입니다. 저는 4장을 쓸 때 정말 이 아버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저도 알고 싶었습니다. 또 이 아버지란 존재가 우리에게 어떤 일들을 했는지. 그런 걸 발화시키는 장으로 생각해서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는. 그러니까 화자가 아니고 화자가 취재 형식으로 아버지 이야기를 아버지와 연결된 다른 사람들에게 듣는 그런 방식을 썼습니다.

가장 중요한 대목이라 생각하는데, 아버지와 함께 전쟁을 겪었던 박무릉씨라는 친구가 있습니다. 서로 전쟁 치르면서 서로 구하지 못했다는 자책 때문에 아주 오랫동안 만나지 않다가 다시 만나서 평생 친구가 되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중요한 건 아버지의 손자도 할 수 있겠죠? 그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여러 겹의 아버지 목소리를 찾아내고 싶었어요. 오래된 아버지에서부터 지금 현재, 막 태어난 어린애의 아버지가 된 아버지의 모습들. 그런 모습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지금 어떤 시간이 필요한지. 그런걸 좀 찾아 보고 싶었고요. 5장은 제가 작가의 말을 쓸 때 밝힌 이야기이기도 한데, 제가 가장 나중에까지 가지고 있다가 소제목을 수정했습니다. 어떤 한 생, 한 시대가 지나간 다음에도 어떤 파란 잎이 돋아나는 그런 장면을 쓰고 싶었고요. 무엇보다 이 아버지가 자기 생을 정리하는 여러 모습이 나오는데 그것을 이 딸에게 얘기한다는 것. 그것을 저는 좀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썼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딸은 한사코 왜 이걸 나에게 말씀하시나요? 라고 하지만, 아버지가 짤막짤막하게 하는 그런 말들. 자기의 말을 잘 들어주고 같은 건 너뿐이라고 얘기합니다다. 진심은 자기 곁에 있으니까, 또 어떤 부분은 같은 동성이 아니니까 그랬을 겁니다. 아버지가 (동성에겐) 할 수 없는 이야기가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그래서 딸에게 가슴 속에 잠겨 있는, 어떤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게 하는 그런 장으로 만들었습니다. 너무 길게 설명을 했나요?”

- 아버지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써보겠다고 결심한 계기?

“우리 가족들이 시골에 부모님이 계시고 형제도 많고 하니까 일주일에 한 번씩 돌아가면서 부모님을 뵈러 갑니다. 가족메신저에 이야기를 쓰곤 하는데. 이상하게 엄마에 대한 이야기는 굉장히 많이 쓰는데. 아빠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말하는 게 서툴다는 걸 느꼈어요. 저도 그렇고요. 이 아버지들이, 특히 이름 없이 자기 자리를 지키고 사신 분들은, 더구나 대한민국 힘든 현대사 통과한 아버지들은 ‘내가 한 일이 없다’라고 생각한다는 걸 느꼈습니다. 그래서 비교적 말을 안 하는 것인고, 어떤 시간을 통과하는 분들이라는 걸 깨달았고요. 아버지의 심중에 들어 있는 말들이 어떤 말인지 찾아내고 싶은 작가적 욕망도 있었습니다. 일전에 어쩌다가 베를린에 있게 됐는데, 동행인 안내로 유대 박물관에 가게 됐어요. 거기에서 아주 맨 마지막에 낙엽이라는 작품을 보게 됐는데, 그 작품이 쇠로 된 얼굴을 2만개쯤 바닥에 깔아놓고 그 길을 걸어가는 것이었습니다. 그 작품을 체험하는 일이었는데, 저는 처음에는 큰 생각 없이 그 쇠 얼굴에 발을 디뎠는데 쩌그럭 하는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그 소리를 들으면서 끝까지 갔다 오니까 그게 다 비명소리가 들렸고, 집에 계신 아버지 생각이 났어요. 격변의 시대 겪으면서 아버지의 고통들. 그런 소리 듣는 것 같은 느낌 들었습니다. 그래서 집에 돌아가면, 그때는 제가 떠돌아다니고 있었을 때니까. 집에 돌아가면, 그리고 내 책상에 앉게 되면 아버지 이야기를 써봐야 되겠다 생각했습니다. 그게 계기가 되었습니다.”

- 독자들이 아버지를 어떻게 읽어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나?

“이 아버지 속에는 제가 생각하는 개인적인 아버지 모습도 들어 있고 합니다. 쓰면서 생각한 건데 이 아버지는 참 현대적인 아버지였구나 싶었습니다. 물론 아무것도 가진 게 없어서 가난하고 항상 뭔가 안정적이지 않은 상태로 살았지만, 이 아버지가 가족에게 보여주는 모든 그 삶의 방법들? 이런 것들이 기존에 봤던 작품 속에서 아버지의 모습은 아닐 거예요. 다정하고 외롭고 그런 아버지죠. 자기 식대로의 자기 원칙이 있는 아버지? 항상 자기가 뿌린 것 외에는 더 다른 것을 바라지 않고, 또 자기는 학교 문전에도 가지 못했으면서 자식들은 대학교육시키는데 일생을 걸고. 뭔가 빚을 지지 않으려고 하고 진 빚은 꼭 갚으려고 하고. 그런 원칙들에 대해 가만히 들여다보게 되었습니다. 이 아버지가 정말 지금에 어떤 아버지 모습대로, 아버지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는 걸 저도 쓰면서 깨달았습니다. 그런 아버지가 제 아버지의 모습이기도 하다는 뒤늦은 깨달음도 있었고요. 아버지 심중에 가앉아있는 침묵의 말들, 고통의 말들, 하고 싶었으나 늘 말할 것 없다, 란 말에 응축시켜놨던 그 아버지 말들을. 정말 저로서는 가장 가까이에서 귀 기울여 들으려 노력을 했습니다.”

- 화자가 J시 돌아가면서 이야기 시작되는데. 화자인 나에게 J시로의 귀환은 어떤 의미가 있나?

“표면적으론 혼자 남은 아픈 아버지를 돌보러 가는 형식을 띠고 있지만, 소설의 배경이 되는 J시는 사실 실제로 살아오면서 큰 상실의 고통을 겪은 화자에게도 아주 중요한 공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닳아지고 뭔가 사라지고. 자기 마음 안에서 고갈되어가고 있는. 그런 어떤 것이 회복되는 공간으로서 J시로 돌아가는 모습을 취하고 있습니다. 사실 J시로 돌아가서 이 딸이 아버지를 돌보는 것인가, J시와 아버지가 딸을 돌보는 것인지 그 경계가 모호한 부분도 있죠. 그리고 화자로서 뼈저리게 아픈 순간을 받아들이는 공간으로서도 J시가 상징되고 있고요. 그렇지만 이 J시는 곧 사라질 운명에 있지만, 아버지도 한 생을 다 살고 소멸할 상황에 있지만, 그 끝난 것 같이 보이는 그 자리에서도 뭔가 다시 회복되고 있다는 것. 그 이야기를 전해주는 공간으로서의 J시입니다.”

- 소설 속 가장 애착 갔던 인물은?

“아버지 이야기를 쓰려고 하는데 계속 소설 속에 나오는 장남, 큰 오빠 이야기가 계속 이끌려 나옵니다. 나는 아버지 이야기를 쓰려고 하는데 왜 이러는 걸까. 이런 생각 많이 하게 됐는데 어느 순간, 아버지와 장남의 이야기가 다른 이야기가 아니다. 같은 아버지 이야기다. 라는 그런 느낌이 왔고요. 그래서 이 아버지도 물론 태어나면서 장남은 아니었지만, 전염병으로 위에 세 형을 잃고 장남이 된 존재로서, 어떻게 생각하면 더 큰 무리를 지니게 된 장남이기도 하구나. 아버지 아들로 성장하는 장남은 아버지와 함께 기대에 저버리지 않으려고, 그리고 뭔지 좀 약해 보이는 아버지와 함께 형제들 속에서 장남 역할을 하기 위해 부단히 애쓴 시절을 겪어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중에는 구분을 하지 않았어요. 이 가족들의 어떤, 가족 중에서 아버지가 되어가는 여러 모습을 제가 그렸습니다. 가장 애착이 가는 인물은 글쎄요. 고목나무처럼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 아버지와, 또 이제 막 아이가 태어난 그런 순간을 겪으며 막 아버지가 된 소설 속의 조카. 이 두 아버지에게 우선 애착이 많이 갑니다. 이 생을 다 살아낸 아버지의 좋은 점들. 그런 점들을 이 어린 아버지가 잘 이어받았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도 있고요.”

- (표절 논란 이후) 그동안 글쓰기에 대한 생각 어떻게 바뀌었는지?

“제 심중의 말을 정확히 다 표현해 낼 수 있으면 참 좋을 텐데. 그게 말로 다 할 수 없으니까 글을 쓰는 일을 하고 있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 아무리 말로 다 하려고 해도 남아있는 것. 그래서 언어로 그냥 끝까지 그 말이 무엇인지,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천착하고 있다는 느낌도 듭니다. 이 소설 속에서 박무릉씨라는 존재는 아버지가 돌보는 친구이기도 하고 인생 중요한 대목에 늘 서로한테 상처를 줫지만 결국은 서로를 보호하면서 서로 상승시키는 그런 역할을 합니다. 박무릉씨와 아버지 관계를 쓰는 동안 저도 느꼈는데. 박무릉씨가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새로 무엇인가를 시작할 수 없어도 사람은 살아가야 한다.’ 그런 뉘앙스의 말을 하는데, 그 말은 저한테 한 말이기도 했습니다. 문학이라는 게 제 삶에 어떤 알리바이 같은 것이어서. 그게 하고 안 하고 할 수 있는 그런 일이 아닙니다. 저는 뭐 이전보다 더 좋은 작품을 써야 한다, 그렇게 저 자신도 옭아매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계속 쓸 것입니다. 10년 후에 누군가 ‘너는 무얼 했느냐?’ 하면 ‘글을 썼다’ 대답하는 사람이 될 것이고, 20년 후에 ‘너는 무얼 했느냐’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글을 썼다’ 대답하는 그런 사람이 되려고 합니다. 그것이 제 마음입니다.”

- 소설의 화자는 딸의 죽음이란 비극을 겪고 나서야 아버지를 이해한다. 이런 상실의 경험은 화자에게 어떤 영향 끼쳤을까?

“이 작품 말미에 딸과 아버지가 함께 오래된 마을을 산보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때 그 마을에서 돌아와서 두 계절을 지나면서도 보지 못했던 풍경이 펼쳐집니다. 어린 시절에 논에 쓰러져 있던, 고목이 있었는데. 정월 대보름에 사람들이 줄다리기하던, 줄을 묶어 놓고 마음의 기원입니다. 1년 소망을 빌었던 그런 나무가 완전히 쓰러져서 죽어 있는데, 그냥 쓰러져 죽어 있는 모습만 보다가, 그날 아버지하고 산책하면서 보니까 물가에 쓰러져 있는 거 같은데 새순이 돋아나고 있고 살아있다는 걸 깨닫는 장면이 나옵니다. 죽음과 어떤 새로 돋아나는 것과 한순간에 같이 있다는 것. 그걸 알게 되는 장면입니다. 그것으로 제 대답을 하고 싶은 마음으로 썼습니다. 사람은 그런거 같습니다. 자기 자신의 어떤 깊은 내상을 통해서 다른 사람의 또 다른 존재에 더 가까이 가게 되고, 그를 알게 되는. 그렇게 서로 연결되어 있는 지점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 독자에게 전하는 인사로 사과의 뜻을 이미 말씀해주시긴 했지만, 2015년 이슈 이후로 공식적으로 처음 이런 자리에 나서신 만큼 한 번 더 심경을 이야기해달라.

“앞에 제가 말씀드렸던 것과 같은 마음입니다. 제 마음을 어떻게 하면 전달시켜 드릴 수 있을까. 제가 그동안 지내면서 하루하루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제가 어떤 말씀을 드린다고 해도. 저는 작가니까, 제가 쓸 수 있는 작품을 계속 쓰면서, 제가 독자분들께 드렸던 어떤 실망에 대한 모색을 해나가도록 하겠습니다.”

- 작가의 말에 ‘이제는 다른 이야기로 건너가고 싶다’고 썼다. 차기작 계획은?

“15년쯤 된 모양입니다. 계속 다음 작품으로 어떤 작품을 쓰게 될 것이냐?는 질문을 들으면 ‘어느 날 갑자기 앞을 못 보게 된 사람 이야기를 쓸 것이다’고 대답했어요. 실제로 그럴 생각이었고. ‘아버지에게 갔었어’란 작품을 쓰면서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노동자의 하루와 그에 얽힌 죽음의 문제를 다음 작품으로 쓰려고 합니다. 이 작품에 대해 여러 제 생각이 있지만 아직 작품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말을 아껴두겠습니다. 제가 작품을 잘 완성할 수 있도록 저도 준비를 많이 할 것이고, 도움도 많이 받고 싶고 그렇습니다.”

- 소설 속 화자가 딸을 잃은 것과, 작가의 2015년 이슈가 연관이 있는지.

“여기 작품 속에 나오는 (화자의) 딸의 죽음은 인간의 힘으로 어떻게 대비할 수 없는 깊은 상실을 뜻하고 있습니다. 어떤 기습이라고 하겠죠. 그걸 뜻하고 있고 누구나 어떤 시간에,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에 예기치 않게 닥친 불행. 그걸 어떻게 극복했느냐 하는 문제를 담고 있기도 합니다. 읽는 사람에 따라서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되겠지만. 저로서는 인간의 힘으로 어떻게 대비해 볼 수 없는 깊은 상실을 상징하는, 그런 딸의 죽음이었습니다.”

- 2015년 이후로 글쓰기 과정이 변화가 있었는가?

“아까 말씀드렸듯이 아무리 생각해봐도 문학은 제가 살아가는 인생의 알리바이 같은 것이기 때문에. 이걸 계속 하겠다는 것. 난 계속할 수밖에 없다는 것. 그런 마음이 제 마음이라는 것. 그런 의미로 말씀했던 것을 받아들여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아버지’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부연한다면?

“보통 우리가 아버지, 특히 한국사에서 아버지라고 했을 때 특히 문학 속에서는 더더욱 어떤 가부장적이고 어떤 상황에서는 폭력적이기도 한 모습이 많이 나타나있죠. 저는 이 소설 속에서는 그 아버지의 내밀한 부분들에 집중했습니다. 우리가 미처 아버지라고만 생각하기 때문에 듣지 못하고 놓쳤던 내면들. 그런 내면들을 다시 한번 저 자신이 제 아버지를 깊게 들여다보는 그런 마음으로 썼던 작품입니다. 그 시간이 너무 도저해서 그걸 다 듣고 다 써내기는, 그걸 내가 다 성찰해내기는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우두망찰하게 하는 그런 시간이 많았었어요. 그럴 만큼 하나의 아버지로 묶을 수 없는 개별자 하나하나의 존재론적인 시각으로 접근해 볼 필요가 있다는 느낌의 말이었습니다.”

- 마지막 인사를 해달라.

“귀한 시간 함께해주셔서 감사하고요. 오랜만에 서로 눈을 들여다보면서 얘기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시절이 그걸 가로막네요. 저는 새 작품을 쓰고 새 작품을 쓰고 할 것이기에 다른 기회가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독자분들께 제 안타깝고 그리운 마음을 전합니다. 독자분들은 저한테, 앞에도 얘기했듯이 저한테는 대자연같은 의미라는 말씀을 드립니다. 또 어느 서점에서 또 다른 곳에서 ‘아버지에게 갔었어’를 만나면, 그 안에 제가 그동안 독자분들과 나누고 싶은 그런 말이라고 여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좀 더 인내심이 필요한 시간 같은데. 이 어려운 시간들 서로 잘 극복해서 자기 자신이 어떤 새로운 지점에 가닿는 그런 시간들로 만들었으면 하는 그런 마음도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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