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텔라데이지 침몰 4년..이등항해사 노모 또 청와대 앞에 섰다

이윤식 2021. 3. 3.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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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자 허재용의 가족 이영문 씨
1년째 靑앞 피켓시위.."예비비 집행해 2차수색해야"
2019년 유해추정 물체 발견했지만 계약문제로 수습 못해
100억원 예산이 문제..정부 "원칙적 민간선사 책임"
지난 1일 '스텔라데이지호' 실종자 가족 이영문 씨가 서울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심해수색을 요구하는 피켓시위를 하고 있다. 이씨는 2017년 실종된 허재용 이등항해사의 어머니다. [이윤식 기자]
"아들 시신이라도 찾아 장례 치뤄줘야지, 그렇지 않고서 어떻게 편하게 눈 감고 죽겠어요"

삼일절이었던 지난 1일 오후, 서울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만난 이영문(73)씨는 주황색 방한복을 입고 홀로 피켓시위를 하고 있었다. 강한 비가 내린 추운 날이었다. 지난해부터 한 주에 평일 5일, 매일 두 시간씩 이곳에서 피켓을 들고 있다는 노모(老母)에게선 추위나 고단함보다는 사고 4주기를 앞두고도 아들을 찾지 못한 미안함이 느껴졌다.

당시 이곳에서 열린 '의사표명 행동'은 이씨의 1인시위와 '국민특검단'의 기자회견 딱 두 건이었다. 언론의 카메라는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고문으로 있는 국민특검단의 문재인 대통령 규탄 발언에 모아졌지만, 이씨는 묵묵히 피켓을 들고 있었다.

이씨의 아들 허재용 씨(실종 당시 33세)는 화물선 스텔라데이지호의 이등 항해사였다. 2017년 3월 브라질에서 철광석을 싣고 출발해 중국으로 항해하던 배는 남대서양에서 침몰했다. 전체 22명, 한국인 실종자 8명에 허씨도 포함됐다. 오는 31일로 침몰 4주기를 맞지만 현재 정부의 추가 수색 계획이 없어 유해 수습은 요원한 상황이다.

이씨는 2017년 사고 직후 강원도 춘천에서 서울로 올라왔다. 첫째 딸 집에 머무르며 심해수색을 요구하는 서명을 받기 시작했다. 이렇게 오랜 여정이 되리라 생각지 못했지만 어느새 4년이 흘렀다.

아예 성과가 없던 것은 아니다. 정부는 지난 2019년 2월 48억4000만원을 들여 1차 심해수색을 실시했다. 당시 수색업체는 스텔라데이지호 선체 파편물 주변에서 선원 유해일 가능성이 있는 유해 등을 발견했다. 그러나 정부와 업체와의 계약 문제로 이를 수습하지 못했다.

이씨를 포함한 실종자 가족들은 이후 2차 수색을 요구해왔지만 정부는 추가 예산 편성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지난해에도 국회에서 올해 예산 100억원 규모의 스텔라데이지호 2차 심해수색 사업을 넣는 방안이 논의됐지만 정부 측의 반대로 좌절됐다. 기획재정부는 "(해당 사건은)원칙적으로 민간 선사 책임이고, 정부 차원에서는 1차 예비비를 지원했다"는 입장이다.

반면 실종자 가족들은 "국가가 먼저 심해수색을 집행한 후 나중에 선사에 구상권을 청구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실종자 허씨의 둘째 누나인 허경주 스텔라데이지호 가족대책위원회 공동대표(43)는 "예비비를 통해 2차심해수색을 실시해 침몰 원인을 밝히고, 1차수색 때 발견된 유해를 수습해야 한다"고 했다. 가족들은 1차수색 결과를 토대로 조타실 안에 11명의 유해가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김제남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이 청와대 앞 분수대를 찾았을 때 이같은 요구사항을 전달했지만 아직 답변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스텔라데이지호 사건은 해양사고라는 점에서 같은 세월호 사건과 대비된다. 세월호 수습을 위해 '4·16세월호참사 피해구제 및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이 제정됐고, 이 법은 선체 인양과 미수습자 수습 비용에 대한 구상권을 규정했다.

또 세월호 유가족들과 달리 스텔라데이지 실종자 가족들은 각자의 사정으로 뿔뿔히 흩어진 상태다. 한국인 실종자 여덟 가족 중 네 가족은 사고 한달여만에 회사 측과 합의를 마쳤다고 한다. 허씨 측 가족을 포함한 네 가족이 피켓 시위 등을 이어왔는데 정치적 성향과 건강 문제 등으로 인해 현재는 허씨 측 가족만 실질적으로 시위를 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스텔라데이지호 대책위원회를 중심으로 심해수색 추진 등 진상규명을 위한 논의가 시민단체 연대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다. 초기 3년간 광화문광장에서 활동할 수 있었던 것도 세월호 유가족들이 '아빠방'이란 공간을 공유해줘서다. 이씨는 "지난달까지 청와대 앞에 세월호 가족들이 있었을 때 한편으론 힘이 됐다"고 말했다.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는 문재인 대통령의 세월호 진상규명 의지 표명을 요구하며 89일간 노숙농성을 하다가 지난달 1일 철수했다. 스텔라데이지호 침몰 4주기를 맞는 오는 31일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는 2차 심해수색을 위한 예비비 집행을 촉구하는 기자회견과 기도회가 열릴 예정이다.

이번 인터뷰는 1일에 이어 2일까지 두 차례에 걸쳐 이뤄졌다. 두번째 인터뷰를 마칠 즈음 이씨는 주황색, 노랑색 리본과 주황색 손목 밴드 꾸러미를 건넸다. 이씨는 "구명보트의 색을 딴 주황색"이라며 "노란색은 기다림이라는 의미와 세월호와의 연대를 뜻한다"고 했다.

[이윤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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