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헌의 체인지] 윤석열 총장, 수사청 '강력 반대' 셈법의 본질은

김병헌 입력 2021. 3. 3.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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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검찰총장이 1일 오전 경기도 과천 정부과천청사에서 박범계 신임 법무부 장관을 예방하기 전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과천=이선화 기자

국민을 보고 가는 거라면 '중강부중'부터 생각해야

[더팩트ㅣ김병헌 기자] 중대범죄수사청(수사청) 신설으로 ‘수사와 기소의 완전분리’를 이루려는 여당의 속도전 전조가 화를 부르고 있다. 민주당 검찰개혁특별위원회가 이르면 이번 주 수사청 설치 법안을 발의하겠다고 나서면서 사달이 벌어졌다.

검·경 수사권 조정에 따라 검찰에 남게 된 6대 범죄 수사(부패, 경제, 공직자, 선거, 방위사업, 대형 참사)마저 별도의 수사기관. 즉 수사청으로 이관하는 내용의 법안이다. 여당이 발의한 법안이 통과된다면 검찰의 수사권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윤석열 검찰총장 등 검찰의 반발은 당연한 수순이다.

대검은 3일까지 일선 검찰청의 의견을 취합한다고 한다. 검찰 내에서 반발 기류는 이미 임계점을 넘었다. 수사권까지 잃는다면 조직 해체나 다름없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검찰 내부망에는 현직 검사들의 글이 잇따르고 있다. 이번 주 내에 검찰의 공식 입장이 나올 듯 싶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1일과 2일에 걸쳐 복수의 언론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수사청 신설법(안)에 크게 반발했다. "지금 추진되는 입법은 검찰 해체","민주주의라는 허울을 쓰고 법치를 말살하는 것", "헌법 정신을 파괴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힘없는 약자와 서민만 피해를 보게 된다"고도 강조했다.

검찰 공식 발언이 아닌 개인의 소신 발언이지만 강도가 예사롭지 않다. 하지만 여당이나 법무부를 우회적으로 겨냥해 대국민 여론 환기용의 성격이 강해 보인다. 이른바 ‘공중전’이다. ‘지상전’이 아닌 ‘공중전’을 택한 이면에는 검찰 존립의 위기감이 내재되어 있다는 지적이다.

한 언론에게는 "검사의 수사·기소권을 통합한 반부패수사청·금융수사청·안보수사청을 만들어 중대 범죄 수사 역량을 유지·강화하자"며 검찰의 직접수사권 폐지를 전제로 추진하는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에 대해 역 제안까지 했다고 한다.

"직(職)을 걸어 막을 수 있는 일이라면 100번이라도 걸겠다" "검찰총장으로서 올바른 여론의 형성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국민들께서 관심을 갖고 지켜봐 주시기를 부탁드린다", 등의 화법도 종전과는 괘를 다소 달리한다. 상대는 국민이다

대검은 중대범죄수사처 설치 등에 대한 검사들의 의견을 모아달라며 지난달 25일 일선 검찰청에 공문을 보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법무부에 의견조회를 요청한 데 따른 것이다. /이덕인 기자

법조계 일각에서는 "오는 7월 퇴임을 앞둔 윤 총장 개인으로서 더는 잃을 게 없다는 현실적인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며 "여권 내 수사청 신설 '속도전'이 윤 총장 등판에 명분을 준 측면도 있다"고 분석했다. 검찰의 내부 반발은 갈수록 거세지는데 딱히 효과적인 대응 방안이 없는 점도 작용한 듯하다는 지적이다.

작심한 듯한 윤 총장의 반발과 별개로 여당은 갑자기 속도를 조절하는 쪽으로 기류를 바꾸고 있다. 검찰의 반발은 "예상했던 반응"이라며 대응도 하지 않겠다는 분위기지만 속내는 그렇지 않아 보인다.

사법체계 변화와 관련해 당 내부와 외부 전문가 등의 의견 수렴이 더 필요하다는 주장이 적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지난 1월부터 시행된 검경 수사권 조정안의 안착을 강조한 문재인 대통령의 당부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다음 달 초 서울 부산 시장 보궐 선거 와 민생 이슈를 관리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점에서 다시 대립각을 세울 필요가 없다는 정무적 판단도 고려된 것으로 여겨진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우리 당도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는 강경론이 쏟아지지만 구체적 행동은 보이지 않는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민주당 극성 의원들이 검찰을 사실상 폐지·무력화하는 수사청을 만든다고 난리를 치고 있다"며 날을 세웠다.

윤 총장은 인사청문회때 '장기적'이라는 전제 하에 수사-기소 분리 방안에 동의를 표명한 것은 사실이다. 윤 총장이 동의한 방안은 경찰 수사의 적법절차 준수와 관련한 검찰의 통제권은 유지하는 내용이기에 현재 여당 법안 내용과 상당한 거리가 있다.

여권과 검찰 및 야당의 입장이 어떻든 문제는 여론이다. 국민들은 아직 별 말이 없다.지켜볼 뿐이다. 오마이뉴스가 2일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얼미터에 의뢰해 전국 만 18세 이상 500명(총 통화 8800명, 응답률 5.7%)을 대상으로 검찰의 직접 수사권 폐지에 대한 찬반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반대가 49.7%, 찬성이 41.2%였다. ‘잘 모르겠다’는 9.2%였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국회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실에서 회동을 마친 뒤 인사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김영진 더불어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 주호영 국민의 원내대표,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김성원 국민의힘 원내수석부대표. /이새롬 기자

찬반의 격차가 8.5%p로 오차범위(95% 신뢰 수준에 ±4.4%p) 안이다. 이가운데 "매우 반대" 의견이 35.8%였고 "어느 정도 반대"는 13.9%였다.반면 "매우 찬성"은 27.0%, "어느 정도 찬성"은 14.2%였다. 찬성보다 반대의 강도가 더 강한 모양새다.

국민들은 수사와 기소의 분리가 검찰개혁의 핵심이라고 해도 그 내용은 물론 취지도 정확히 알기 쉽지 않다. 생경하다는 표현이 적절할지도 모른다. 진영논리에 매몰되는 국민적 갈등만 불러올 가능성이 높다.

가벼운 사안은 아니다. 검찰 조직뿐 아니라 형사사법체계를 흔들 수 있는 일을 사회적 논의도 없이 추진해서야 되겠는가? 대의민주주의라고 해도 절대 다수 의석이 국민의 절대 다수의 의견이라고 판단하면 안 된다. 여론조사가 잘 말해준다. 윤 총장도 국민들의 여론에 기대하는 듯 보인다,

페문조차(閉門造車)라는 성어가 있다. 문을 잠그고 수레를 만든다는 뜻이다. 실제를 고려하지 않거나 남의 경험을 받아들이지 않는 독단적인 행동을 일컫는다. 송(宋)나라 때 주자학의 창시자 주희(朱憙)가 편찬한 중용혹문(中庸或門)에 나온다.

지금 여권이든 검찰이든 주장하는 바는 그들의 입장을 감안하면 틀린 애기가 아니다. 하지만 서로 상대방의 애기에 귀 기울이지 않는 게 문제다. 방법론이 다를 뿐이지, 해답은 분명히 있다고 본다.

주역(周易)에 중강부중(重剛不中)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강함이 겹쳐 있으면서 중도를 얻지 못하며, 위로는 하늘에 있지 않고 아래로는 밭에 있지 않고 가운데로는 사람에 있지 않다’는 뜻이다.

서로 옳음을 주장하지만 소통하여 중도를 얻지 못 하는 것을 가리킨다. 수사청 신설 법안 문제가 그 지경이다. 당장 답이 쉽게 나오지는 않을 것 같아 안타까울 따름이다.

bienns@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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