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오스카 궁금하세요? 이 작품 주목하세요

강영운 2021. 3. 3.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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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개봉작 '더 파더', '프로미싱 영 우먼' 리뷰
'더 파더' 앤소니 홉킨스
치매 노인 연기로 극찬
'프로미싱 영 우먼'
남성 위주 강간문화 비판

오스카의 계절이 돌아왔다.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주최측은 오는 15일(현지시간) 후보 선정을 시작으로 본격 레이스에 돌입한다. 올해는 한국인 이민자의 삶을 다룬 영화 '미나리'의 활약이 기대된다. 외신은 '노 매드랜드', '주다스 앤 더 블랙 메시아', '더 파더', '프로미싱 영 우먼'도 유력 수상 후보로 꼽는다. 이 중 '더 파더'와 '프로미싱 영 우먼'은 CJ CGV 기획전을 기회로 먼저 국내 관객을 맞았다. 앤소니 홉킨스는 '더 파더'에서 치매 노인의 삶을 과장 없이 스크린에 옮겨낸다. '프로미싱 영 우먼'의 캐리 멀리건의 연기도 물이 올랐다. 4월 26일 열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을 달굴 국내 개봉 두 작품을 소개한다. 리뷰는 영화 주인공 1인칭 시점으로 구성했다.

앤소니 홉킨스는 영화 `더 파더`에서 치매 노인을 완벽히 연기한다. [사진 제공 = 판씨네마]
◇더 파더

평소처럼 멀거니 집에 앉아 있었네. 노처녀 딸 앤이 찾아오더군. 아픈 날 간호한다는 이유였어. 앤은 내게 말했네. "곧 런던을 떠날 거예요.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거든요. 파리에서 그와 새 삶을 살 거예요". 씁쓸하더군. 하지만 어쩔 수 없었지. 난 냄새나는 홀아비 였으니까.

다음날인가. 어떤 여자가 남자와 내 집에 불쑬 들어왔어. 나는 외쳤지 "당신들 누구야". 그 여자가 깜짝 놀라 얘기하더군. "무슨 소리예요, 아버지. 딸 앤이잖아요. 이 사람은 아버지 사위 폴이구요". 전혀 모르는 두 사람이 내 집에 들어와 나의 딸과 사위를 자처하다니. 더구나 앤은 어제 새 남자친구가 생겼다고 말했다고. 내 안락한 집을 빼앗기 위한 사기꾼들의 모략인가 싶었지.

처음엔 황당한 사람들인 줄 알았네. 하지만 멍청한 건 나였더군. 연일 헛소리를 해대고, 고함을 치고, 음식을 달라고 조르는 사람. 그게 바로 나였어. 그래 난 치매였네. 영혼은 천천히 침잠해 가고 있었어.

알고 있네. 연일 헛소리를 해대는 노인네를 보면 울화가 치민다는 걸. 나의 뺨을 사정없이 갈긴다고 해도, 난 그저 울기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지. 난 말초적인 자극에만 반응하는 정신빠진 노구에 불과하니까.

정신이 오락가락 하는 남성의 희로애락을 온전히 구현한 앤소니 홉킨스(맨 오른쪽). [사진 제공 = 판씨네마]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네. 한 사람이 떠 올랐어. 미소를 머금고 날 품어주던 사람. 엄마였네. 그 체온은 절대로 잊히지가 않는군. 내게 필요한 건 돈도, 맛있는 음식도 아니었네. 작은 온기가 느껴지는 그 품이었어. 그 속에서 미친듯이 엄마를 부르짖으며 울고 싶어졌네. 그러니, 당신이라도 날 보러 와 주겠나. 체온을 갈구하는 늙은이를 가여워하는 마음으로. 당신이 걷게 될 미래일지도 모를테니.
`프로미싱 영 우먼`은 여성의 성을 쉽게 생각하는 남성 위주 사회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를 담는다. [사진 제공 = 유니버셜픽쳐스]
◇프로미싱 영 우먼

촉망받는 의대생이었어. 성적도 톱을 놓치지 않았지. 하지만 7년 전 그 사건 뒤로 대학을 때려 치웠어. 지금은 뭐하냐고. 낮에는 카페에서 파트타임 알바를 하고 밤에는 펍에서 만취한 '척'을 해. 아주 야한 옷, 속옷이 보일듯 말듯한 옷을 입고서. 이런 의상이 남자들을 유혹하기에 좋거든. 100이면 100 나에게 접근을 해. 하는 소리도 모두 똑같지 "여기서 취하면 위험해요. 집까지 데려다 줄게요". 이런 놈들이 말하는 집은 대개 '자기 집'이야. 물론 내가 원하는 것도 그런 거긴 해.

남자들은 자기 집에서 "얘기를 하자"고 하지. 물론 목적은 팬티를 벗기는 것 뿐이야. 내 이름도, 나이도, 취미도, 특기도, 꿈도 궁금해하지 않아. 그냥 하룻밤을 즐기려고만 하지. 그가 내 옷을 벗길 때까지 취한 척을 해. 문란한 여자냐고. 아니. 난 남성을 혐오해. 중요한 순간 아주 멀쩡히 정색을 하며 외치지. "뭐하는 짓이야". 그리고 협박하고 겁을 줘. 이러면 대개 트라우마가 생겨서 다시는 취한 여자를 함부로 대하지 않거든.

내가 의과대학을 관둔 이유, 남자를 유혹해 겁을 주는 이유는 하나야. 내 친구에게 복수하고 싶어서지. 소울메이트였던 내 친구는 7년전 의과대학 남학생 파티에 초대받았어. 거기서 집단 강간을 당했지. 반항도 못했지. 술에 완전히 취해 정신을 차릴 수 없었거든. 그들은 그 끔찍한 순간을 비디오를 찍으며 웃었지.

처음엔 법이 그녀를 보호해 줄 줄 알았어. 하지만 그 범죄자들은 당당히 법망을 피해갔지. 어른들은 "남성들이 많은 공간에 술에 취하는 위험을 자초했다"고 비난했어. 내 친구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지. 그때부터야. 내가 남성과 남성이 지배하는 사회를 경멸하게 된 건.

`프로미싱 영 우먼`에서 캐리 멀리건은 자살한 친구 `니나`의 복수를 꿈꾸는 카산드라를 연기한다. [사진 제공 = 유니버셜픽쳐스]
드디어 기회가 찾아왔어. 내 친구를 죽음에 몰아넣던 그 놈들이 내 눈 앞에 나타났거든. 이제 조무래기들 말고, 그놈들이 벌을 받아야 할 차례야..

세상에 있지도 않은 일을 지어내 남성 혐오를 조장한다고. 천만의 소리. 2016년이었지. 미국 스탠포드대 수영선수 브록 터너는 술 취한 여성을 캠퍼스에서 성폭행 했어. 징역 6개월이 다였어. 명문에서 장학금을 받는 학생(Promising Young Man)이라는 이유였지. 우리를 촉망받는 여학생(Promising Young Woman)이라고 보호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 이제 알겠지. 우리가 사는 사회를. 이제 진짜 복수의 시간이야.

[강영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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