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의 과학세상] 텍사스 가짜 눈의 정체

이덕환 서강대학교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 2021. 3. 3.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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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국토 최남단에 속하는 텍사스주에 기록적인 한파와 눈 폭풍이 덮쳤다. 텍사스한 시민이 개인용 제설장치로 눈을 치워보지만 역부족이다. AP/연합뉴스 제공

북극한파에 직격탄을 맞은 미국 텍사스 주에 ‘가짜 눈’이 내렸다는 소문이 전 세계에 파다하게 퍼진 모양이다. 단단하게 뭉쳐놓은 눈덩이가 헤어드라이어의 뜨거운 바람에도 녹지 않고, 라이터 불을 대면 눈덩이가 녹아내리는 대신 표면이 검게 변하는 동영상이 인기라고 한다. 선거에서 자신을 지지해주지 않았던 텍사스 주민들에 대한 조 바이든의 보복이라는 주장도 있고, 빌 게이츠가 기후변화 괴담을 퍼트리기 위해서 만들었다는 주장도 있다. 물론 과학적으로 아무 근거도 없는 엉터리 괴담이다. 2014년 1월 조지아의 애틀랜타에 폭설이 내렸을 때도 똑같은 괴담이 등장했었다.

물론 눈은 섭씨 0도에서 녹는다

눈은 작은 얼음 결정이 독특한 육각형 구조로 연결되어 있는 고체 상태의 물이다. 다만 눈송이를 만드는 얼음 결정 사이에 빈 공간이 많아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단단한 얼음보다 가볍고, 바람에 잘 날릴 뿐이다. 실제로 눈송이의 밀도는 0.1~0.8 g/㎤으로 단단한 얼음의 밀도(0.92g/㎤)보다 훨씬 작다.

물론 대기압에서 얼음 덩어리인 눈송이는 섭씨 0도에서 녹아서 액체의 물이 된다. 눈의 온도가 섭씨 0도보다 높아지면 눈송이가 녹아서 섭씨 0도의 액체 물이 되면서 부피가 줄어든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섭씨 0도보다 높은 열기가 있으면 곧바로 눈이 녹아서 액체의 물이 줄줄 흘러내리는 것은 아니다. 

차가운 눈송이를 뭉쳐놓은 눈덩이에 열을 가해서 온도를 섭씨 0도로 만드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눈덩이에 열이 전달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눈덩이에 열을 가하면 표면의 눈송이가 먼저 녹기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생긴 적은 양의 물은 아래로 흘러내리는 대신 눈송이 사이의 빈 공간으로 빨려 들어가게 된다. 물 분자가 여전히 차가운 상태로 남아있는 눈송이의 빈틈에 끼어들어가서 젖은 눈이 되는 것이 열역학적으로 더 안정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눈덩이를 프라이팬에 올려놓고 느린 속도로 가열하면 눈덩이의 아래쪽이 눈 녹은 물에 젖기 시작하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 물론 눈덩이 전체의 온도가 섭씨 0도 이상이 되도록 충분히 가열하면 눈덩이 전체가 녹아서 액체의 물이 된다.

눈이 녹으면 언제나 액체의 물이 되는 것도 아니다. 온도와 압력이 물의 삼중점(온도 섭씨 0.01도, 압력 0.006기압)보다 낮아지면 얼음이 곧바로 기체 상태인 수증기가 되는 승화(sublimation) 현상이 나타난다. 실제로 압력이 충분히 낮지 않더라도 춥고 건조한 날씨에서는 승화 현상을 비교적 쉽게 관찰할 수 있다. 추운 겨울날 빨랫줄에 꽝꽝 얼어붙은 빨래가 마르는 것이 바로 그런 현상이다. 물론 승화의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린다. 거대한 빙하가 풍화 작용으로 깎여나가는 것도 언 물이 승화하기 때문이다. 

얼음의 승화 현상을 유용하게 활용하기도 한다. 덕장에서 얼어붙은 명태를 말려서 북어를 만드는 동결건조(freeze drying)가 바로 얼음의 승화를 활용하는 기술이다. 상온의 명태에서 수분을 증발(evaporate)시키면 북어의 제 맛이 나지 않는다. 자칫하면 건조 과정에서 부패해버릴 수도 있다. 동결건조 기술은 라면과 같은 가공식품에 필요한 스프의 제조와 살아있는 바이러스를 이용하는 백신 등의 제조에도 유용하게 활용된다.

눈송이의 그을음은 검댕

'빌게이츠가 만든 가짜 눈'이라는 메세지와 함께 올라온 영상.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한 주민은 최근 자신의 틱톡 계정에 영상을 올리고 눈덩이에 불을 붙여도 녹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트위터 캡쳐(@RightWingCope)

탄소와 수소로 만들어진 부탄이나 파라핀을 충분히 높은 온도로 가열하면 탄화수소가 분해되면서 공기 중의 산소에 의해 이산화탄소와 수증기로 연소되어 공기 중으로 흩어진다. 실제로 촛불이나 라이터 불의 온도는 섭씨 400도가 넘는다. 촛불의 열기에 녹은 파라핀 액체가 심지를 따라 올라가면서 증발한 후에 불꽃 속에서 분해·연소된다. 속불꽃은 1,200도나 되고, 겉불꽃은 1,400도까지 올라간다. 

그런데 탄화수소 연료가 완전히 연소될 정도로 온도가 높지 않거나 산소의 공급이 부족하면 완전히 연소되지 못한 탄소 알갱이가 모여서 검은색의 검댕(soot)이 된다. 눈덩이에 촛불을 가까이 대는 경우에도 불꽃의 온도가 떨어지면서 증발된 파라핀의 분해와 연소가 중단되어 검댕이 만들어진다. 

결국 텍사스 가짜 눈 동영상에 등장하는 검은 그을음은 증발된 파라핀이나 부탄이 완전히 연소되지 못하고 남은 탄소 찌꺼기가 눈덩이의 표면에 달라붙어서 검게 보이는 것이다. 탄화수소의 연소 대신 전기를 이용해서 열을 발생시키는 헤어드라이어를 사용하면 눈덩이에 검은 그을음이 생기지 않는다. 

지난 2월 13일부터 나흘 동안 미국의 70%를 덮친 ‘겨울 폭풍’(winter storm)은 인류 역사에서 처음 발생한 새로운 일이 아니다. 북극의 차가운 기단을 가둬주는 중위도 지방의 편서풍 벨트가 평소와 달리 지나치게 남쪽으로 내려오는 경우에 나타나는 기상 현상이다. 물론 그런 일이 자주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절대 일어나지 않는 일도 아니다. 우리도 2018년 2월에 기록적인 북극한파에 시달렸던 경험을 가지고 있고,  유럽도 2010년 11월에 극심한 한파와 폭설을 경험했다. 지구온난화를 걱정하기 전에도 이상 한파와 폭설은 심각한 자연재해였다. 인터넷과 소셜미디어가 엉터리 괴담과 가짜 뉴스로 가득 채워지는 현실은 몹시 안타까운 것이다.

이덕환 서강대학교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

※필자소개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대한화학회 탄소문화원 원장을 맡고 있다. 2012년 대한화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과학기술,교육,에너지,환경, 보건위생 등 사회문제에 관한 칼럼과 논문 2500편을 발표했다.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번역했고 주요 저서로 《이덕환의 과학세상》이 있다. 

  

[이덕환 서강대학교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 duckhwan@sogang.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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