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여담>빚쟁이의 빚잔치

기자 입력 2021. 3. 3. 11:30 수정 2021. 3. 3.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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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쁜 일이 있을 때 음식을 차려 놓고 여러 사람이 모여 즐기는 일을 잔치라고 한다.

빚이라는 말은 '잔치'와 만났을 때만 분화하는 게 아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빚을 진 사람을 낮잡아 이를 때도 빚쟁이라고 한다.

그 공술에 취하면 빚쟁이 돼 빚잔치하는 건 시간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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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규 논설위원

기쁜 일이 있을 때 음식을 차려 놓고 여러 사람이 모여 즐기는 일을 잔치라고 한다. 혼인이나 회갑, 돌 외에도 승진 등 잔치의 명분은 많다. 그런데 하객을 초대하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잔치가 있다. 빚잔치다. 국어사전은 두 갈래로 풀이한다. 먼저, 부도나 파산 따위로 빚 갚을 능력이 없을 때 모자라는 재산이나마 채권자에게 넘기고 빚돈을 청산하는 일이다. 현물까지 동원해서 지고 있는 빚을 떨어내는 ‘빚떨이’ 다. 요샛말로 하면 개인파산 절차쯤 된다. 빚잔치의 두 번째 의미는 파산 직전 단계에 해당한다. 갚을 형편도 못 되는 주제에 분수 넘치게 빚을 끌어다 흥청망청 쓰는 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쓰인다. 파산과 빚 증폭이라는 의미를 함께 가진 단어가 빚잔치다.

빚이라는 말은 ‘잔치’와 만났을 때만 분화하는 게 아니다. 사람을 가리키는 ‘-쟁이’란 말을 달고 나올 때는 양면성을 띤다. 본디는 남에게 돈을 빌려준 사람을 낮잡아 빚쟁이라고 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빚을 진 사람을 낮잡아 이를 때도 빚쟁이라고 한다. 빚꾸러기와 같은 말이 된 것이다. 채권자도 채무자도 빚쟁이로 만드는 빚은 참으로 무서운 놈이다.

빚이 없으면 위험도 없다(Out of debt, out of danger.)는 서양 격언은, 병 없고 빚 없으면 산다는 우리 속담과 닮았다. 대통령도 ‘마음의 빚’이 있댔으니 발 뻗고는 잠 못 자겠다. 그런데 ‘가붕개’들은 범보다 무섭다는 빚도 잊고 잘 잔다. 지난해 말 기준 우리나라 가계와 기업 빚이 988조 원과 976조 원이란 사실을. 게다가 국가채무도 950조 원이 넘는다. 4차 지원금 15조 원 중 국채 발행 근 10조 원과 ‘따지지 마’ 가덕도 신공항 건설비 28조 원은 별도다. 집권층이 제 주머닛돈 쓰듯 하지만, 선거철에 나랏빚 내서 매표(買票)하려는 짓이다. 경상도 속언(俗諺)을 빌리면 ‘방천 술로 낯내기’다.

방천 술은, 냇물 범람을 막기 위해 수리(水利) 계원들이 제방 공사를 할 때 마시기 위해 공금으로 마련한 것이다. 그 술을 행인들에게 권하면서 마치 제가 사는 듯이 선심을 쓰는 것이다. 정치꾼들이 내는 ‘술’은 제 돈으로 사는 게 아니다. 공주(空酒)가 아니라 청구서가 나중에 날아오는 혈세주다. 그 공술에 취하면 빚쟁이 돼 빚잔치하는 건 시간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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