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비 뒤통수를 친 여포-성공한 여포의 반란, 장비 술버릇 탓 아니다

2021. 3. 3.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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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용한 박사의 '당신이 모르는 三國志']

소설 삼국지를 보면 유비는 항상 어려움을 겪은 인물로 묘사된다. 능력이 있고 공도 세우지만 그뿐. 정치적인 인물도 아니기 때문에 성과에 대한 보상을 받지 못한다. 이 때문에 유비는 경쟁자와 격차가 점점 벌어졌다.

하지만 소설은 소설일 뿐이다. 삼국지에 등장하는 여러 주인공 중 시련 없이 성장한 인물은 없다. 유비는 사실 따지고 보면 운이 좋은 편이었다. 황건적 잔당에게 고을을 뺏기고 공손찬에게 망명했던 유비는 조조와 도겸, 원소와 원술, 원소와 공손찬의 싸움 사이에서 나름 어부지리를 얻었다. 특별히 큰 공을 세우지도 않았지만 서주 도겸의 유산으로 서주라는 넓은 지역을 손에 넣었다.

도겸이 죽자 서주의 부호 미축과 서주에서 명망이 높았던 진등은 소패에 있던 유비에게 서주를 인수하라고 권한다. 미축은 동해(서주 북쪽), 진등은 하비(서주 남쪽) 출신이다. 서주 남북의 유력 인사가 유비를 추대한 것. 도겸의 유언이 있었다고 하지만, 이건 명분을 위해 포장된 이야기일 수 있다. 도겸이 그런 유언을 했다고 해도 진등과 미축이 수용하지 않았다면 유비는 도겸의 후사가 될 수 없었다.

▶서주로 진출한 유비

▷지역 부호 등에 업고 서주 인수

그들이 유비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유비가 조조나 원소를 상대할 수 있는 능력자임을 증명한 적은 없다. 뚜렷한 이유는 드러나지 않지만 진등과 미축은 유비의 잠재력과 포용력, 리더십에 주목한 것으로 보인다. 유비 최고의 장점은 이질적인 집단을 포용하고, 사람들에게 신뢰를 주는 능력이었다. 당시 서주에는 100만명의 피난민이 몰려왔다. 조조 학살극으로 지역 내 갈등은 더 심해졌다. 피난민, 토착민 할 것 없이 분노와 공포, 저항하려는 자와 도주하려는 자로 분열돼 있었다.

서주 유력자인 진등과 미축은 유비의 능력을 알아보고 그가 만신창이가 된 서주를 재건할 적임자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유비가 서주 인수를 사양하자 진등이 이렇게 말한다.

“지금 한나라 왕실은 쇠약해지고 천하는 엎어지려고 합니다. 서주는 풍요롭고 인구가 100만입니다. … 지금 서주에서는 보병과 기병 10만을 모을 수 있습니다. … 당신은 춘추시대 오패와 같은 위엄을 이룰 수도 있고, 제후가 돼 백성을 통치할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단어는 바로 군대다. 서주 토호가 협력해 군대를 모을 수 있다는 제안이다. 도겸은 조조의 공세를 간신히 버텨내고만 있을 뿐 반전의 계기를 만들지 못했다. 진등이나 미축, 나머지 서주 토호들은 그것이 답답했다.

보통 이런 상황이면 도겸을 버리고 조조에게 귀순한다. 하지만 조조가 벌인 서주 초토화 작전이 이들을 분노하게 했다. 떠날 사람은 이미 떠났고, 남아 있는 사람은 도전을 원했다. 그들의 눈에 유비가 포착됐다.

진등과 미축은 “지금 우리 제의를 거절한다면 저도 당신을 따르지 않겠습니다”라며 단호하게 말한다. 바꿔 얘기하면 진등 등이 서주를 떠나겠다는 말이 아니라 유비를 내쫓겠다는 말이다. 그렇게 빈털터리 유비는 졸지에 서주를 이끌게 됐다. 이때 조조에게 패한 여포가 서주로 들어왔다. 조조는 여포에 집착하지 않고 천자를 모시는 데 주력했다. 천자를 옹립한 조조는 여포까지 데리고 있는 유비에게 천자를 이용해 ‘진동장군’이라는 높은 관직을 내려주고, 제후로 책봉했다.

‘내일 적을 치더라도 오늘은 꽃을 보낸다.’

뻔한 속임수 같아 보이지만, 전쟁을 피하고 싶은 사람은 그 사실을 믿는다. 이 전략은 적을 분열시킬 수 있다. 게다가 당시 서주는 이미 전쟁을 치르고 있던 상황이었다. 즉 조조는 불난 집에 부채질하기 위해 유비에게 높은 관직을 내린 것이다.

▶분쟁의 씨앗이 된 서주

▷남쪽 원술의 침공과 여포의 배신

조조가 천자 옹립을 위해 움직이자 서주 남쪽에 위치한 원술은 기다렸다는 듯이 서주를 침공했다. 원술은 야심가였지만 능력은 없었다. 그는 자신이 북진을 담당하고 남쪽은 손견의 아들 손책을 보내 남북으로 동시에 영토 확장을 시도했다. 원술이 똑똑한 인물이었다면 고향이 남쪽인 손책에게 남진을 맡기지는 않았을 터.

승승장구했던 손책은 빠른 시간 내에 오나라 지역을 평정했다. 당장 공개적으로 원술을 배신하지는 않았지만 세력 규모상 손책은 순식간에 독립 군벌이 됐다. 반면 원술 자신이 끌고 간 북진군은 이미 조조에게 패배한 바 있다. 만만한 서주를 공략하고 싶었던 원술은 조조 때문에 섣불리 서주를 공략하지 못했다. 조조가 천자를 옹립하기 위해 서쪽으로 이동하자, 원술은 다시 군사를 일으켜 서주를 침공했다. 원술과 유비의 전쟁이 시작됐다.

유비는 원술을 완전히 격퇴하지는 못했지만 호각세를 이루며 방어선을 유지했다. 삼국지 정사를 통해 살펴본 유비군 방어는 굉장한 성과였다. 아직 서주를 제대로 장악하지 못한 상황에서 얼마 안 되는 군사로 원술의 대군을 막았기 때문이다. 이때 조조가 선의를 가장한 훼방을 놓기 시작했다. 조조는 천자를 옹립한 후 원소, 손책, 유비 등에게 관직을 뿌렸다.

각 지역을 제패한 실력자들을 인정해 천하를 안정시키기 위한 조치였다. 원소나 원술은 조조를 믿지 않았지만 조조가 체력이 떨어져 잠시 쉬려고 꼼수를 쓰는 정도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것이 조조가 바라는 바였다.

조조는 지난 몇 년간 계속해서 전쟁을 치렀다. 휴식이 필요했다. 원소나 원술 역시 조조군이 휴식할 때 다른 곳을 취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원소는 공손찬, 원술은 서주 공략에 전력을 기울인다. 그런데 조조의 ‘당분간 휴전 선언’에 또 한 명 고무된 인물이 있었다. 서주로 망명했던 여포였다.

유비를 옹립한 진등은 유비를 자신의 고향인 하비로 모셨다. 일단 제일 위험한 적이 남방의 원술이었으니 원술을 막기 위해서도 남쪽 하비가 최적지였다. 그동안 서주 중부와 북부는 군수 물자와 모병에 매진한다는 전략이다. 원술과 유비는 한 달이 넘게 야전에서 대치했다. 그러자 여포는 사실상 비어 있던 하비성을 기습했다. 하비 출신 조표라는 인물이 유비를 배신하면서 하비는 손쉽게 함락됐다. 소설에서는 장비가 술에 취해 조표를 학대하는 바람에 조표가 배신했다고 하지만, 그것은 꾸며진 얘기로 보인다.

조표가 배신한 원인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조표는 여포가 서주를 뺏는 데 1등 공신이 됐다. 여포는 하비를 점령하고 유비 가족을 포로로 잡았다. 진규와 진등마저 여포에게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조표의 배신을 보면 서주 지역 분열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서주 백성이 조조에 대한 반감이 있는 것은 분명했지만 그들이 일치단결해 조조에게 결사 저항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결국 서주 분열 → 유비의 등장 → 여포의 반란으로 이어지는 구조가 됐다. 또 워낙 서주가 분열됐기 때문에 여포는 함부로 유비를 죽일 수 없었다. 분열된 서주의 힘을 합치기 위해서라도 여포는 유비를 살려줘야 했다. 삼국지 같은 난세에만 볼 수 있는 희한한 타협의 결과물이다.

[임용한 한국역사고전연구소장]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98호 (2021.03.03~2021.03.0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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