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아팠을까"..70여년전 일제가 낸 톱날 상처가 그대로
[경향신문]
“얼마나 아팠을까.”
전북 남원 왈길마을, 경남 합천 해인사, 강원 평창 남산, 울산 석남사, 인천 강화 보문사 등에 가면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는 소나무들이 있다. 일제는 이들 소나무에 톱날을 이용해 V자형 상처를 마구 냈다. 일제 강점기 말기인 1941년부터 1945년 사이 일제는 전쟁에 필요한 송탄유(松炭油, 송진으로 만든 기름)를 얻기 위해 소나무들에게 다시는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낸 것이다.
일제가 낸 상처는 70여년이 지난 지금도 그대로 남아있다. 전북 남원 왈길마을 숲에 있는 소나무는 V자 상처를 그대로 밖으로 드러낸 채 서 있다. 상처가 너무 심해, 상처 위로는 껍질이 다시 생겨나지 못했다.
강원 평창 남산의 송진 채취 피해목을 보고 있으면, 소나무가 겪었을 고통이 그대로 전해진다. 톱날의 상흔히 그대로 드러나있기 때문이다.
송진(松津)은 소나무에서 분비되는 끈적한 액체로 예로부터 천연 접착제와 약재 등으로 사용돼온 우리의 전통 산림자원이다. 하지만, 우리 민족은 소나무에 톱날 성처를 내서 송진을 얻지 않았다. 1830년 나온 <농정회요>를 보면 “송진은 저절로 흘러나오는 투명한 것을 채취해야 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소나무의 피해를 최소화해서 송진을 채취할 것을 권고한 것이다. 우리민족은 끌날로 송진을 필요한 만큼만 모아 사용하며 소나무를 아끼고 보호했다. 하지만, 일제는 그런 ‘지속가능한 방법’을 쓰지 않고, 소나무에 마구잡이로 상처를 냈다.
국립산림과학원은 2017년 이후 문헌조사, 시민제보, 현장조사 등을 통해 일제가 저지른 송진 채집 피해 소나무가 있는 곳을 조사하는 작업을 벌였다고 3일 밝혔다. 지금까지앞에서 소개한 5곳을 포함한 46곳에서 피해가 확인됐다.
산림과학원 관계자는 “일제 강점기 때 무분별한 송진 채집 피해를 당한 소나무의 나이테를 분석한 결과, 톱날 채집은 소나무 줄기에 아물지 않는 상처를 남긴 것으로 확인됐다”면서 “지속가능한 방법이 아니었음이 확인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산림과학원은 이런 사실을 국제 저널 <Sustainability>에 최근 게재했다.
산림과학원은 또 일제의 송진 채집 피해목 생육지를 국가산림문화자산으로 등록할 것을 당국에 권고했다. 향후 송진 채취 피해목의 생육지를 ‘산림문화자산’으로 등록, 산림교육 및 역사문화 자원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립산림과학원 박찬열 박사는 “일제가 톱날을 이용해 송진을 다량으로 채집한 방식은 소나무에게 아물지 않는 상흔을 남기는 피해를 줬다는 사실이 국제적으로 확인된 것””이라면서 “상흔을 가진 노송 생육지를 국가산림문화자산으로 등록해 역사적 자료로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희일 선임기자 yh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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