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톡>전투적인 공주·맞서는 女 악당.. 젠더 감수성 강박 살짝 아쉽네

김인구 기자 2021. 3. 3.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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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 월트디즈니는 '새로운 공주상(象)의 10대 원칙'이라는 매우 흥미로운 발표를 했다.

애니메이션에서 공주를 비현실적으로 묘사한다는 비판에 따라 어린이와 학부모를 위해 내놓은 대책이었다.

피부색뿐 아니라 전통적인 공주의 성격에 변화가 감지된 것은 '겨울왕국'(2012) 즈음이다.

피부색이나 주체성에서 '공주상의 10대 원칙'에 고스란히 부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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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야와 마지막 드래곤

5년 전 월트디즈니는 ‘새로운 공주상(象)의 10대 원칙’이라는 매우 흥미로운 발표를 했다. 애니메이션에서 공주를 비현실적으로 묘사한다는 비판에 따라 어린이와 학부모를 위해 내놓은 대책이었다.

①다른 사람을 배려해라 ②외모로 남을 판단하지 마라 ③건강하게 생활해라 ④자신을 믿어라 ⑤믿을 수 있는 친구가 돼라 ⑥정직해라 ⑦잘못된 것을 바로잡아라 ⑧최선을 다해라 ⑨충실해라 ⑩절대 포기하지 마라. 기독교 성서의 십계명처럼 매우 경건하고 올바른 준칙들이다. 공주를 표현할 때 외모가 아니라 인격에 초점을 맞춰 다양성을 포용하는 인물로 그리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들린다.

디즈니는 1937년 최초의 장편 애니메이션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의 백설공주 이후 84년간 10명이 넘는 공주를 배출하면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캐릭터의 진화를 거듭했다. 인종 차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공주가 되는 것이 왕관이나 왕자와의 결혼 같은 수동적 행위가 아니라 자신의 선택이고 책임이라는 인식의 변화에 따른 것이었다.

이 중 가장 큰 변곡점이 된 것은 1992년 개봉한 ‘알라딘’이다. 디즈니 최초로 유색인종 공주인 재스민이 등장했다. 아직은 수동적 마인드를 벗어나진 못했으나 적어도 피부색만큼은 혁명적으로 바뀌었다. 이후엔 인디언 공주 ‘포카혼타스’(1995), 중국 공주 ‘뮬란’(1998)을 거쳐 ‘공주와 개구리’(2009)의 흑인 공주까지 탄생했다. 피부색뿐 아니라 전통적인 공주의 성격에 변화가 감지된 것은 ‘겨울왕국’(2012) 즈음이다. 치명적 힘을 가진 엘사는 관습적인 왕관을 거부한 채 자신만의 세계를 보여줬다. 그리고 2016년 디즈니의 ‘새로운 공주상’을 복합적으로 구현한 게 ‘모아나’라고 할 수 있다. 모아나는 더는 왕자의 도움을 기다리는 공주가 아니었다. 독립적, 진취적 자세로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개척해나갔다.

이번에 디즈니가 새로 내놓은 공주 라야는 이보다 한발 더 나아간다. 백인 공주에서 아랍인과 흑인까지 만들어냈던 디즈니는 동남아로 눈을 돌렸다. 라야의 피부색과 생활, 패션 등을 종합해보면 필리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의 동남아 지역이 배경임을 알 수 있다. 최근 아시아의 지역적 특색, 그 안에 숨어 있는 이야기에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할리우드의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게다가 라야의 모험과 액션은 아예 공주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다. 라야는 손에 보석이나 꽃 대신 칼을 들고 맹렬히 맞붙는다. 어려서 어둠의 세력에게 잃은 부친을 되살리기 위해 거친 모험을 마다하지 않는다. 피부색이나 주체성에서 ‘공주상의 10대 원칙’에 고스란히 부합한다.

하지만 변화를 위한 변화, 변화에 대한 강박관념이 만들어낸 무리수 같은 느낌도 지울 수 없다. 주인공도 여성, 그에 맞서는 빌런도 여성으로 설정하는 등 젠더 감수성을 유난히 고려한 측면이 엿보인다.

두 명의 공주가 칼로 맞서는 액션이 스릴 넘치지만, 왕자(남성)의 대결을 공주(여성)의 대결로 바꿨을 뿐 공주의 독창성을 찾아보긴 어렵다. 분명 악당으로 보이던 인물이 좋은 사람이고, 천사처럼 보이던 아기가 실은 닳고 닳은 사기꾼이라는 설정도 이젠 신선하지 않다. ‘소울’처럼 삶의 의미를 깊이 통찰하던 디즈니의 주제의식도 은근슬쩍 내려놓은 것 같다. 라야를 비롯한 등장인물들의 대사가 너무 도덕적, 교훈적이어서 긴장감이 늘어진다. 4일 개봉. 전체관람가.

김인구 기자 clark@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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