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으쌰으쌰' 지원금이 '오싹오싹'한 이유

데스크 2021. 3. 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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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석 국민의힘 의원, "어쩌자고 이러는가?"
예산이 화수분처럼 솟아난다면 뭐든 말리겠나
文 포퓰리즘, 시민의 자각 독가스처럼 무력화
대한민국이 중남미처럼 포퓰리즘 포로 돼간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한국판 뉴딜 전략회의'에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 홍남기 경제부총리와 함께 참석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후 국민들에게 '으쌰으쌰 위로금'을 지급하겠다고 했다. 이 대표는 최근 재정 건전성을 우려하는 홍남기 부총리를 '나쁜 사람'이라고 꾸짖어 논란을 빚었다. ⓒ뉴시스

정치란 무엇인가.


2500년 전 공자님은 ‘정치는 바르게 하는 일(정자정야, 政者正也)’라고 갈파하셨다. 무얼 바르게 하라는 것일까. 논어 한 권이 그 답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필자가 대학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하면서 배웠던 이 말이, 정치에 대한 가장 적확한 정의가 아닐까 싶다.


‘정치란 희소한 가치를 권위적으로 배분하는 일이다.’


누구나 간절히 원하는 재화(財貨), 특히 ‘원수’ 같은 돈은 언제나 부족하다. 예전에 그랬고, 지금 그렇다. 국가나 개인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가치의 희소성을 전제로 하지 않는 정치적 논의, 경제적 논의는 허망하다.


“국민이 코로나-19로 실업으로 어려운데, 재정 건전성 얘기하고 있는 홍남기 경제부총리 정말 나쁜 사람이다.”


“경제가 어려울 때일수록 나라 곳간을 활짝 열어젖혀야 한다. 정부 부채가 GDP(국민총생산)의 100% 넘는 선진국들 수두룩하다. 그런 나라들 다 망했냐?”


국가 예산이 화수분처럼 솟아난다면, 가덕도 신공항 건설에 7조원 드는지, 28조원이 드는지 따질 필요가 없다. 22조원의 건설비가 투여된 4대강 건설사업 다 때려 부수겠다는 걸 말릴 이유가 없다.


사업비 규모 500억원, 정부 지원금 300억원 이상의 사업은 ‘예비타당성조사’를 거쳐야 한다. 아직도 시퍼렇게 살아 있는 의무 규정이다. 이 정권은 ‘김경수 예산’으로 불렸던 22조원 규모의 SOC(사회간접자본) 사업을 ‘원샷’으로 예비 타당성 조사 면제시켜버렸다.


포퓰리즘은 ‘가치의 희소성’에 대한 시민의 자각을 스멀스멀 독가스처럼 무력화시킨다. 그런 포퓰리즘이 우리 사회의 기저에 언제부턴가 짙게 깔리기 시작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국민에게 ‘으쌰으쌰 위로금’을 지원하겠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필자의 마음은 ‘오싹오싹’했다. 문 대통령은 “코로나에서 벗어날 상황이 되면 국민이 으쌰으쌰하고 분위기를 전환할 수 있도록 위로금을 지급하겠다”라고 했다.


코로나-19에 대한 자연면역은 빨라야 2021년 말에 형성된다고 한다. 2022년 5월 퇴임하는 문재인 대통령이 의회의 동의 없이, 거둬놓은 세금을 국민 위로용으로 전환해서 지급하겠다는 뜻인지 소상한 설명을 듣고 싶다.


참고로 영국을 의회민주주의로 들어서게 한 ‘권리장전(1689년)’에서 영국의 귀족들은 윌리엄 왕의 목에 세 개의 굴레를 씌웠다. 첫째, 국왕이 법을 함부로 중단하거나 폐지하지 못한다. 둘째, 의회의 동의 없이 과세하지 못한다. 셋째, 의회의 동의가 없이 상비군을 두지 못한다.


필자가 대통령 정무수석으로 일했던 2010년의 화제 인물은 단연 그해 퇴임한 브라질 대통령 룰라였다. 선반공 출신의 룰라는 퇴임 때 국민 지지율이 80%에 이르렀다. 국내의 많은 언론이 ‘룰라를 배우라’고 아우성치었다.


룰라에게서 제대로 배우려고, 중남미 정치에 가장 정통한 서울대 교수님을 정무수석실로 초빙했다. 그의 첫 마디에 정무수석실 직원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한국 정치를 브라질 정치에 비교하는 건 한국 정치에 대한 모독이다.”


그는 브라질 정치가 경제적 양극화, 부패, 포퓰리즘의 포로라고 지적했다.


“브라질은 중앙정부는 약하고 지방정부가 강하다. 중앙정부의 규율이 작동하지 않는다. 중앙정부 예산의 20% 정도가 국가 부채 상환에 쓰인다. 포퓰리즘이 만연해 있다. 단체장들이 퇴임하면서 주민 모두에게 핸드폰을 돌린다. 정치인들이 세금으로 자기 선심 쓰고, 국민은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대한민국 정치는 절대 포퓰리즘에 포획되면 안 된다. 그게 브라질 정치의 교훈이다.”


룰라는 부패 혐의로 2018년 구속됐다. 브라질에서는 2016년 강력 사건으로 6만 2000명이 피살됐다. 국가해체를 우려할만한 상황이다.


중남미가 아니라 이제 대한민국이 포퓰리즘의 포로가 된 것은 아닐까. ‘으쌰으쌰 위로금’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의문이다.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 한국일보에서 정치부 기자와 워싱턴 특파원, 논설위원을 지내며 두 차례의 한국기자협회 기자상 수상과 네 차례의 백상기자대상을 수상했다. 2000년 정계에 입문해 16·17·18·20·21대 국회의원을 역임, 5선 중진 반열에 올랐으며 새누리당과 국민중심당의 원내대표, 국회사무총장, 청와대 정무수석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현재 국민의힘 4·7 재·보궐선거 공천관리위원장을 맡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글/정진석 국민의힘 국회의원(5선·충남 공주부여청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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