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승 골프칼럼] (36) 레전드가 된 골프 레프리

2021. 3. 3. 0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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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세상을 떠난 세베 발레스테로스의 무벌타 구제 요청을 거절하는 존 파라모. [사진=유러피언투어]

골프의 레전드라고 하면 우선 위대한 업적을 달성한 전설적인 선수들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골프산업은 선수들 말고도 세분화된 여러 분야에서 전설적인 인물들을 배출해 왔다. 캐디의 레전드, 코치의 레전드, 코스 디자인의 레전드, 골프전문기자의 레전드, 골프중계방송의 레전드, 골프조직 경영의 레전드, 레프리의 레전드, 퍼터나 웨지 같은 장비의 레전드 등 여러 분야에서 레전드로 인정받는 인물들이 있다. 선수가 아닌 골프 레전드들이 이미 골프 명예의 전당 멤버로 헌액 되어 있는 사실만 보아도 골프발전에 이바지한 그들의 업적이 선수에 버금간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존 파라모와 앤디 맥피

유러피언투어의 간판 치프레프리 두 명이 작년 10월에 공식 은퇴를 했다. 존 파라모(John Paramor)와 앤디 맥피(Andy McFee)인데 골프중계를 많이 본 골프팬이라면 그들의 얼굴을 기억할 것이다. 파라모는 65세이고 44년 동안 유러피언투어의 레프리로 활동했으며, 맥피는 62세인데 36년 동안 파라모와 손발을 맞춰왔다. 그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곧바로 레프리가 되어 평생을 골프와 함께 살았으며 서로 의지하고 경쟁하면서 레전드로 성장했다.

그들은 골프대회의 로프 안에서는 물론이고 로프 밖에서 까지 선수와 팬들의 존경을 받아왔다. 두 사람 모두 정직하고 공정했으며, 엄격하게 판정을 하면서도 선수의 아픔을 공감하는 능력이 있었다. 선수들은 그들의 판정을 믿고 승복했으며 골프기자들과 팬들은 그들의 설명을 듣고 싶어했다. 4대 메이저 대회와 라이더 컵 등 중요한 대회에서는 언제나 두 사람을 모셔갔다. 그들이 골프 레프리의 레전드라는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유능한 레프리의 오심

보통 스포츠 경기에서 레프리가 유능하다면 눈에 띄지 않지만 골프는 다르다. 그 넓은 대회장 안에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던 상황이 발생하고 자연히 레프리가 끼어들기 마련이다. 선수나 레프리가 모두 처음 보는 상황을 골프룰에 맞게 해석하여 페널티를 주기도 하는데 선수가 심판을 신뢰하지 않는다면 매끄러운 경기 진행이 어렵게 된다. 레프리가 골프룰을 명확하게 알고 있더라도 현장에서 순간적으로 바른 판정을 하려면 오랜 시간 경험이 필요하다. 룰을 아는 것과 현장에서 룰을 적용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분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능한 레프리가 탄생하려면 오랜 세월이 걸린다.

레프리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첫째는 오심을 했던 레프리이고 둘째는 앞으로 오심을 하게 될 레프리이다. 오심을 하지 않는 골프 레프리는 없다는 정설을 표현한 말이다. 레전드인 파라모와 맥피도 오심을 하면서 성장했다. 레프리가 아무리 열심히 공부했어도 순간적인 착각은 일어나기 마련이다. 중요한 것은 오심이 생겼을 때 우선 해당 선수에게 알리고 사과하는 것이다. 오심인 것을 알면서도 밝히지 않고 묻어 버리면 그 선수는 오심의 결과가 맞는 룰이라고 배워가기 때문이다.

지난 주 LPGA 대회에서 소렌스탐에게 오심을 하여 1타 이상의 손해를 끼쳤던 레프리는 다음날 즉시 사과하며 잘못을 인정했다. 소렌스탐은 레전드 선수답게 오심한 레프리의 사과를 싹싹하게 받아들였다. 필자를 포함한 전 세계의 많은 레프리들이 자신에게 물었을 것이다. “만일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올바른 판정을 할 수 있었을까?” 대답은 본인들이 잘 알고 있다. 그렇게 많은 우리나라 대회에서 오심이나 룰에 관한 분쟁이 기사화 되는 경우는 드물다. 우연히 중계 카메라에 잡히지 않는 한 철저히 비밀로 하는 잘못된 관행 때문이다.

골프 레전드를 기다리며

우리나라에는 아직 레전드라고 인정받을 만한 레프리가 없다. 레전드 레프리가 되려면 수십 년의 세월이 필요한데 레프리라는 직업을 생업으로 종사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춰지지 않았으므로 레프리 일에 전력투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골프의 선진국이 되려면 선수만 앞서 나가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선수가 아니더라도 골프산업의 레전드가 되기를 꿈꾸는 골프인이 많이 나타나기를 바란다. 선수, 캐디, 코치, 레프리, 골프기자, 중계방송인, 골프 경영인, 골프를 돕는 정치인 등 레전드를 기다리는 분야가 많다. 먼저 레전드의 꿈을 꾸는 야심가들이 결국 레전드가 될 가능성이 많다. 우리나라에서도 골프 명예의 전당이 생기면 그 레전드들이 가장 먼저 헌액될 것이다. 이미 레전드로의 길목에 들어서서 묵묵히 일하고 있는 사람도 있고, 뜻을 품고 새로 진입하는 젊은이들도 많이 나타날 수도 있다. 골프팬들의 존경을 받는 레전드가 여기저기서 나타나기를 기다린다.

*골프 대디였던 필자는 미국 유학을 거쳐 골프 역사가, 대한골프협회의 국제심판, 선수 후원자, 대학 교수 등을 경험했다. 골프 역사서를 2권 저술했고 “박노승의 골프 타임리프” 라는 칼럼을 73회 동안 인기리에 연재 한 바 있으며 현재 시즌2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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