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의 뉴월드 '동남아'..공주 아닌 여전사가 온다

서정민 2021. 3. 3.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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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애니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 4일 개봉
디즈니 애니메이션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 스틸컷.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디즈니는 전통적으로 백인 중심의 보수적 가치관을 견지해왔다. 백설공주·신데렐라로 대표되는 ‘디즈니 공주’는 왕자를 통해 구원받았다. 변화는 1990년대부터 시작됐다. <알라딘>(1993, 이하 한국 개봉일 기준)에서 첫 유색인종 공주를 등장시킨 데 이어 <포카혼타스>(1995)에선 아메리카 원주민을, <뮬란>(1998)에선 중국 여전사를 내세웠다. 21세기 들어서는 <겨울왕국>(2014)에서 자매애를 강조하더니, <모아나>(2017)에선 폴리네시아 문화를 품었다. 이처럼 문화적 배경을 다양화하고 확장하는 흐름 속에서 디즈니가 이번에 택한 곳은 동남아시아다. 4일 개봉하는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은 디즈니 최초로 동남아 문화를 바탕으로 한 애니메이션이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 스틸컷.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영화는 어둠의 세력에 의해 분열된 쿠만드라 왕국을 구하고자 전사로 거듭난 라야가 전설의 마지막 드래곤 시수를 찾아 모험을 펼치는 이야기다. 동남아 물의 신 ‘나가’의 전설에서 영감을 얻어 이야기와 캐릭터를 창조했다. 뱀과 비슷한 모습의 나가와 동양의 전통적인 용의 형상을 더해 시수를 탄생시켰다. 각본을 쓴 꾸이 응우옌은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 속 드래곤처럼 서양의 드래곤은 공포의 대상이자 힘의 상징인 반면, 동양의 용은 신성시하는 행운의 상징이자 희망과 불굴의 용기를 의미한다. 시수는 이를 반영한 캐릭터”라고 설명했다. 주인공 라야는 다섯개의 땅으로 분열된 쿠만드라 왕국의 중심인 심장의 땅 족장 딸로, 아버지를 대신해 세상을 구하려고 나서는 인물이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 스틸컷.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제작진은 주요 인물 목소리 연기를 모두 아시아계 배우에게 맡겼다. 라야는 <스타워즈> 시퀄 시리즈에 출연한 베트남계 배우 켈리 마리 트란, 시수는 <페어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으로 주목받은 중국·한국계 배우 아콰피나가 맡았다. 라야의 아버지 벤자는 <로스트> <하와이 파이브 오>로 유명한 한국계 배우 대니얼 대 김, 송곳니의 땅 족장 비라나는 <킬링 이브> <그레이 아나토미>에 출연한 한국계 배우 샌드라 오가 연기했다. 이밖에 라야의 라이벌 나마리(제마 챈), 괴력의 거인 텅(베네딕트 웡) 등도 아시아계 배우가 맡았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 스틸컷.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이뿐 아니다. 돈 홀 감독 등 4명의 공동 연출자는 아시아계가 아니지만, 각본가 아델 림과 꾸이 응우옌은 각각 말레이시아계와 베트남계다. 제작진은 영화 제작에 들어가기 앞서 라오스, 인도네시아, 타이, 베트남, 캄보디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 동남아 전역을 돌며 문화를 체험하고 조사했다. 또 인류학자, 건축가, 댄서, 언어학자, 음악가 등 동남아 전문가들로 자문위원회를 구성해 도움말을 얻었다. 카를로스 로페스 에스트라다 감독은 “쿠만드라는 판타지 세계이지만, 영감을 준 동남아 지역과 문화에 경의를 표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 결과 동남아의 자연경관, 건축물, 의상, 음식, 무술 등 여러 요소가 충실히 반영됐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 스틸컷.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영화 주제도 동남아 문화와 맞닿아 있다. 폴 브리그스 감독은 “동남아에서 만난 사람들로부터 모두를 환대하는 믿음을 엿볼 수 있었다”며 그곳에서 느낀 공동체 의식과 신뢰를 강조했다. 라야는 어린 시절 겪은 배신으로 믿음을 잃어버린다. 믿을 건 오직 전설의 드래곤뿐이라 여기지만, 그것만으론 세상을 구할 수 없음을 알게 된다. 결국 불신으로 가득 찬 사람들의 신뢰를 회복해야 쿠만드라가 다시 화합할 수 있음을 깨닫는다. 돈 홀 감독은 “영화를 만드는 동안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이 발생했다. 마치 영화 속 모습처럼 현실 세계에서 생존의 위협을 마주했고 사람들 간 불신이 커져가는 것을 목격했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지금 우리 사회는 불신과 분열로 얼룩져 있다. ‘서로 믿음을 회복하고 하나가 될 때 진정한 힘이 깨어난다’는 이 영화의 메시지가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까닭이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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