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나의 다음 자취집은 부다페스트

2021. 3. 3. 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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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취를 늦게 시작한 편이다.

모든 적응이 끝나면 편한 나날들만 펼쳐질 거라고 생각했으나 인생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주변에서 왜 멀고 힘든 곳으로만 떠나냐고 물었다.

그래서 이번에 쉴 때 다음 자취집인 헝가리 부다페스트로 이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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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하 시인


나는 자취를 늦게 시작한 편이다. 29살 봄에 시작했다.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무작정 근사해 보이는 제주도에다 집을 구했다. 육지에 사느라 실물도 보지 않고 전화로 계약했다. 보증금을 송금하고 이삿짐을 꾸려 혼자 섬으로 내려갔다. 이삿짐의 양이 많았는데도 두고 온 물건이 많아 수시로 택배를 이용해 물건을 받아야 했다. 첫 자취라는 것만으로도 힘든데 섬에서의 생활까지 적응해야 했다. 힘들어서 자주 얼굴을 찡그리고 다녔다. 모든 적응이 끝나면 편한 나날들만 펼쳐질 거라고 생각했으나 인생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제주도의 삶이 적응되자 바로 유럽으로 떠나기로 했다. 주변에서 왜 멀고 힘든 곳으로만 떠나냐고 물었다. 나는 좋은 시를 쓰기 위해 인생을 자꾸만 낯선 곳으로 유도해야 한다고 대답했다. 집을 구하고 입국 서류를 받는 과정에서부터 제주도로 이사하는 것과는 천지 차이라는 것을 느꼈다. 준비하는 기간 내내 악몽에 시달렸다. 그냥 다시 제주도로 가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두 번째 자취이니 만큼 모든 일이 조금이라도 수월하게 진행되면 좋으련만 인생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시인으로 등단하기 전에는 이런 생각을 했다. 등단만 하면 앞으로의 인생은 아무 걱정이 없을 거라고. 남은 인생은 탄탄대로라서 저절로 시집도 출간되고 저절로 돈도 벌릴 것이라고. 그렇게 걱정 없이 살게 될 거라고. 하지만 등단과 동시에 등단 전보다 훨씬 크고 어려운 일들이 눈앞에 우수수 쏟아졌다.

날이 갈수록 태산처럼 쌓여가는 어려운 일들. 그것을 밟고 오르는 것이 인생 같다. 중간에 힘들어 나태해지면 독자분들은 바로 눈치챈다. 그걸 알기에 멈출 수가 없다. 물론 예술가에게 ‘쉼’이란 아주 중요한 요소다. 다만 그냥 쉬지 않고 잘 쉬어야 한다. 쉴 때 좋은 것을 담아둬야 시 속에 풀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에 쉴 때 다음 자취집인 헝가리 부다페스트로 이사 간다.

이원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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