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The Column] 이건희 컬렉션, 세계적 미술관 만들 기회

박병원 한국비영리조직평가원 이사장·한국고간찰연구회 이사장 2021. 3. 3. 03:2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언론사에 의해 수정되어 본문과 댓글 내용이 다를 수 있습니다.

상속세 현물로 받아 국립 미술관 만들면 빈약한 문화·예술 인프라 일거에 채우는 계기
모네·피카소·로스코… 최고 수준 컬렉션이 관광산업 살린다
이건희 컬렉션 대표작

고용이 풍비박산 나고 있다. 코로나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전부터 외국인 투자 유치는 고사하고 대기업에 이어 중소기업까지 해외로 나가고 있는 상황이었던 것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다. 코로나 극복 후에도 다음 세대의 고용 상황이 호전될 것 같지 않다. 전 산업에 걸쳐 인공지능 기술의 침투가 가속화되면 일자리 만들기는 더 어려워질 것이다. 이 와중에 그나마 고용을 지키고 늘릴 수 있는 여지가 가장 큰 것이 관광 산업이다.

우리는 오랜 세월 나라가 하나였기 때문에 궁궐이나 성 같은 관광 자원이 빈약하다. 일본만 해도 우리나라 경복궁 수준의 다이묘 성이 수두룩하고 이탈리아, 독일처럼 19세기 중엽에야 통일된 나라들은 주요 도시마다 서울 수준의 관광 자원이 즐비하다. 수와 질에서 성당, 교회와 맞먹을 만한 사찰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산악 관광과 문화 예술 관광 인프라에 이르면 가슴이 턱턱 막힌다.

다른 나라는 지금도 막강한 문화 관광지를 새로 만들고 있다. 영국의 테이트 갤러리는 폐쇄된 발전소를 개조하여 2000년에 테이트 모던을 열어 영국 화가 중심의 미술관이라는 한계를 뛰어넘었다. 이미 미술관이 넘쳐 나는 파리에는 2014년 루이비통의 아르노 회장이 불로뉴 숲에 새 미술관을 지었고, 구찌의 피노 회장은 나폴레옹 3세 때의 건물을 리모델링해서 자신의 수집품을 전시할 미술관을 금년 봄 개관한다. 아랍에미리트는 2017년 아부다비에 루브르박물관의 분관을 유치했다.

이런 미술관들은 그 자체로도 세계인의 버킷 리스트에 들어가는 것들이지만 다른 일로 온 사람들이 하루 더 그곳에 머물게 만드는 강력한 유인이 된다. 경제력이 세계 10위권인 우리나라의 국립 미술관에 누구나 한 번은 꼭 보고 싶어하는 세계적인 미술품이 한 점도 없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인 동시에 관광 인프라 취약성의 관점에서도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 한계를 일거에 넘어설 물실호기(勿失好機)의 계기가 생겼다. 삼성 이건희 회장의 유산 중 미술품에 대한 세금을 확정하기 위한 감정 평가가 마무리 단계에 들어가면서 그 가액이 수조 원이라고 알려졌다. 주식 상속에 대한 11조원 이외에 여기서도 조 단위의 세금이 부과될 것이다.

주식은 세율이 60%인데 여기에 미술품, 부동산 등에 대한 세금을 더하면 70% 이상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 물납은 불가피하고 5년 6회 분납을 한다 하더라도 매년 2조원어치의 주식이 시장에 나온다면 주가가 오르기는 어려워질 것이다. 집 사기를 포기한 젊은이들이 “영끌 대출”까지 끌어다 주식을 사고 있는 상황에서 정치적으로 좋은 소식이 아니다.

경영권에 대한 위협과 주식시장에 미치는 부작용을 최소화하려면 미술품과 부동산을 팔아서 내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이게 어렵다. 1만3000여 점으로 알려진 컬렉션 중에는 이병철 회장 때부터 사 모은 호암미술관의 고미술품들이 많은데 대부분 법률상 해외 반출이 불가능하고 국내에서 5년 안에 다 파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건희 회장이 모은 국내 유명 화가들의 작품도 5년에 나누어 판다 해도 제값을 받기는 어렵고 그러지 않아도 저평가되어 있는 우리 문화재와 미술품의 값만 더 떨어뜨릴 것이다.

시장을 교란하지 않고 제값을 받고 팔 수 있는 것은 900점 정도라는 인상파 이후의 서양 근현대 작가들의 최고 수준의 작품들이다. 모네, 르누아르, 피카소, 로스코, 리히터, 자코메티, 워홀 등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두근두근하는, 한 점에 1000억원을 넘어가기도 하는, 이런 작품들은 소더비나 크리스티 같은 국제 경매에 내놓으면 감정 평가 금액을 웃도는 가격에 팔릴 공산이 크다.

방법은 하나뿐이다. 세금 물납을 주식과 부동산에서 미술품으로 확대해서 이 컬렉션을 통째로 현물로 받아 미술관을 만드는 것이다. 지금 가격이라면 삼성도 사 모으기 어려울 것이라는 컬렉션을 쪼개서 팔아치운다면 나라 망신이요, 천추에 한을 남길 것이다. 세계에 유례가 없는 규제 법률들을 순식간에 잘도 만들어내는 우리 국회가 선진국이라면 다 가지고 있는 법을 가져다 베끼기만 하면 되는 미술품에 의한 상속세 물납 제도를 만드는 것은 여반장(如反掌)일 것이다. 세금을 매길 때 기준으로 삼은 가격으로 물납을 받아 주지 못할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가?

일본은 동경 우에노에 국립서양미술관을 가지고 있다. 일본에 뒤지는 것만은 절대 참지 못하는 우리나라가 일거에 모든 아시아인이 부러워할 국립 미술관을 가질 기회를 날려버려서는 안 된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