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우의 간신열전] [73] 향원과 사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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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원(鄕原)은 다움을 해치는 자[德之賊]다.”
‘논어’ 양화편에 실린 공자의 말이다. 처음에 ‘논어’ 공부를 하면서 이 문장의 뜻을 알게 됐을 때 놀란 점은 공자 시절에도 선동가가 심각한 문제였구나라는 것이었다. 서양에서만 고대 그리스 때부터 데마고그, 즉 선동가 정치의 위험성을 경고했던 것은 아니었다는 점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새롭다.
향원(鄕原)의 원(原)은 원(愿)과 같은 것인데 원(愿)이란 ‘삼가다’ ‘공손하다’ ‘질박하다’는 뜻이다. 즉 향원이란 한 마을에서 공손하고 질박한 행실로 신망을 크게 얻은 사람을 말한다. 다행히 맹자도 이 문제를 중요하다고 보았는지 ‘맹자’ 진심장구에서 문맥을 좀 더 설명한다.
“공자는 ‘어떤 사람이 내 집 문 앞을 지나가면서 내 집에 들어오지 않더라도 내가 조금도 유감스럽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오직 향원뿐이다. 향원은 다움을 해치는 자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향원을 이렇게 정의한다.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남들이 좋다고만 하면 된다고 하면서 심하게 세상에 아부하는 자가 바로 향원이다.” “시류에 동조하고 더러운 세상과 영합하여 얼핏 충직하고 신의가 있는 듯하며 행동할 때는 청렴하고 결백한 듯해서 많은 사람들이 모두 그를 좋아하고 자신도 그것이 옳다고 여긴다.”
이것이 공자가 말한 사이비(似而非)다. 겉으로는 어진 행동[仁]을 하는 듯 하지만 속셈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군주정 사회에서는 향원과 사이비를 걸러내는 일이 임금의 눈 밝음[明]에 달려 있었다. 그러나 민주정 사회에서 이 일을 맡아야 하는 사람은 국민이다. 선거철이면 더욱 이런 자들을 골라내기 위해 눈에 불을 켜도 될까 말까 하다. 하지만 이번에 가덕도 공항 문제 처리 과정을 지켜보노라면 대통령부터 여야 의원들까지 향원이나 사이비 아닌 자를 찾기가 어려울 정도다. 서울 부산 보궐선거에 나선 이들이라고 달라 보이지도 않는다. 난세(亂世)이자 민주 시민 노릇하기 힘든 난세(難世)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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