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검찰에 검사 많다”

박국희 기자 2021. 3. 3.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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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밝힌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청사/연합뉴스

최근 만난 한 검사장은 드라마 ‘모래시계’를 다시 보고 있다고 했다. 다 아는 내용이라고 생각했지만 감회가 새로웠다고 한다. 특히 권력 비리를 수사하던 극중 강우석 검사가 안기부에 끌려간 뒤, 동료 검사들이 안기부로부터 ‘수사 중단’을 요구받자 “강 검사가 못 하면 내가 수사한다” “우리 검찰에 검사 아주 많다”고 답하는 부분이 새삼 와닿았다고 했다. 26년 전 드라마 내용과 현재의 검찰 상황이 중첩됐을 것이다.

검경 수사권 조정과 공수처 설치 이후 검찰에 남은 일부 직접 수사권마저 중대범죄수사청에 넘겨 검찰 수사권을 모두 없애겠다는 여권에 대해 검찰 내부는 “정권 수사에 대한 공적(公的) 보복 아니냐”는 분위기다. 3년 전 문재인 정부 초기 조국 민정수석은 “검찰이 잘하는 특수 수사에 한해 검찰의 직접 수사를 인정하자”고 했다. 이후 칼자루를 받은 특수부 검사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과 한동훈 중앙지검 3차장은 전(前) 정권에 대한 대대적인 ‘적폐 청산’ 수사에 나섰다. 그때와 비교해 달라진 것이라곤 ‘적폐 청산’ 수사가 끝난 뒤 검찰의 칼날이 현 정권을 향했다는 점뿐이다.

신현수 청와대 민정수석의 사의 파동 이후 박범계 법무장관 체제의 검찰 인사 규모가 최소화됐지만 다른 분석도 있다. 더 이상 정권을 위해 몸을 던져 ‘방탄수사단’ 역할을 해줄 검사들을 찾기 힘들어졌다는 것이다. 작년 무리한 친정권 행보를 보였던 검사 상당수는 각종 위법 행위로 수사 선상에 오르거나 재판받는 신세가 됐다. ‘추미애 라인’처럼 ‘박범계 라인’ 인사를 하려 해도 ‘친정권 검사’ 인력풀이 바닥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우리 편’이라고 믿고 요직에 앉힌 중앙지검 형사1부장이 ‘채널A 사건’ 한동훈 검사장 무혐의를 주장하며 이성윤 중앙지검장에게 반기를 드는 일까지 벌어졌다.

검찰의 병폐는 개혁돼야 하겠지만 이렇게 ‘악마화’된 조직이 또 있을까. 20년 전에 비해 현재 검찰은 분명 많은 부분이 진일보했음에도 여권은 고장 난 녹음기처럼 ‘닥치고 검찰 개혁’만 반복하고 있다. 20년 전 1년간 검사 생활을 했던 친정권 변호사의 검찰 비판 책을 읽고 여권 실세들이 “검찰 민낯을 봤다”는 감상 평을 내놓는 수준이다. 민주당의 ‘공적 보복’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일선에 배치된 한 1년 차 검사를 만나 “검사 생활이 재미있냐”고 물어보니 그는 “검사가 된 것을 한 번도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의외의 대답이라 “사회에서 욕을 많이 먹지 않느냐”고 다시 물었다. 그는 “검찰이 언제 욕 안 먹은 적도 있었나. 위기를 국민 신뢰를 얻는 기회로 삼으면 되지 않겠냐”고 당차게 답했다. 젊은 혈기일 수도 있겠지만 ‘검찰에 검사들 많다’고 했던 드라마 ‘모래시계’를 본 검사장의 기분을 조금 알 것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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