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101] 늙음이 겸손과 지혜가 되려면

김규나 소설가 2021. 3. 3.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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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비아 작가 에두아르도 아리아스 수아레스.

나는 오싹함을 느꼈다. 내 얼굴은 아마도 파랗게 질렸던 모양이다. 우리는 잠시 아무 말도 못 하고 그대로 서 있었다. 메르세데스는 거의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늙어버렸다. 나는 눈앞의 그녀와 지난날의 메르세데스를 비교해보았다. 하늘과 땅 차이였다. 그녀의 아름다운 이마와 예쁜 눈만 변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메르세데스, 아무리 세월 탓이라 해도….” - 에두아르도 아리아스 수아레스 ‘서러워라, 늙는다는 것은’ 중에서

북서풍이 불지 않아 먼지 없는 날이면 밖으로 나간다. 뺨을 쓰다듬는 햇빛과 바람이 한결 부드럽다. 아직 앙상한 가지뿐인 나무들조차 싱그러운 기운을 뿜어낸다. 새들의 지저귐은 발랄하고 날갯짓도 쾌활하다. 봄이다.

노란 고양이가 작은 언덕 위에 누워 있다. 한참을 쳐다봐도 움직이지 않는다. 검은 고양이가 그 옆에 앉아 우두커니 죽음을 지키고 있다. 생명이 돌아오는 봄에도 떠날 것은 떠난다. 마지막이 언제인지 알 수 없으나 이 봄이 살아가면서 맞는 첫 번째 봄이다. 오늘이 앞으로 살아가야 할 첫째 날이다. 지금이 남아 있는 시간 중 당신이 가장 젊은 순간이다.

콜롬비아 작가 E 아리아스 수아레스<<b>사진>가 1944년에 발표한 단편소설의 콘스탄티노는 긴 방랑 끝에 고향으로 돌아와 옛 연인과 재회한다. 메르세데스는 다른 남자와 결혼해 잘 살고 있었지만 그녀의 얼굴엔 20년의 세월이 할퀴고 간 흔적만 가득하다. 젊은 날의 메르세데스를 쏙 빼닮아 너무도 아름다운 그녀의 딸이 콘스탄티노의 마음을 흔든다. 그러나 자신도 늙었음을 고통스럽게 깨달은 그는 다시 고향을 떠난다.

여든을 앞둔 어머니는 여기저기 몸이 아프다면서도 “익어가느라 그런다. 그래야 땅에 떨어져 새로 태어나지”라고 말한다. 늙는다는 것은 약해지는 것이다. 약한 것은 서러운 법이다. 하지만 낮추고 물러설 때 연약함은 겸손이 되고 지혜가 된다.

보통 사람은 때가 되면 일선에서 은퇴한다. 정치 권력자들만 정년도 없고 물러나지도 않는다. 노년의 건강과 열정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끝없는 노욕(老慾)과 노추(老醜)를 견뎌야 하는 국민은 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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