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다이어리]독일 첫 트랜스젠더 대대장

이동미 여행작가 2021. 3. 3.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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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매일 아침 남자친구와 라디오를 듣는다. 독일어를 못하는 나는 음악을 듣고, 남자친구는 그날그날 나오는 주제나 인터뷰로 세상 이야기를 듣는다. 흥미로운 이야기가 나오면 곧잘 설명도 해준다.

“흠, 지금 나오는 얘기 재미있다. 군에서 처음으로 트랜스젠더라는 사실을 밝힌 독일 공군 중령이 인터뷰를 하고 있어. 커밍아웃한 후에도 계속 군에서 일할 수 있었던 과정을 인터뷰하고 있는데, 다큐멘터리(<I’m Anastasia(2019)>로도 제작됐대.”

이동미 여행작가

아나스타샤 비에팡(Anastasia Biefang). 독일군 최초의 트랜스젠더 대대장. 20년 동안 여자가 되고 싶은 마음을 숨겨야 했던 아나스타샤는 마흔 살이 되던 2015년에 상관에게 이 사실을 털어놓았다. 이후 이름을 바꾸고, 성 확정 수술을 받는 동안에도 그녀는 계속 군인 생활을 하였으며, 작년까지 700명의 정보 기술 대대를 이끄는 지휘관이었다. 그녀가 트랜스젠더임을 처음 알렸던 당시를 회상한 내용도 재미있다. 아나스타샤의 말을 들은 상관은 이 사실을 빠른 시일 내에 공개하자고 제안하고 언제가 좋겠냐고 묻는다. 그녀가 아무 때든 좋다고 하자, 상관은 “아, 그럼 조금 후에 열리는 정기회의에서 바로 얘기합시다”라고 해서 별 준비도 없이(?)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무엇보다 그녀는 커밍아웃이 자신의 군 경력에 아무런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는 점에 가장 놀랐다고 고백했다.

“우리가 함께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성 정체성을 밝히고 수술도 고려하고 있다고 했을 때, 그녀의 상관이 한 말이었다. 그리고 이 말은 지금도 아나스타샤의 귀에 맴돌고 있다고. 이 사연을 듣는 동안 저절로 떠오르는 한 사람이 있었다. 2019년 12월, 성 확정 수술을 받고 군으로 복귀하길 원했지만, 한 달 뒤 바로 강제 전역을 당한 변희수 전 하사. 당시 울먹거리며 기자회견을 하던 그녀의 목소리가, 어릴 때부터 꿈이었던 군인이 되어 얼마나 열심히 임무를 다해왔는지 호소하며 왜 성이 달라졌다고 해서 직업을 잃어야 하는지 항변하던 목소리가 기억난다.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변 하사 역시 수술을 위한 휴가를 받을 당시 소속 부대의 허락과 지지를 받았다. 소속 부대의 지휘관들은 개별 연락까지 하며 그녀의 선택을 존중하였고, 변 하사의 복무를 권하였으며, 국방부에도 해당 의견을 전달하였다. 그러고 보면 변 하사의 곁에도 함께하려는 사람들이 있었다. 가깝게는 부대원들이, 크게는 국가인권위원회와 유엔이 변 하사에 대한 강제 전역 처분이 부당하고 인권이 침해되었음을 밝혔다. 하지만 국방부는 ‘관련법규에 의한 적법한 행정처분이었다’고 고집하고 있다. 변 하사는 전역 처분 취소 소송을 냈지만 아직 첫 재판 기일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녀는 다시 군인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세상은 변하고 있다. 군대라고 해서 차별 금지의 예외가 되어서는 안 된다. 아나스타샤는 “독일연방군에도 트랜스젠더가 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다큐멘터리 제작에 참여했다고 밝혔다. 한국군에도 트랜스젠더가 존재한다. 많은 성 소수자 군인들이 차별 없는 인권과 임무를 갖는 것, 나는 변 하사의 복직이 그 시작점이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본다.

이동미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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